걷기 좋은 길 5. 서귀포 치유의 숲
우린 치유를 찾아 떠났다.
서귀포, 그곳에 ‘노고록(여유롭게)’이라는 제주 말처럼
마음도 몸도 여유로워지는 특별한 숲이 있다.
내 브런치북 제목에 영감을 준 바로 그 ‘노고록 숲’,
서귀포 치유의 숲으로.
우린 '산림치유'를 하러 서귀포 치유의 숲을 가기로 했다.
○ 치유의 숲?
인체의 면역력을 높이고 건강 증진을 목적으로 산림의 다양한 환경요소를 활용할 수 있도록 조성한 산림입니다. 치유의 숲은 다양한 산림의 환경요소를 활용하여 산림치유지도사가 산림치유프로그램을 실행하고 그 효과를 평가할 수 있는 시설을 포함합니다.
○ 산림치유의 개념
숲은 인간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합니다.
산림치유는 숲에 존재하는 다양한 환경요소를 활용하여 인체의 면역력을 높이고,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회복시키는 활동입니다.
- 산림청 / 산림복지 홈페이지, '치유의 숲' 설명.
https://www.forest.go.kr/kfsweb/kfi/kfs/cms/cmsView.do?cmsId=FC_001569&mn=AR02_01_03_01
서귀포 치유의 숲은 하루에 600명에게만 입장이 허락되는 곳이다.
인터넷으로 예약해야 한다.
출발 전, 궁금한 게 있어 전화를 걸었다.
상냥한 직원분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예약은 인터넷으로 실시간 가능하고, 남은 자리가 있다면 현장 발권도 가능하지만,
가급적 온라인 예약을 권하셨다.
예약 시간은 30분 정도 여유 있게 도착해도 된다고 덧붙이셨다.
우린 점심을 먹으며 식당에서 예약을 진행했다.
절차는 간단했고, 결제까지 금방 끝났다.
예약이 완료되면 서귀포시청에서 카카오톡으로 확인 메시지가 도착한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1,000원.
동생은 장애인이라 입장료가 할인되었고, 이 역시 온라인으로 모두 처리 가능했다.
현장에 도착해서는 예약자 전화번호 뒷자리만 말하면 된다. 정말 편리하다.
점심을 먹고 난 뒤,
2시 반쯤 서귀포치유의 숲에 도착했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곳이라 한가롭게 둘러볼 수 있다.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예약시간도 각자 다르고,
길도 여러 갈래라서 붐비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도착 후 핸드폰 뒷자리를 말씀드리면 확인 후 입장.
입구에서 직원분이 코스를 안내해 주신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과 체력에 맞춰 코스를 추천해 주시는데,
길이 꽤 복잡하니 주의 깊게 설명을 들어야 했다.
숲에선 시간도 중요하다.
11월이라 오후 5시 전에 꼭 하산해야 했다.
2시 반쯤 도착한 우리는, 복잡하게 여기저기 헤매기보다
나무 데크길을 따라 큰길까지 걷고 ‘엄부랑 숲’을 본 뒤,
힐링센터에서 쉬었다가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해가 지기 전에는 내려와야 하기에 시계를 자주 살펴야 했다.
지도만 봐도 길들이 얽히고설켜 꽤 복잡하다. 솔직히 다녀온 후에도 어디서 어디로 어떻게 나온 건지, 어리둥절했다.
우린 오른쪽 데크길,
안내판에 따르면 14번,
‘노고록 무장애 나눔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갔다.
무장애길이라 나무 데크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비 온 뒤였음에도 미끄럽지 않고 걷기 편했다.
경사도 5~8% 정도라 크게 부담스럽진 않았다.
걷다 보면 여러 갈래 길이 나오지만, 흔들리지 않고 직진하면 된다.
‘노고록’하게 나무 데크길을 천천히 한 시간 가까이 걸으면, 메인 도로라 할 ‘가멍오멍 숲길’을 만난다.
이 길을 따라 ‘엄부랑 숲’으로 향한다.
숲길 이름들이 제주 사투리에서 따왔다.
'편안한'을 뜻하는 '노고록 숲길'부터
'가뿐한, 가벼운'을 뜻하는 '가베또롱 숲길'.
'산뜻한, 멋진'을 뜻하는 '벤조롱 숲길'.
'있는 그대로'라는 뜻의 '오고생이 숲길'.
제일 하이라이트인 '엄청난, 큰'을 의미하는 '엄부랑 숲길'.
등등까지.
재치 있고 위트 있는 제주도만의 이름들이
이곳, 숲의 분위기를 잘 보여줬다.
(홈페이지 종합안내도 참조 https://seogwipo.go.kr/healing/info/forest/layout.htm)
길을 안내해 주셨던 해설사님의 표현에 따르면
'허벌나게!'라는 뜻을 지녔다는 '엄부랑'.
즉, '엄청난 숲!'이라는 뜻이라고 말해주셨다.
사실 서귀포 치유의 숲은 여러 상을 받은 유명한 숲이다.
대한민국 100대 명품 숲 중 하나이고,
엄부랑 숲은 전국대회 대상도 받았다니, 그 명성이 대단했다.
여기까지 오는 나무데크 숲길도 너무 좋았는데.
얼마나 좋길래 상을 이렇게나 많이 받았을까?
오르막길을 따라 쭉 걷다 보면, 드디어 엄부랑! 엄청난 숲을 만나게 된다.
한눈에 다 담기 어려울 만큼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서서 우리를 맞아준다.
거대한 삼나무들이 압도적인 위용으로 우릴 바라본다.
진짜 '엄부랑!'
'허벌나게' 크다!
처음에는 계속 나무 데크길만 따라가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하면 엄부랑 숲을 못 본다.
이렇게 엄청 난 숲을 못 보다니!
큰일 날 뻔했다.
나무 아래에 서 있는 사람들이,
마치 한낱 점처럼 작아 보일 만큼,
거대한 나무들이 우리를 반겼다.
거대하고 큰 나무들이
사람들을 숨기듯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고 있었다.
“쉬고 싶었다며? 편히 지나가.”
커다란 나무들이
깨끗한 공기와 편안한 색감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위로했다.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고민과 걱정이 어느새 잊히고,
자연스레 아무 생각 없이 천천히 걷게 된다.
서서히
숲의 치유력이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커다란 나무 사이로,
방긋 인사하는 귀여운 단풍나무도 만났다.
단풍나무를 지나 갈림길이 나오면 힐링센터를 향해 직진.
숲 속 깊숙한 곳에는 '힐링센터'라는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화장실뿐만 아니라, 실내 테이블과 의자, 오디오북까지 갖춰져 있었다.
비 온 뒤라 바깥 의자들은 젖어있었지만,
실내 공간 덕분에 편안히 물을 마시며 잠시 쉴 수 있었다.
사실, 이 힐링센터 말고도
오는 길엔 다양하게 앉아 쉴 수 있는 숲 속 공간들이 있었다.
마치 이곳은
산을 힘겹게 올라야만 하고,
목표를 향해
정상을 향해
힘들게 걸어야만 하는 곳이 아니라
"숲은, 편히 쉬는 곳이야!"
라고 말하는 듯했다.
앉아서 산림욕을 할 수 있는,
누워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편한 자세로 나무들과 교감할 수 있는,
그런 휴식하는 곳.
숲은 ‘치유의 공간’이라는 걸
몸으로 느끼게 해 줬다.
잠시 앉아 심호흡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보기도 했다.
거칠어진 호흡은
어지러웠던 마음은
우린 휴식을 한 후,
천천히 무장애 데크길을 따라왔던 길로 내려왔다.
메인도로라고 할 수 있는 '가멍오멍 숲길'을 따라 내려가면,
빠르게 내려올 수는 있으나
꽤 가팔랐고, 비 온 뒤라 미끄러워 보였다.
그리고 낭만도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우리의 귀여운 폭군,
내 동생 율이가 데크길로 가고 싶다고 떼썼다.
이 복잡한 길에서 길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갑자기 “이쪽! 이쪽!” 하면서 왔던 길로 돌아가자고 우겼다.
그렇다면 따라가야지 어쩌겠나.
결국 동생을 따라갔다.
길이 복잡하긴 했지만, 곳곳에 이정표가 잘 되어있었다.
여기저기 얽혀있어 걱정했지만,
'출구'표시가 잘 되어있어 출구를 향해 걷다 보니 무사히 출발점에 도착했다.
출발점에 도착하니 시간은 오후 4시 반.
내려와야 하는 시간에 딱 맞춰내려왔다.
두 시간 남짓, 우린 숲에서 치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길을 걷는 동안,
거대한 나무들이 우리를 지키듯
감싸 안아주는 느낌이었다.
율이가 산길에서 제멋대로 가기도 했지만,
가만히 나무를 바라보기도 했고,
웃으며 숲길을 따라 걷기도 했다.
또, 나와 함께 힘차게 심호흡하기도 했다.
내게도, 부모님도, 동생 율이도,
몸과 마음을 잠시 쉬게 하는 곳이었다.
몰랐다.
서귀포 치유의 숲은
누구에게나 ‘힐링’과 ‘쉼’을 선물하는 곳이다.
마음이 답답할 때,
조용한 숲길을 걷고 싶을 때,
'힐링'이 필요할 때,
이곳으로 오세요.
여긴 치유의 숲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