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야금야금 맛보기
세월 참 빠르다. 아침이 밝은가 싶더니 어느새 황금빛 노을이 아르노 강 위에 걸려있다. 필자('나'라고 한다)는 얼마 전 피렌체 외곽에 위치한 피에솔레를 다녀왔다. 그곳은 몇 해 전 이탈리아 요리를 배우기 위해 유학을 떠나 열심히 땀을 흘리던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나는 이곳을 두 번 방문한 적 있는데 가슴이 탁 트이는 아름다운 풍광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곳이다. 나는 그곳에서 마치 다른 별에 불시착한 우주인처럼 하루 종일 발품을 팔았다. 대략 7시간이 흐른 후 셔터음은 멈추었고, 시장기와 갈증이 나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숙소로 되돌아가야 할 시간.. 나는 속으로 몇 번이고 되물었다.
(언제쯤 이곳으로 다시 와 볼 수 있을까..?)
피에솔레를 향해 걷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내 추억이 살포시 내려앉아 있는 언덕 위를 바라보니 감회가 새롭다.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한 법. 인간이 어떤 계획을 세울지라도 신(神)의 도움이 없이는 완성할 수 없다고 했지 않던가. 나는 그 신이 어떤 형상을 하고 어떤 짓(?)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의 계획보다 훨씬 더 위대한 일이 나로부터 일찌감치 발현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우연치고는 필연에 가까운 운명이라고나 할까. 내 곁에서 아내가 말을 걸었다.
"아직도 멀었어? 세상에 이런 곳도 다 있다니..!"
아내는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탄성을 자아냈다. 피렌체의 3월은 내 조국 대한민국의 4월에 해당하는 절기와 비슷하거나 더 빠르고, 지중해성 기후는 겨울이 발을 디디지도 못할 만큼 완강한 거부를 하는 곳. 피렌체 중심에서 사람들이 미켈란젤로에 열광하는 사이, 피에솔레는 막 외출 단장을 끝낸 아리따운 처녀의 모습으로 변모해 있었다. 진정한 르네상스는 이런 게 아닐까.
나는 피에솔레로 이어지는 '뷔아 산 도메니코' 곁에서 인간의 계획과 신의 결정 등 한 인간의 운명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5년 전 이탈리아 요리와 언어를 배우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인 바 있다. 곁에 있던 지인들의 표정을 살펴보면 '불가능에 가까운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 같은 일은 지인뿐만 아니라 어학원의 선생님 조차 희귀 동물을 대하는 듯했다. 나의 이탈리아 이름은 '프란체스코'였는데 어느 날 문법 시간에 그녀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프란체스코, 왜 이탈리아어 배우 세효? ^^"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즉각 대답했다.
"앞으로 10년만 잘 살고 싶습니다. 10년만.."
그리고 대략 5년의 세월이 후다닥 소리 소문도 없이 내 곁으로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그때가 2015년 3월이었으므로 잘 살고 싶었던 세월이 만 6년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6년이란 세월은 느끼는 바에 따라 서로 다르므로 어떤 이에게는 60년 이상의 값어치가 될 수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촌각을 다투는 짧은 시간일 수도 있겠다.
나는 피렌체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피에솔레 언덕 위에서 몇 해 전의 일을 떠올리며 마치 꿈같은 일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땐 혼자였지만 지금은 아내가 내 곁에서 함께 동고동락하고 있는 것. 그동안 우리는 이탈리아에서 거주할 수 있는 기본적인 절차 모두를 끝내고, 이탈리아 혹은 유럽을 통째로(?) 야금야금 맛보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우리가 걸음을 옮기는 곳곳에는 그 어떤 진귀한 요리보다 더 아름답고 풍요로운 세상이 오감을 자극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르네상스에 열광하고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앞에 펼쳐질 '인생의 르네상스'를 위해 열심히 발품을 팔고 있는 것. 늦게 배운 도둑 날새는 줄 모른다더니 우리가 그런 셈이라고나 할까. 내게 있어서 이탈리아어는 최고의 요리를 기분 좋게 먹을 수 있는 도구로 변신을 거듭하여 아내와 나를 발길 닿는 곳으로 인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