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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Mar 28. 2024

기다리고 있는 너에게

민들레꽃

시작과 끝은 연결되어 있다.

원인이 있고 결과가 생기는 것처럼, 자연의 섭리대로 말이다. 뿌리내린 곳에서 피어난다. 경로는 정확하게 한 선상에 있다. 끝이 난 것도 아닌데 모든 것이 내 탓인 것 같아서 종일 벗어나기 어렵다.


 큰 장바구니를 들고 길을 나섰다. 미리 냉장고를 채워두지 않으면 시간을 그냥 흘러가 버려니까, 한가한 추리 놀음은 그만두자고 말이다. 바구니가 무거울수록 엄마로서 권위를 세울 수 있을 테니, 할 코너를 잘 살피면 간식거리를 많이 구할지도 몰랐다. 집 근처를 벗어나기도 전에 매화꽃 향기 불러서 그 앞을 놓칠 수가 없었다. 진한 향기가 아쉬워  매화꽃 표지판이 세워진 곳을 빙 둘러 걷는데, 발아래 노란 점들이 나타났다. 민들레였다.


길 위에 들레 꽃 가던 길을 헷갈리게 했다.

원래 민들레가 피는 자리는 표지판을 따로 세우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무렇게나 살고 싶은 날도 있으니까


 

 슬아슬한 경계 핀 민들레는 언제 발에 밟힐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자전거 바퀴에라도 사라질지 모른다. 민들레 중엔 다정한 제비꽃을 곁에 둔 운이 좋은 녀석도 있었다.  


작은 민들레꽃을 보며  나 자신을 떠올다.

갓털을 공중에 띄우고 비행을 하듯 날아서 도착한 도시. 내 눈앞에 부지런히 피어나는 도시의 야생화는 나를 살펴주는 듯 말을 걸었다. 귤밭에 살던 노란 꽃을 좋아하던 꼬마가 놀잇감으로 갓털을 불었던 오래된 어제가 피어난 것 같기도 했다. 작은 갓털에 달린 씨앗이 태어난 품에서 떨어져 나와 초록잎 사이로 노란빛을 내고 있다니. 실오라기처럼 생긴 꽃잎이 한데 묶인 것을 보면 지구에 모든 시련을 다 품은 것처럼 장엄해 보였다. 꽃잎이 몇 장이나 될지 세어 보려다가 머릿속에 상념도 그만큼이나 많아질까 봐 그만두었다.


 그래도 민들레는
내게 꿈을 잊지 말라 노래한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으니 그 동심을 잊지 않았는지 걱정해하는 모습으로 도심에 구석구석 타났다. 어제한 송이였던 민들레는 꽃송이가 늘어나서 오늘은 복작 복작 화목해 보였다.



 가늘고 길쭉한 꽃잎이 층층이 둘러진 모양은 아무래도 미워할 수 없다. 장난기 많은 아이가 머리카락을 다듬고 어색해하며 까르르 웃는 것처럼 보여 자꾸 눈이 간다.

민들레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친근한 야생화다. 토종 민들레는 납작하고 꽃대가 짧은데, 외국에서 들어온 종은 꽃대가 길어 코스모스처럼 바람에 이리저리 까딱까딱거린다. 보기 드물게 흰 민들레를 만날 때도 있지만 샛 노란 민들레꽃은 귀여운 아가처럼 어디서든 반갑기만 하다.


꽃을 피울 때는 납작 누워있더니 어느새 동그란 털로 변신한 민들레꽃은 멀리서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꽃이 피었던 줄기는 어느새 전보다 서너 배는 더  길어져 있다.  밖으로 나갈 생각에 들뜬 아이처럼 목을 길게 빼고 말이다. 갓털이 홀씨를 하나씩 챙기고 세상 여행 갈 채비를 마친 것이다. 이별은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운명이지만 어디서든 시작할 것이다.



눈부신 하얀색의 보드라운 털로 탐스럽게 바뀐 민들레 씨앗을 그냥 지나치긴 쉽지 않다. 민들레는 여기저기서 같이 놀자며 아이들을 불러낸다. 공처럼 둥근 갓털 뭉치를 준비한 민들레를 마다할 아이는 없어 보였다.

아이들이 던지는 작은 공은 짝꿍을 찾은 듯 순식간에 세상 밖으로 튕겨나간다.


갓털을 부는 모습도 아이들 얼굴처럼 재각각이다. 꽃을 꺾는 것이 나쁜 것이라고 알고 있는 아이는 고개 숙인 채 입바람을 분다. 그리고 다른 아이는 갓털이 떨어질까 봐 조심히 꺾어 들고 크게 심호흡을 한다. 마치 생일 케이크에 꽂힌 촛불을 끄듯 진지하고 즐거운 표정으로 '후'소리를 내며 바람을 분다. 촛불이 완전히 꺼질 때까지 몇 번이고 불 듯, 갓털이 하나도 남지 않게 몇 번이고 분다.


아이는 민들레 갓털을 불며 엄마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고, 어떤 엄마는 그런 모습을 남겨두고 싶어 사진을 영상으로 담는다. 어떤 엄마는 아이와 같이 불면서 까르르 웃기도 했다. 어떤 아이는 엄마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혼자 불며 엄마 뒤를 따라갔다.


 아이들이 불어댄 민들레 촛불은
또 아이들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


민들레 씨앗을 날리려고 조심성 있게 주변을 살피는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이 키운 민들레는 오만함도 편견도 없는 동심의 밝은 세상에 산다.



꽃을 마주 보며 배운 것 중에
 하나는 반드시 떠날 때가 온다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우리는 등 떠밀려 세상으로 나왔고, 부모의 곁에서 성장해서 결국엔 부모의 자리 자신의 자리가 된다. 혹은 부모를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 정착을 해서 스스로 자신의 집을 만들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살아남아야 꽃을 피운다. 약해져서는 안 된다. 길을 잃지 않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


견디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도망가고 싶어졌다.

버릴 것이 있다면 툭 털어놓고 말이다. 민들레 갓털의 여행처럼 멀리 나서고 싶다가도 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쓰게 된다. 야생화 지도처럼.


집을 나설 땐 가방이 텅 비었는데, 꽃 사진으로 가득 차서 묵직해졌다. 누가 내게 "꽃이나 찍고 참 한가하시네요."라고 해도 상관없다. 연을 있지만 들어줄 사람들이 있을까. 폭로를 하고 나서 내 탓이 사라진다면 하겠지만 원인과 결과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포기'라는 선택으로 견딜만한 일을 만들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그래서 더 멀리 나아가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선택에 책임을 지고 또 선택을 한다. 후회가 되어도 어찌 되었든 나는 선택을 했다.


 비 내리는 아침, 나는 내게 선언했다.


세상 밖으로 나가자.


 새로 핀 꽃들을 보러 가는 길엔 나도 지참물을 준비했다. 현관부터 베란다까지 모서리가 있는 구석을 샅샅이 뒤져서 회색 털뭉치로 자란 먼지를 모았다. 2리터 종량제 봉투에 지난 후회들을 얼마나 채웠을까. 쓰레기통엔  기에 시달린 아이가 넣어둔  흰 휴지뭉치가 넘치듯 쏟아졌다. 다 채우지 못할 것 같던 봉투는  마침내 꽉 찼다. 하룻밤 지난 음식물쓰레기까지 양손은 할 일이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서 혼잣말을 했다. 

세상사람들이 내게 " 왜 그렇게 살아?"라고 말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계속 나아가는 거니까. 계절이 가는 방향으로 걸어간다. 휴식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멈추고 싶지 않았다.


꽃이 필 자리를 고를 때 땅에게 허가를 받는 것은 아니듯 내가 글을 쓰는 일도 그러했다. 씨앗을 넣었더니 문장이 쓰이고 피어났다. 품종이 좋은 꽃으로 피어나지 못했지만, 민들레처럼 누군가의 시선을 끌기도 했다.

야생화지도를 펴도 가고 싶은 곳이 없던 날이었지만, 야생화처럼 있는 그대로 피는 가장 솔직한 나를 만났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선택이나 포기가 아닌 '생각을 바꾸는 것'이었다.

민들레 갓털이 공중여행을 마치고 어디서 피는지 나는 모른다. 민들레도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처럼. 나는 기다린다. 단 하나의 심장에 기대어 어디서든 새로 피어날 것이라는 꿈은 진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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