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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Mar 21. 2024

벚꽃 감수성이 좋은 너에게

벚꽃나무

 봄은 서두르는 듯하더니 년 보다 늦어지고 있다. 작년에 찍어둔 사진첩을 보며 꽃을 보러 갈 장소를 살피는데 야생화는 초록 덮은 흙 에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춘분 날 나선 산책었다. 련이 겨우 입을 열었고, 매화꽃은 나무를 완전히 장악했는데, 아직도 개나리는 고개 숙인 채였다. 그러다가 연분홍 살구꽃이 핀 걸 보화사한 벚꽃이 떠올다. 나무는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처럼 모든 것이 고요한 나뭇가지를 살피며 벚꽃이 데리고 올 웅장한 감수성을 떠올보려 했다. 꺼번에 피어난 연한 분홍잎 벌과 나비 그리고 사람까지 홀리듯 불러 모으는 장관을 누구도 말릴 수 없을 테니, 나도 창문 너머 벚꽃이 부른 사람들을 구경하며 '이유 없이 좋은 마음'을 떠올릴 차례기도 했다.


 두근거리는 사랑은 퇴색되었나 싶다가도 벚꽃나무 아래에 서면 좋아서 날뛰는 심장소리가 선명하게 나를 들었다. 교정에 벚꽃이 날리면 선생님께 첫사랑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던 아이는 이제 누가 되었는지, 받은 적 없는 연애편지를 벚꽃 잎을 붙잡으며 오기를 기다리는 그 감수성을 떠올려 보고 싶다.

  


 벚꽃이 가지마다 꽃송이들로 통통해지는데, 내 몸은 바람 빠진 것처럼 숭숭 구멍이 나서 납작해져 버렸다. 아이들이 모두 봄에 태어나서 인지 벚꽃이 필 때가 되면 출산했던 몸이 기억하는 듯했다. 온종일 누웠는데도 몸이 자꾸만 방바닥을 파고 들어가는 기분이다.

 

 창밖 너머 보이는 벚꽃나무가 자꾸 눈길을 끌었다.

꽃이 피기 시작하자 나무 아래 오가는 사람들은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아이를 데리고 어른들은 꽃을 보여주려고 번쩍 안아 올리기도 했다. 황사바람 부는 날만 잠시 고요해졌을 뿐 나무 아래는 늘 사람들이 모였다.

먼지바람이 물러난 파란 하늘 아래 새하얀 꽃잎은 더 부풀어 가게 앞 풍선 인형처럼 사람을 불러 모았다.


꽃을 찍기 시작하면 늙은 거야!


 누군가의 SNS 계정에 올린 꽃 사진에 '엄마 프로필 사진 갖고 왔어?라고 묻는가 하면, '늙나 보다 꽃 사진을 올리는 걸 보면...'이라며 거들었다.

 어떤 아내는 남편이 꽃을 찍기 시작하면 아줌마 소리 듣는다며 꽃을 찍는 것을 한사코 말리니 남편 몰래 도둑질하듯 사진을 찍어 올린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바쁜 일상에 꽃을 볼 여유도 없이 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꽃이 아니었다면 '삶'이 무엇인지도 해석 못했던 나였기에  그들의 수다도 내게는 배움이었다. 그렇지만 어딘가에 나 같은 사람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벚꽃의 감수성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어쩌면 그런 감수성을 갖지 못한 사랑은 없을 것 같았다. 는 것 만으로 심장이 뛰게 한다는 나의 확신이 맞다면 말이다.  



 벚꽃은 언제나 피었다. 언제나 봄비 내렸다.

사랑은 화사하게 피어났다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이별, 만남과 헤어짐의 모두 벚꽃나무 아래에서 일어났다.

벚꽃나무는 꽃을 피우느라 참았던 갈증을 한꺼번에 채우는 것일까? 비떨어뜨리는 꽃잎을 보는 마음은 아쉽지만, 나무는 꽃잎 바닥으로 삽시간에 던져 다. 가 났다. 구를 원망해야 할지 이유도 모르겠고,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할 지도 헷갈려하는 내가 이상했다. 무엇이었을까? 그러다 꽃비가 남겨준 풍경 안에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나의 감정을 알게 되었다.


버려질까봐 두려웠다.


 랑 받고 싶었다. 랑받고 싶은 마음은 온 세상을 뒤흔드는 스타가 되고자 한게 아니었다. 나를 낳았거나 혹은 길러주었던 양육자에게 받는, 혹은 나와 피를 나눈 형제들에게서 받는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언제쯤 내가 마음에 들까요?"   

토라진 나를 위해서 남겨 둔 걸까. 나무가 먹다 남은 빗물 웅덩이에 젖은 꽃잎이 만든 장식은 꽃잎 하나하나가 내 몫으로 남겨둔 단어들 같아 그것으로 족했다.

그 뒤로 나는 매년 벚꽃이 내리는 감수성을 기다리게 되었다.


꽃잎이 만개하면 꼭 기다렸다는 듯 린다. 

벚꽃은 봄비를 만나면 곧바로 떠나버렸는데, 는 모르는 나무와 봄비가 약속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꽃잎을 데리고 가는 봄비는 터프한 사내의 목소리처럼 거칠었다. 거대한 벚꽃나무를 정말 감싸 안듯 비는 웅장하게 아졌다.

거침없이 내리는 빗방울이 얼마 묵직한지, 운동화가 다 젖도록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꽃으로 있을 때는 보지 못했던 얇고 은은한 벚꽃의 감수성이 나는 재촉하며 한 번도 쓰지 못한 것들을 꺼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나갈까 말까. 망설이며 다시 숨어 버리는 문장들이 알아서 나가게 할 수도 없면서 계속 만지작 거렸다.

 

 엎어지면 코가 닿을 만한 집 골목에 벚꽃이 피었다.

늦음 밤까지 구경꾼들은 쉽사리 집으로 돌아가지도 않았고, 수많은 연인들이 찰싹 붙어 애정행각을 벌이는 곳이었다. 딱 일주일 남짓 되는 벚꽃 잔치에는 인적도 없던 도로가 차량이 통제되고 사람들만 다니는 길이 되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면 그 앞으로 지나야 했는데, 밀려오고 떠밀려 가는 사람 파도를 타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이를 불편하게 지나가면서 벚꽃이 날리는 풍경을 가리는 아이가 되었다. 리집엔 족 사진이 없었지만 꽃잎이 다 떨어지기 전에 한 번도 사진을 찍을 기회는 오지 않았다.

 

 벚꽃이 필 무렵부터 감수성이 풍부하고 빨간 머리를 한 소설속의 아이를 자주 떠올렸던 것 같다. 초록 지붕 집으로 가는길, 매튜 아저씨와 마차를 타고 가던 앤이 벚꽃을 보며 중얼거렸던 말들을 따라 해보려고 했었다. 벚꽃이 피는 계절이면 나는 더 고아처럼 사랑을 그리워했다.


 며칠 만 버티면 만개 했던 꽃이 질것 같은데, 참다가 쏟아진 눈물처럼 비는 여러 날 동안 거친 바람까지 데리고 새차내렸다.

 꽃을 찍는 사람도 없고, 꽃 구경을 나오는 사람도 모두 사라진 거리가 반가웠다. 비오는 벚꽃 가로수 길을 우산 속에 숨어 느릿느릿 집으로 가는 길은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았다.  


봄비가 만든 물 웅덩이 마다 벚꽃은 물놀이하듯 귀엽게 움직였고, 걸을 때마다 신발 바닥엔 꽃이 스티커처럼 달라붙었다. 꽃잎이 여러 겹 뭉쳐지면 신발에서 뚝 떨어지고, 다시 스티커를 하나하나 붙여가듯 또 달라붙었다. 길 따라 내가 만든 벚꽃 잎 발자국이 나를 졸졸 따라온 듯 느껴져, 남겨두기가 미안했다.


나도 앤처럼 뭔가를 머릿속으로 지어내며, 온갖 공상으로 알 수 없는 놀이를 즐겼던 것 같다.

아무도 내 존재를 증명해주지 않았던 십 대의 감수성은 벚꽃과 함께 피었다 시들었다를 반복했다.


 

 변방에 사는 기분이 싫어서 도망 나왔는데, 결국 태생은 버 못하는 가보다. 자연에서 위안을 얻으며 꽃을 찾아 다양한 감정들을 불러오는 일이 점점 더 좋아지더니 급기야 푹 젖은 채로 지내고 있다. 그렇게 도시의 야생화 지도는 잃어버린 나를 찾는 여행의 기록으로 계속  경신되고 있다.


처음엔 담벼락 아래 떨어진 능소화 꽃 한 송이가 눈에 띄었는데, 곧 능소화가 필 장소가 지도 위에 표지판처럼 그려지고 새로운 꽃들이 추가 되었다. 반복되는 일상보다 돌아오는 계절 다시 핀  꽃을 보며 훨씬 보람을 느꼈다. 나를 일깨우며 잊어버리지 말라고 당부하듯 말이다.


 사랑을 그리워 하던 지난 날도 이젠 기억 한 구석에서 상상력으로 불러와야 할 지경이다. 감동도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걸 나는 꽃이 지는 걸 보고 배웠다. 그러니  곧 쏟아질 벚꽃비가 어떤 감수성을 불러다 줄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허락해준다면 벚꽃이 있는 풍경이 담긴 가족사진을 갱신해야겠다. 엄마는 벚꽃이 이유없이 좋은데, 아이는 엄마보다 커서 하라는대로 포즈를 취하지 않을 테니.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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