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자면 내 아이는 한 시간을 꼼짝 안고 게임을 할 수 있다. 물론 꼼지락거리기는 하지만눈도 껌뻑하지 않는다. 그런데 난 10분짜리 동영상을 보는 것도 눈이 아프다. 남편은 영화 한 편을 한자리에서 보지만 나는 벌써 들락날락 몇 번이고 일어난다.영상이 체질이 아닌가 싶다가도 보고 싶은 영화는 여러 번 봐도 좋다. 드라마 한 편을 보면 머리가 아파서 두 편을 연달아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 차라리 같은 시간에 책을 보는 일이 더 쉽다.아니 더 좋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있는 것은 어색하지 않은데, 모두가 아는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편이었다. 여기서 아는 사람들이란 집안 경조사에 만나는 가족이나 일가친척들,아이들 친구 엄마, 동네 놀이터에서 만나는 동네 사람들이다. 이미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만히 있기도, 수다를 시작하는 것도 어렵기만 하다.
당연한 것일지 모르지만, 지금 내겐 남편과 아이들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다. 가족과의 대화는 무척 편안하고소중하다.종종 아파트 경비업무와 청소를 하는 관리인들이나 마트직원들과 도서관 사서에게 친근함을 느낀다. 거의 매일보는 직장동료와는 좀 다른 친밀감이다. 나를 돌봐주는 듯한 손길이 좋아서인지도 모르겠다.
나는수다스러운 면이 있는 반면 낯가림이 심하다.
진로 검사나 성격유형검사에 나는 외향적과 내향적 점수가 절반씩 나누어 나왔다. 오차가 있더라고 3% 내외였다. 다른 친구들은 분명 한쪽이 긴 막대그래프를 가지들 있었는데,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반반이었다. 이과 문과 선택 지도를 하는 선생님도날 보며 어디든 가라고 어느 쪽을 택할지는 내가 알아서 하라고 할 정도였다. 특징이 없는 건지 늘 경계에 선 사람 같았다.
이런 기분은 아주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그다지 좋게 여기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외향적인 능력을 더 드러내야 관계형성에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자꾸 지쳤다. 집에 돌아오면 가만히 누워서 쉬어야 했고, 회식자리에서도 밖으로 나가 홀로 걷고 싶었다. 경계에서 관찰자처럼 어느 쪽도 아닌 것이 나쁘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친한 관계가 되어도 나는 따로 뚝 떨어져 있고 싶어졌다.
불편한 가족들 틈에 지내다 보니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익숙했는지도 모르겠지만 군중 속에 살면서도 은둔하는 법을 터듭해갔다. 종종 아이 친구 엄마들 무리에서도 날씨 이야기를 하며 주변 풍경에 시선을 두고 멀리 도망갔다. 주제에서 떨어지는 잠깐의 휴식이었다.아이들을 키우면서 생긴 노하우인 줄 알았는데, 이미 나에게 장착되어 있었다.
침묵이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나와 지내고 싶은 욕구가 바로 침묵이었다. 또한 타인과 가까이 지내고 싶다는 욕구도 침묵이었다.
입을 다물고 있으니 주변의 말들이 귀에 잘 들렸다. 굳이 나서지 않아도 말을 하지 않고도 잘 내는 법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을 만나는 것은 내겐쉽지 않은 일이다.
마치 적성에 맞는 취미를 찾을 듯했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는 이 모든 걱정거리가 사라졌기때문이다.'조용히 지내기'가 글 쓰는데 가장 필요했다. 고요함 속에서 받아 적어야 할 단어들이 들렸다.
나만 들을 수 있는 단어들이었다. 미친 사람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종교적인 개시를 받았다는 그런 사람들이 하는 경험이 비슷할까? 아무튼 말로 설명하기가 참 어렵다. 고향집에서 일기장에 소망 쓰기를 하며 숨겨둘 때는 두려웠다. 밖으로 나가면 바다가 날 집어삼킬지 몰랐다.
모든 불안함은 글이 되었다. 고향을 두고 나왔는데 여기가 시작점인 듯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점점 혼자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혼자가 되지 않고는 할 수 없었다. 사유하는 일은 글을 짓는 일의 시작이었다. 고독한 공간에서 오래도록 외톨이가 되는 것이 필요했다. 때론 혼자 있을 때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분도 들었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골방에 들어앉아 글을 썼다는 것이 건강 상의 이유가 크다고만 생각했는데, 몽테뉴가 성의 탑에 홀로 들어간 이유도 다를 것이 없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도 아가사크리스티의 낡은 타자기도 모두 고독을 받아 적어가는 작가의 것이었다. 전에는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니 나도 다른 사람이 되어 갔다. 꽃이 다 꽃이듯 나도 그저 한 인간이었다. 별다른 특별함이 있다고 찾아낼 필요 없었다. 나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 그뿐이었다.
아이들이 왜 그런지 남편이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왜 그토록 꽃을 좇아서 글을 쓰는지도 말이다. 우리는 저마다 이유로 힘을 내며 살아간다고 한다. 왜 그렇게 간단한 명제를 나는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일까?
나에게 숨겨진 욕망 중에는 누군가보다 더 으슥하게 위에 오르길 바라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시시한 것들은 정말 세상에 필요 없는 쓸데없는 것들이라고 치부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한심하지만 사실 그러했다. 내가 보는 기준에서 사람들을 평가했던 것이다.
나는 어렵지만 누군가는 쉬운 일인 것이다. 좀 더 설명하자면 나는 의미가 없지만 누군가는 상당히 의미가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느덧 도시의 야생화 지도는 나를 찾아 나선 여행자의 기록으로 경신되고 있다. 모든 표지판은야생초 들이었다. 길고 여린 줄기가 바람에 흔들거리며 빈 공터에 무리 지어 피어있었다. 이름도 몰라 불러주지도 못했지만 물결치는 것이 꽃인지도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풀꽃이라고 하기엔 낭만스러운 것들이다.
오래전에 첫 아이를 데리고 남편과 나는 시댁에서 분가를 했다. 중랑천이 가깝고 아파트 단지 뒤에는 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가까운 곳이었다. 산후조리도 어색했지만 젖먹이 아이가 있으니 집 밖출입은 거의 하지 못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초록 나무숲을 보며 꼼짝 못 하는 마음을 달랬다. 산과 집 주변에 벚꽃이 만발해질 무렵 돌잔치를 한 아이를 데리고 동네 산책을 나섰다. 그렇게 동네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귀여운 꽃을 찾았다. 이름은 떠올리지 못했지만, 향기는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동그랗게 핀 꽃잎은 가운데가 노랗고 노란 꽃술을 빙 둘러 하얀 실처럼 가는 꽃잎이 달려있다. 꽃은 작았지만 향기는 라일락 꽃다발만큼 복스럽고 묵직하게 오래도록 주변을 맴돌았다. 뒤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 나를 보며 웃은 것 같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유모차에 앉은 채 말똥말똥 앞을 보는 아이의 웃음소리도 아니었다. 그 목소리는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나의 글쓰기가 시작된 것은 말이다.
다채로운 야생화가 뒤덮은 화단이 볼만해졌다. 꽃들을 들여다 내내 등뒤로따듯한 햇살이어깨를 찜질해 주듯 고맙게 느껴졌다. 포근한 점심시간에 집을 나섰더니 화단에 내리쬐는 빛이 어딘지 익숙해 보였다.
그리고 내가 무척 어려워했던 또 다른 일이 떠올랐다.
내가 자라던 귤밭엔 묘목들을 키우는 밭이 따로 있었다. 항상 양지바른 곳에 있는 밭은 가장 빨리 야생초들이 피어났다. 겨울에도 포근한 묘목밭엔 잡초가 나무를 덮은 보호망 아래 숨어서자랐다.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 둥굴레 싹이 올라오면 귤밭엔 아빠의 손이 귤나무 가지치기를 하기 시작했다. 가지치기는 그 해의 농사를 시작하는 일이었다. 추운 겨울을 보낸 귤나무의 굳은 어깨를 덜어주는 일 같았다. 아빠의 전정가위는 일정하게 쩍쩍 소리를 냈고, 종종 톱이 내는 소름돋는 소리도 들렸다.
아빠가 과수원을 오가는 동안, 언덕 위의묘목밭에서 잡초 뽑는 일을 했다. 외톨이처럼 작은 귤나무들과 하루를 보내는 일이 익숙했다. 가끔 비둘기가 울거나 아빠의 기침소리가 들렸고,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독한 장소였다.
무섭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잡초를 뽑는 일엔 고민을 많이 했다. 알록달록 야생화들은 뽑아내기 아까워서 꽃송이만 따로 모아두기도 하고, 얄미운 듯 팩 하고 던져버리기고 했다. 꽃을 버리는 일이 싫었지만 귤나무 아래는 아무것도 없어야 했다.
귤밭의 뱀딸기꽃은 어린 내가 좋아하는 노란색을 하고 있었다. 꽃이 지면 빨간 열매도 먹을 만해서 뽑아 버리기 싫었다. 화단에 핀 뱀딸기꽃을 보니 그 아이가 망설이던 때로 돌아간 듯 시간이 멈춰버렸다. 이제는 잡초를 뽑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면서도 빨갛게 익은 딸기 앞에서 금방 떠나지 못했다. 다 자란 열매는 늘 내가 독차지했기 때문이다.
내가 귤밭을 지겨워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영토에서 외톨이처럼 글을 쓰는 일과 닮은 꼴이었다. 끝까지 해내야 하는 잡초 뽑기는 팔꿈치 만했던 묘목이 결국 귤나무로 크게 했다. 그 여자아이의 기억이 뱀딸기처럼 붉은 선명함으로 찾아와 준 듯했다.
뱀딸기
어제 산책로에 먹음직 스런 딸기를 보았는데 다시 가보니 누가 한입 크게 베어 먹었나 보다. 절반이 사라졌다. 아마도 조금씩 갈아먹었겠지만 남은 절반을 다시 먹으러 올지 보초를 서서 지켜보고 싶었다. 귀여운 참새일지 꼬리가 긴 쥐일지 상상하며 어렸을 때 먹었던 딸기맛을 떠올려보았다. 한두 개 먹고는 그만두었던 맛이었다.
하지만 먹어보았으니 그것으로 나는 배가 불렀다. 침묵은 내게 말을 하지 않아도 말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나 보다.
탐스러운 딸기를 따서 손바닥에 수북하게 올려놓는 상상을 하며 사진 몇 장을 찍었다. 내가 따서 모아둔 딸기가 얼마나 수북했는지 나는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