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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May 16. 2024

나의 이름을 묻는 너에게

쥐똥나무꽃

 마지막 햇살이 고개를 숙이고 어둑한 길가를 홀로 걷고 있었다. 몸이 무겁지만 살짝 추워진 공기 속에서 익숙한 향기가 났다. 장미향인 줄 알았지만 금방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바로 쥐똥나무꽃이었다. 쥐똥나무의 하얀 꽃은 향기가 감미롭게 펴지며 나를 잡아당겼다.


 담장으로 많이 쓰이는 나무라서 이맘때 핀 꽃은 향기로워 시끄러운 차도를 걸을만하게 해 준다. 진한 향기는 언제 맡아도 솔직하고 강서 거부할 수가 없다. 안 그래도 반가운데  꽃향기가 더워진 공기를 타고 더 진하게 끓어올랐다. 장미꽃들도 질세라 향기를 뿌리며 담장을 휘감는 동안에 쥐똥나무 꽃은 라일락만큼이나 진한 향기로 벌들을 모으고 있다.


오월이 주는 자연의 향기로움은 가로수 나뭇잎까지도 선명한 녹색으로 짙어지게 하는 듯 보였다. 쥐똥나무는 회양목처럼 나무 자체가 담장으로 쓰인다. 마치 가림막처럼 차도에 날리는 먼지를 막아주고 사계절 푸릇해서 자연의 싱그러움을 잊지 않게 도와주는 고마운 나무다. 워낙 도심의 매연에도 건강하고 회양목 보다도 키가 커서 눈에 잘 띈다.


예전에 잘 가꾸어진 집 담장에서 장미덩굴과 쥐똥나무가 함께 핀 걸 본 적 있다. 빨간 장미꽃과 하얀 쥐똥나무 꽃도 잘 어울렸지만 향기가 섞여 더 강렬했다. 그 집주인의 안목에 확실하게 감동받아 자꾸만 생각이 났다.


 장미향기가 공기를 가볍게 감싸는 듯 향긋하다면, 쥐똥나무 꽃 향기는 묵직하고 부드럽게 주변에 스며든다. 쥐똥나무가 있는 곳 잘 기억해 두려고 야생화 지도에 꼭 표지판을 세워두었다. 바로 향기 때문이다. 한번 알게 되면 장미꽃처럼 좋아할 수밖에 없다. 길을 걷다가 '어디서 좋은 향기가 나지?' 싶으면 주변을 둘러보시길 바란다.^^ 분명 이렇게 작은 꽃이 피어 있을 것이다. 마스크를 내릴 수 없다면 초록나무 담장 주변에 벌들이 윙윙거리고 있는 것이 쥐똥나무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름이 너무도 하찮아 보여 불러주기가 미안한 나무이기도 하다. 아이가 태어나 작명을 할 때는 태어난 시, 날짜, 달과 년도 까지 해서 좋은 이름을 짓는다고 하는데, 나무나 꽃은 해도 해도 심하게 느껴지는 이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쥐똥나무'다.

 

쥐똥나무라는 이름은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쥐똥을 흔히 볼 수 있던 시절에 지어진 것은 맞는 듯싶다. 꽃이 지면 까만 열매가 열리는데, 약간 긴 타원 모양이 쥐똥을 닮아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름 짓기는 북한어가 더 만족스럽다. 검정 알 나무가 북한식 이름이라니 말이다. '알'과 '똥'의 차이는 북한과 우리와의 관계만큼 너무나 다르고 동떨어진 시선인 건 분명한 듯싶다.


쥐똥나무 꽃

 

 나무나 꽃 이름이 동물이나 사람을 비하하는 듯한 이름이 많다는 건 이미 알려져 있다. 요즘은 꽃 이름들도 순화되거나 다른 이름으로 고쳐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쥐똥나무는 여전히 쥐똥나무로 불린다.

 그래서인지, 한번 듣고는 바로 기억할 수 있었다. 그게 특이한 이름의 장점이기도 하다.

나무는 자기 이름이 마음에 들까?'


나에겐 비밀이 있다.

사실 비밀이 아니라 숨기는 것이 더 맞겠다. 기억을 더듬어 과거로 가보면 나는 어디 가든 눈에 띄는 아이였다. 미모가 놀랍거나 외모가 남달라서가 아니다. 순전히 이름 때문이다. 이름을 바꾸고 싶던 날이 많았다. 특이한 이름은 학창 시절 내내 곤란스러운 일들을 만들었다. 선생님들은 출석부를 부르기도 전에 이름을 부르며 누구인지 손을 들게 하셨다.


 수업 중에 '누구 해볼 사람?'이라는 말이 나오면 한숨이 나왔다. 출석부를 펴면 날 부를게 뻔했기 때문이다. 종종 날짜와 같은 끝자리 번호를 부르는 선생님도 있었지만 발표나 칠판 문제 풀기를 할 때면 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이름 때문에 항상 0순위로 불려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또 불편한 건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름 덕분에 한번 만나면 금방 날 기억했다. 그래서였는지 어디서 이름을 이야기하거나  이름을 밝혀야 하는 걸 피하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바깥활동을 하지 않다 보니 이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특별하게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평소에 이름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아이들이 엄마 이름 맞나고 물어봐."

"왜?"

"몰라 엄마 이름 쓰는 란에 엄마 이름 쓰고 있는데 옆에 친구가 그러잖아."

 

 엄마 이름이 특이해서 아이가 한소리를 들었다니, 한숨이 나왔다. 고등학교 때였나. 새로 바뀐 반 친구들이 서로 인사를 하는데 한 아이가 내게 웃으면서 말했다.

"너 이름 말이야. 할머니가 되면 바꿔야 하는 거 아니야?"

"...."

 그 친구는 내 이름이 할머니가 되면 너무 안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걱정하는 말이었다. 어려서부터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가 많아서일까. 웬만해서는 놀라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이 놀리듯 말을 걸든 이름을 듣고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 보아도 말이다.


한 영국 드라마에서 본적 있다. 남편이 전쟁터로 나가고 홀로 아이를 낳은 며느리에게 시아버지는 말했다.

" 아이 이름은 네가 지으렴."

" 그래도 아버지가 지어주세요."

" 아니다. 이름은 저 통조림에 붙여 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어 엄마가 부르기 쉽고 네가 좋은 걸로 하는 것이 맞단다. 네가 가장 많이 부를 테니까. 엄마인 네가 지으렴"

 

이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말에 부르기 쉬운 걸로 지으라는 표현에 순간 생각이 많아졌다. 내 이름 유별나서 피곤하긴 했지만 내가 좋아하지 않아 더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닐까. 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남들 눈에 띄는 것이 싫었을 수도 있었다. 낯가림이 심한 내가 유난히 돋보이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아버지의 욕구였다.

태어나서 지어진 이름은 따로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에 개명신청을 하셨다고 한다. 나도 아버지를 따라 법원에 갔었다고 하는데 기억은 전혀 나지 않는다. 무튼 지금 나의 이름은 쉽게 지어진 사연이 많은 이름이다.


내 아이들 이름을 지을 때도 작명소에 돈을 주고 지어오긴 했지만, 선택은 남편과 내가 했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의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중요하지 않는 것 같다. 매일 아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준다면 아이는 엄마를 더 믿고 자신을 사랑할 것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무쌍'이란 필명으로 글을 쓰고 있다. 오락가락하는 감정의 변화무쌍을 나는 글로 쓰고 싶었다. 그래서 '무쌍'으로 내 만든 이름이다. 언젠가 필요하면 나의 본명을 쓸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나는 안심이 되고 편안하다.


 숨겨두고 싶다는 익명성이
나를 글 쓰게 하기 때문이다.



비오는 날 쥐똥나무 꽃


 쥐똥나무는 향기롭다. 게다가 삭막하고 지저분한 아스팔트 위에 공기를 깨끗하게 해 주고 싱그러운 자연의 일부로 소중한 존재한다. 때론 사람들이 이름을 모른 채 향기 좋은 담장나무로 기억했으면 싶기도 지만 사람들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잠시 향기로운 쥐똥나무 꽃을 보며 이전 과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쥐똥나무의 향기를 맡을 때마다 이름 때문에 고생했던 나와 비슷해 보여 더 시선이 갔지만 이젠 그만두어도 될 듯싶다.

 특이한 이름을 가진다는 건 금방 각인되어 기억될 수 있다면  그것도 장점이 아닐까. 그리고  글을 쓸 수 있다면 어떤 이름이든 상관없었다.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할지 어떻게 살지가 더 중요한 일이었다.


오늘 표지판에는 아주 정성을 다해서 쥐똥나무꽃이라고 쓰고 그 아래 '한번 맡으면 절대 잊지 못할 향기'라고 적어두었다.

나의 글도 악취가 아닌 시간을 감싸는 향기가 되길 바라며 쥐똥나무가 촘촘한 길 위를 좀 더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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