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빛
삼일 째 아침. 숙소의 작은 정원을 구석구석 걸었다. 그제야 곳곳에 보물찾기하듯 숨어있는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저 여름이라는 계절 속에 놓여있는 것만으로, 흔한 크리스마스장식들은 더없이 반짝여 보인다. 여름의 환한 태양빛을 온몸에 한껏 받았기 때문일까. 반짝이는 장식들이 품고 있는 여름의 온도에, 내 마음도 따뜻해진다.
여름걷기
오늘로 삼 일째인 식당까지의 작은 아침산책. 매일이 ‘하염없이 걷기’의 연속이지만, 새 아침을 맞아, 오늘도 저 하늘 높이 떠오른 여름의 태양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숙소 밖으로 첫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엔, 하루의 다른 순간들과는 다른 설렘이 있다. 산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길에 무심하게 널려있는 알록달록한 빨래들에 마음을 빼앗긴다. 걸음을 멈추고 한참 바라보다가, 사진을 한 장 찍는다. 이 순간 내게 따스하게 내리쬐는 여름을, 빛을, 온도를, 공기를, 나만의 보석상자에 담기 위해서. 햇살은 여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여름의 햇살을 품은 모든 것들은 이리도 선명한 색깔로 거리 곳곳에서 내게 활기차게 말을 걸어온다. 타박타박 여름 속을 걸으면, 도시의 풍경 속에선 그저 지나쳤던 새까만 전선들마저, 특별한 존재가 되어 눈에 박힌다. 그 너머에, 파르란 여름하늘이 바다가 되어 흐르고 있기에.
어느 집 담장에 홀로 피어난 꽃처럼 누군가 매달아둔 새빨간 크리스마스장식 하나, 또 어느 집 담장을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듯 뒤덮은 담쟁이덩굴들, 어느 집 나무엔 푸르른 과실이 주렁주렁. 길모퉁이엔 떨어진 꽃잎들이 콘크리트 위에 마지막 수채화를 그렸다. 마침내 당도한 오늘의 식당 앞엔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가지런히 세워져있다.
<Vegan and Vegetarian Restaurant>
간판이 눈길을 끈다. ‘비건’과 ‘베지테리언’을 모두 표기한 이유가 뭘까, 궁금해진다. Vegetarian이 ‘육식을 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면, Vegan은 그보다 더 확장된 개념이다. 예컨대 식생활에 있어서는 육류뿐만 아니라 생선, 달걀, 유제품 등까지 금하고, 동물의 가죽이나 털로 만든 의류나 동물의 일부를 재료로 하거나 동물실험을 하는 화장품은 사용하지 않는 등, ‘Vegan’은 생활전반을 아우르는 양식이다. ‘Vegan’ 내에서도 생선을 허용하는 경우는 ‘Pesco’, 달걀을 허용하는 경우는 ‘Ovo’, 유제품을 허용하는 경우는 ‘Lacto’등으로 따로 용어를 붙여 구분하지만, 용어를 하나하나 외워두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Vegan’ 속에 다양한 생활양식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역동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개중엔 나처럼, 기존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고, 또 저마다 그러한 생활양식을 택한 이유도 다양할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에 다다르는 것은, ‘인간이란 모두 제각각의 고유하고도 다양한 존재들’이라는, 마르지 않고 흐르는 강물과도 같은, ‘역동성’일 것이다.
너머의 수평선
신발을 벗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한 쪽 벽이 탁 트였다. 그 너머에, 파르란 수평선이 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처마 밑에 매달린 모빌들이 공명을 한다. 파도가 한 차례 솨아아 밀려오고 난 후에 하얗게 잦아들 듯, 소리를 따라 마음이 가라앉는다. 드넓은 바다가, 마침내 가장 멀리 나아간 곳에서, 차분히 하나의 선이 된다.
바람의 소리와 하나 되어
초록야채를 갈아 만든 스무디, 두부와 색색의 채소를 썰어 넣고 라이스페이퍼로 말아낸 스프링롤, 커리소스로 볶은 그린빈. 곧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식탁이 채워졌다. 스무디를 먼저 마셔보니, 시럽이나 우유가 아니라, 초록야채들로만 꽉 채워진 맛이다. 들뜨는 마음을 따라 신선한 색깔들을 먼저 눈으로 충분히 훑어본다. 자연의 빛깔들은, 참 아름답구나. 쉽사리 젓가락을 들 수가 없다. 한참 후에야 스프링롤을 하나 집어 입에 넣어보았다. 아삭아삭한 식감, 그 속에 가득한 수분이 생생하게 입안을 가득 채운다. 생기가 넘치는 맛은 곧 나를 야채들을 키워낸 흙과 물과 바람과 햇빛으로 이끌었다. 바람이 울려내는 소리들에 귀 기울이며 젓가락질하고 있으니, 먹는 것이 수양이 된다. 바람이 울리는 소리를 따라서, 나도 그 소리의 일부가 되어본다. 바람이 되어본다. 그 바람이 닿는 잎사귀가 되어본다. 잎사귀가 떨어져 잠드는 흙이 되어본다. 구름이 춤추며 흩뿌린 빗물을 흠뻑 마시고, 하늘 높이 떠오른 태양을 온몸에 새겨본다.
바나나에 춘권피를 감싸 튀기면
식사를 주문할 때부터 눈여겨보아두었던 메뉴가 있었다. 바나나튀김. 치앙마이에서 흔히 먹는 간식이다. 종이처럼 얇게 썰어 과자처럼 튀겨내거나, 뭉텅뭉텅 한입 크기로 썰어 밀가루옷을 입혀 튀기거나, 방법은 가지가지다. 이 집에서는, 바나나를 통째로 춘권피에 감싸서 튀겨낸단다. 이건 좀 흔치 않은 레시피. 먹어보지 않을 수 없다. 주문을 하고, 빈 식탁을 앞에 두고, 기다린다. 저 너머의 수평선을 보며. 바람이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북적북적 점심을 먹던 손님들이 떠나고 우연히 혼자된 순간에,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바삭바삭하게 튀겨진 갈색 춘권피 속에 크림처럼 부드러운 새콤달콤한 바나나과육. 갓 튀겨낸 따끈따끈함까지. 바나나를 춘권피로 감싸 튀기면? ‘진짜 맛있거덩요. 그래서 꼭 이 식당에 다시 오고 싶거덩요.’
자기만의 색
식당을 나와 다시 걷는 동안, 무성하게 자란 바나나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버려두어도, 그저 이곳의 흙이, 바람이, 빗물이, 햇볕이 키워내는 듯, 바나나나무는 이곳저곳에 쑥쑥 자라나 거인의 부채 같은 잎사귀들을 펼치고 있다. 목을 꺾어, 저기 하늘까지 자란 바나나나무를 올려다보면, 손닿지 않는 높이에 알알이 빼곡하게 영글어있는 푸릇푸릇한 바나나. 치앙마이의 바나나와, 제주도의 귤은, 아마도 저들끼린 서로 가장 친한 친구가 아닐까? 어느 집 대문 앞엔 고양이가 따사로운 햇빛 속에 누워 태평하게 낮잠을 자는 중이다. 치앙마이의 골목길에서, 반드시 마주치게 되는 존재들. 목걸이를 한, 누구네 고양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인기척에 깨어난 고양이는 태연하게 뒷발로 귀를 탈탈탈 털곤 다시 털썩 잠에 빠져들고, 나는 다시 터벅터벅 길을 간다. 여름의 빛이 닿는 거리는, 그 모든 것들이 찬란한 보석상자. 여름낮을 걷는 것은, 태양빛을 머금은 눈부신 색들과 만나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덧 밤이 되었을 때, 어느 노점에서 다시금 마주친, 옹골찬 파란 바나나. 밤이 되어도, 낮이 부지런히 매만져둔 그 색은, 밤의 잿빛 커튼 뒤에 여전히 낮의 빛깔로 숨 쉬고 있다.
여름의 햇빛이 닿으면, 모든 것이 아름답다. 제 자리를 지키는 그 모든 것들이, 가장 선명한 자신의 색으로 빛나기에. 해진 뒤에도, 그 빛은 여전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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