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이에서 보낸 열흘
스며드는 것들
오늘은 강 건너 멀리까지 걸어서 아침을 먹으러 가보기로 했다. 어제 ‘언덕 위의 큰부처님’을 보러 갔던 그 즈음에 있는 식당을 아침 먹을 장소로 골랐는데, 자전거를 타고 가보니 밝은 낮엔 이 정도 거리는 충분히 걸을 수 있겠다 싶었다. 쉬엄쉬엄 걷다 보면 한 시간쯤 걸리겠지 싶어 어제보다 서둘러 나갈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자꾸 뭔가 빠트린 것 같아서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가방 안에 든 물건들을 하나하나 다시 점검해보다가, 문득 시선이 뒤뜰로 가는 문에 닿았다.
‘오늘은 고영희 마님이 아직 아침인사를 안 왔네!’
벌컥 문을 열고 나가도 텅 빈 뒤뜰은 잠잠하기만 한 것이, 고영희 마님은 아직 식당에서 손님들과 아침인사를 하는 중인가 보다. 꼬리가 짧둥한 고등어고양이는 주로 오후에 ‘방갈로순찰’을 다니니 아직 나타날 때가 되지 않았고.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내 일상에 스며든 빠이의 동네친구들. 아침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때는 만날 수 있겠지. 아쉬운 마음을 접어두고 숙소 로비로 나갔더니, 손님들이 체크인 하러 들어오는 길목에 인절미 두 마리가 뚝- 뚝- 떨어져있다. 아이고, 요 녀석들, 오늘은 누가 오는지 얼마나 궁금하면 아침부터 요기 나와 있어?
스윽-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커다란 인간을 한 번 스윽- 쳐다봐주곤, ‘음, 새로 온 사람은 아니군. 환영파티는 필요 없겠어.’라는 듯 콩고물 묻은 인절미가 다시 스르륵 바닥에 늘어진다. 그 뒤에 콩고물이 묻다 만 녀석은 사람이 오건말건 단잠에 취해있는 중.
‘인간다움’이라는 본능
따뜻한 햇살에 강아지도, 사람도 모두 사르르 녹아내리는 아침. 부지런히 걸어 논두렁길로 나왔더니, 오늘도 너른 논 한가운데에 소 두 마리가 서로 정답다. 빠이에 도착한 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이 논두렁길을 지나다니고 있는데, 저 두 녀석이 서로 붙어있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던 것 같다. 사이좋게 붙어 앉은 소 두 마리 너머로 보이는 집까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
어쩜 저리 사이가 좋을까.
예전엔 동물들이 서로를 위하고 아끼는 모습들을 보면 ‘너희들이 인간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빠이에 머물다 보니 내 그런 생각들이 철저히 인간중심적인 사고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우리는 모두 ‘살기 위해’ 살아간다. 동물이 무리를 짓는 것과 사람이 사회를 꾸리고 문명을 탄생시킨 것은 근본적으로는 모두 ‘생존의 본능’이 만들어낸 행위들이다. 우리는 동물은 ‘본능적’이며, 인간에겐 그 본능을 넘어서는 ‘인간다움’이 있다고 믿지만, 본능에 이다지도 충실히 살아가는 빠이의 작은 동물친구들을 보면, 과연 ‘본능’이란 정말 ‘짐승 같은 것’이고 인간다움과는 서로 분리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화려한 문명이 지구를 뒤덮기 전에, 우리가 그저 허허벌판 위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태어났을 때, 유일한 생존의 길은 함께 태어난 이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었을 것이다. ‘인간다움’이란, 어쩌면 태초엔 ‘본능의 영역’이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사회의 규모가 비대해질수록 오히려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건, 아마도 태초에 우리에게 주어졌던 ‘생존에의 감각들’이 무디어졌기 때문은 아닐까.
찬찬히 걸을수록 더 궁금해지는
사원으로 가는 길엔 덩치가 나만한 까만 개가 오늘도 같은 자리에 털퍼덕 드러누워 있다. 사람이 지나가든, 자전거가 지나가든, 오토바이가 지나가든, 녀석은 이 시간엔 항상 꿈쩍도 않고 잠만 잔다. 길 한복판에 개가 누워있어도, 이곳 사람들은 비키라고 경적을 울리지 않나 보다. 사원 앞을 지나 도로변으로 나오면 곧바로 맞닥뜨리는 잡화점엔 오늘도 사람아이들과 동물아이들이 바글바글. 같이 놀던 사람아이들이 밥을 먹으러 식탁으로 뛰어가고 나니, 강아지들은 저마다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 털썩 드러누워 낮잠을 청한다.
스스로를 재촉하지 않고 천천히 걸으면, 눈길이 가는 것들이 참 많다. 알록달록한 깃발에 마음이 이끌려 멈추어 선 곳은 까치발로 마당 안을 들여다보니 태국식 샤브샤브인 수끼를 파는 식당이다. 저녁에 한 번 먹으러 와야지, 결심을 하고. 국수를 파는 동네식당 앞에서도 잠시 멈춰 서서 ‘여기도 한 번 와야지’ 또 결심을 한다. ‘걷는 여행’을 하다 보면, 아무리 작은 마을에서도 ‘다음에 할일’들이 금세 수두룩하게 쌓인다.
무얼 파나 살펴볼까 싶어 멈추어선 어느 식당에서는 까만 강아지가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달려 나오고, 또 다른 집 누렁이는 담장 밑에서 드렁드렁 꿈나라여행을 하느라 사람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른다. 설렁설렁 걷다보니 어느새 흐르는 강물 위를 건너왔다.
‘Ancient Future’
오늘 점심을 먹을 곳은 <FATCAT>, ‘뚱뚱한 고양이식당’이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풍경이, 어라, 직접 만든 된장, 고추장, 마늘장아찌 따위가 빼곡하던 어린 시절 우리집 부엌 찬장을 떠오르게 한다. 주문은 주방이 있는 1층에서 하고, 식사는 오두막처럼 지어진 2층에 올라가서 하면 되는데, 오두막 아래에 볕 들지 않는 서늘한 공간을 발효실로 쓰고 있나 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재미있는 건,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그 나라 고유의 발효음식이 반드시 존재하는데, ‘발효’란 인류가 아주 오래 전부터 지역을 막론하고 전 세계적으로 활용해온 삶의 지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처음엔 대부분 다른 문화권의 발효음식들은 낯설어한다는 거다. 발효를 거치며 얻어지는 특유의 맛이나 향 때문일까?
한 20년 전쯤만 해도 서구권사람들은 ‘김치’나 ‘된장’이 풍기는 냄새를 낯설어하고, 한국사람들은 반대로 제대로 발효된 치즈가 풍기는 꼬릿꼬릿한 냄새를 낯설어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제대로 발효한 자연치즈가 한국에서 흔한 식품이 된 것이야 말할 것도 없고- ‘김치’나 ‘된장’이 전 세계적으로 ‘장수와 건강의 비결’로 각광받고 있을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템페’나 ‘요거트’ 같은 다른 문화권의 발효음식들이 건강식품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
‘발효’란 냉장고가 없던 시절 애써 얻은 귀한 음식들을 좀 더 오래 보관하기 위해 고안해낸 ‘생존에의 지혜’였을 텐데. 먹을 것이 넘쳐나는 요즈음의 ‘문명사회’에서 다시 각문화권의 발효음식들을 ‘건강식품’으로 주목하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삶이란, 도무지 다 이해할 수 없을 것처럼 어렵게 느껴지지만 실은 아주 간단하고, 우리가 찾고자 하는 정답들은, 이미 모두 우리가 지나온 역사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뚱뚱한 고양이식당 고양이는 하나도 안 뚱뚱해
샐러드와 빨간 용과로 만든 스무디 한 잔을 주문하고 오두막으로 올라가는데, 이 집 주인장이신 ‘Fat Cat’님이 떡하니 식빵을 굽고 있다. 어라, 그런데, 요리 보고 조리 봐도 하나도 안 뚱뚱한데요!? 요 정도면 ‘전 세계 숏헤어고양이 평균몸매’ 아닌가요!? 아니, 평균보다 날씬한 것 같아요!
요 며칠 빠이에서 동물친구들을 만나보니, 이곳은 강아지도 고양이도 거의 대부분 날렵한 몸매를 가지고 있다. 고양이는 식탐이 없어서 딱 활동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채우고 나면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는데. 그에 더해, 따뜻한 나라에서는 길고 추운 겨울을 대비해 지방을 축적해둘 필요도 없으니, 이곳 동물들은 매 끼니 딱 필요한 만큼만 배를 채우나 보다. 그건 한편으로는, 오늘 욕심을 부려 많이 먹지 않아도 내일도 변함없이 오늘 만큼의 먹을거리를 인간들이 가져다주리라는, 굳은 신뢰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더불어 길고양이들은 실은 살이 찐 게 아니라 물을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이 퉁퉁 부은 경우가 많다던데. 하나 같이 날렵한 몸매를 한 이곳 동물친구들은 태양이 뜨겁게 작열하는 와중에도 모두 어딘가에서 깨끗한 물을 충분히 얻어 마시고 있는 것 같다는 행복한 추측도 살포시 더해본다.
‘Fat Cat’은 영어권에서는 탐욕스러운 자본가를 일컫기도 하지만. ‘뚱뚱한 고양이’를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서 식당 이름을 굳이 <뚱뚱한 고양이>로 지은 것은, 우리고양이가 잘 먹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텃밭에 온 걸 환영해!
고양이 곁에 앉아 함께 오두막 너머에 펼쳐진 녹음을 내다보고 있으려니, 금세 음식이 나왔다. 빨간 용과를 갈아 만든 스무디의 선명한 빛깔은 ‘나는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태어났어!’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수북이 담은 샐러드 한 접시는 ‘우리가 정성들여 가꾸는 텃밭 한 번 구경해볼래?’라며 내 손을 잡아끈다.
개인적으로 혼자 외식할 때는 샐러드를 즐겨 먹는 편인데, ‘그거 어차피 다 똑같은 풀떼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불에 익히지 않는 샐러드야말로 그 식당이 가장 섬세하게 요리해야하는 메뉴 중 하나다. 푸른 잎사귀들은 다 같아보여도 단맛, 매운맛, 씁쓸한 맛 등을 다양하게 갖고 있고, 억세거나 여리거나, 아삭아삭하거나 부드럽거나 하는 식감도 다 다를 뿐만 아니라 얼마나 신선한지는 물론이고 물에 씻고 난 후에 얼마나 물기를 남겨 두었냐 등에 따라서도 맛이 확 달라지기 때문이다.
빠이에 온 뒤로 벌써 샐러드를 여러 접시 먹었는데, 오늘의 접시 역시, 푸른 잎사귀들의 구성부터 위에 올라가는 재료들까지, 이전에 먹었던 접시들과 겹치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 빠이에서 먹는 샐러드 한 접시는, 그 식당이 가꾸는 텃밭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 오늘도 즐겁게 ‘텃밭탐험’을 했다.
Copyright 2024 by 여름햇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