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자는 오늘도 말이 없지만
다시, 걷는 여행
오랜만에 아침의 올드타운을 거닐었다. 치앙마이 세달살이 중 올드타운 안에 숙소를 잡은 건 두 번째 주의 일주일뿐이지만, 하이야, 산티탐, 창푸악 등 다른 지역에 머물면서도 올드타운에는 그간 꾸준히 발걸음을 해 왔다.
치앙마이는 정사각형 모양의 구시가지인 올드타운을 가운데 두고 나머지 구역들이 이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사실 택시를 타면 그 어느 지역에서도 5분 내로 쉽게 닿을 수 있지만,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 올드타운으로 닿는 각기 다른 그 길들이 모두 각자의 빛을 뽐내는 보석상자가 된다.
하이야HaiYa에서는 조용한 주택가를 빠져나와 주말엔 야시장이 열리는 길을 20분 정도 걸으면 올드타운의 남쪽에 닿았는데, 이 길엔 밤이면 큰 들개들이 출몰해서 홈스테이에서 빌린 자전거를 주로 타고 다녔었다. 태국엔 이전에도 여러 번 여행을 왔지만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오토바이든 자동차든, 모든 운전자들이 자전거를 배려해 주어서 굉장히 안전했고, 또 인상적이었다. 하이야는 주말야시장이 설 때 말고는 관광객이 거의 없는 주거지역인지라 밤이면 상점들이 일찍 문을 닫고 칠흑에 잠기곤 했는데, 그 속에서 기분 좋게 식은 여름 밤바람 맞으며 자전거를 씽씽 달리노라면, 어느새 숙소 앞에 다다른 것이 못내 아쉬워지곤 했었다.
산티탐에서는 숙소를 나서면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창푸악시장을 지나 올드타운 북쪽에 닿았는데, 낮에는 말없이 반짝이는 해자 곁을 거니는 것이, 해가 저물 무렵이면 떠들썩하게 들어선 시장통을 거니는 것이 참 좋았다. 그다음으로 머물렀던 창푸악에서는 올드타운의 북서쪽이 가까워 자주 그 모퉁이를 지나 서쪽 해자를 따라 걷곤 했는데, 똑같이 물이 흘러도 사원이 있는 차분한 북쪽과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달라 기억에 남았다.
어제 갓 자리를 잡은 세달살이의 마지막 종착지 창클란은 올드타운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숙소를 나와 올드타운을 향해 걷다 보면 해자의 동남쪽 모서리가 보일 즈음, 사원 하나와 만나게 된다. 치앙마이의 각기 다른 지역에서 세달살이를 하다 보니 각 지역마다 유독 기억에 남는 사원이 하나씩 있는데, 창클란에서는 바로 이 사원이 그랬다.
너머의 선 하나를 향하여
해 질 녘 노을에 물든 사원이 복잡다단한 인간사에 대한 회한 섞인 경건함을 안겨 준다면, 아침의 사원은 눈부신 햇살이 그 모든 것들을 구석구석 깨끗하게 씻어 내어 주는 것 같은 맑은 희망들이 가득 어려 있다.
치앙마이의 사원들은 겉보기엔 소박해 보여도 그 안으로 들어서서 구석구석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더없이 정교하고 화려한데, 걸음을 멈추고 그 앞에 가만히 서있노라면, 정성 들여 주조하고 조각해 낸 그 세밀함 속에서 마음은 도리어 절제에 이른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남긴 화가들을 보면 초기엔 현실을 아주 면밀하게 묘사하다가 후엔 점점 대담한 생략으로 경지에 이르곤 하는데, 세상의 모든 일들이, 결국엔 삶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낱낱이 들여다봄을 통해 인생을 관통하는 뿌리와 골자, 얼개들을 깨달아 가는 일인 것 같다.
그저 선 하나를 긋는 일은, 그 과정을 알지 못할 때는 다 똑같이 쉬워 보이지만, 수없이 많은 선들을 세심하게 그려본 후에 긋는 선 하나와, 아무것도 모른 채 일단 휘두른 선 하나는, 그 깊이가 결코 같을 수 없다.
여행은, 마음속에 복잡한 선들을 하나하나 쌓아 가는 것. 그리하여 결국엔 그 모든 선들이 먼 너머에서 하나되는 새로운 지평선을 발견해 가는 길이 아닐까.
해자는 오늘도 말이 없지만
사원을 나와 마주한 해자의 모퉁이엔 빨갛게 꽃이 피었다. 멈추어 있는 듯, 물은 오늘도 잠잠하기만 하다. 언제나와 같은 고요한 산책을 기대하며 걷던 중, 반들반들하던 물의 표면이 갈매기 날개와도 같은 윤슬을 일으키며 출렁이기 시작했다. 물결 따라 저 멀리로 시선을 던져보니, 해자 위에 지붕처럼 가지를 뻗은 듬직한 나무의 그림자 속에서 동네아이들이 떠들썩하게 물놀이를 하고 있다.
물가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자전거들은 곧 물에 뛰어들 생각에 잔뜩 신이 났던 아이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한낮의 햇살 속에 드렁드렁 낮잠을 자고, 아이들은 오늘 하루도 그저 묵언으로 묵묵히 자리를 지키려 했던 해자에 첨벙첨벙 거침없이 뛰어들며 해맑은 물보라를 일으킨다.
아이들이 있으면, 그 어떤 풍경이든, 예기치 못했던 생기를 얻는다. 때로 그것은 잔잔하게 흐르던 것들을 깨트리고 훼방을 놓기도 하지만, 그 천진한 균열들로 인해서, 시간은 비로소 앞으로 나아간다.
막다른 길 너머엔
첨벙첨벙 소리에 발맞추며 타박타박 걷다 보니 이내 자그마한 골목길에 접어들었다. 길고 긴 사원의 담벼락 옆에 아늑하게 몸을 뉘인 길을 걷다가, 한갓지게 자전거가 세워진 골목카페 앞에서 걸음이 멈추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가는 길이었는데, 마음이 이끌려 나도 모르게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유리창 너머로 내다 보이는 거라곤 사원의 벽뿐인데, 막다른 길의 끝에 와 있는 듯한 이 풍경이 왜인지 마음에 든다.
때론 앞이 막혀 더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지만, 다시 길을 나서면, 길은 내가 아직 가 보지 못한 곳들로, 무한히 이어질 것이기에.
시원하게 마차라떼 한 잔 들이켜고 다시 사뿐사뿐 밟아 간 골목길에서 호랑이 한 마리와 마주쳤다. 치앙마이에서 벌써 여러 번 호랑이와 마주치는데, 아무래도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보니 만날 때마다 괜히 반갑다. -물론 진짜 호랑이라면 전혀 반갑지 못하겠지만-
길 위의 수호자들
태국을 상징하는 동물은 몸집 큰 초식동물 코끼리지만, ‘맹수의 왕’이어서인지 호랑이 또한 태국의 역사와 문화 곳곳에서 심심찮게 눈에 띄는데, 일례로 태국의 전통 격투무술 ‘무에타이’를 연마하는 선수들은 으레 호랑이 두 마리를 몸에 새긴다. 이는 강인한 힘과 정신력을 상징하며 위험으로부터 수련자를 보호해 주는 의미가 있다고. 이 문신은 새길 수 있는 사람이 승려 혹은 기술전수자로 한정되어 있다고 한다.
태국에선 호랑이가 사람들을 ‘보호’해 준다는 의미가 강해서, 길에서도 이렇게 자주 호랑이그림과 마주칠 수 있는 걸까? 우리나라도 이전엔 ‘호랑이가 악귀를 쫓아 준다’는 믿음이 있어 정월대보름이 되면 집안에 호랑이그림을 걸곤 했다는데, 일제강점기의 무분별한 포획으로 한국호랑이가 자취를 감추며 그 수호의 의미도 함께 맥이 끊긴 것 같아 조금 아쉽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호랑이들은 몸집이 동남아시아 호랑이보다 평균적으로 2배 정도 크고, 특히 우리나라 호랑이는 그 성질이 다른 지역 호랑이들보다도 포악했다고 하는데, 이 무시무시한 몸집과 성깔 때문에 산길을 다닐 때마다 조마조마 목숨을 내놓을 준비를 하고 가슴을 졸였던 우리 조상님들에게, 한국호랑이는 악귀는 쫓아 줄 수 있어도 ‘우리집을 지켜 주십사’ 하고 담장에 그려 두기엔 조금 버거운 존재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바로 그 때문에 호랑이는 우리 민족의 투지의 상징이 될 수밖에 없었나 보다-
여행을 처음 시작한 무렵에 몇 번 발걸음 했던 이래로 오랜만에 올드타운 동쪽에 왔다. 동쪽은, 해가 떠오르는 곳. 하얀 종이를 꾸깃꾸깃 구긴 듯 어둑어둑한 구름이 하늘을 가려 흐릿했던 어제와 달리, 활짝 갠 하늘에서 쨍쨍 내리쬐는 햇볕이 몸도 마음도 빠짝 말려 주는 날. 그저 걷기만 해도, 건조대 위에서 온몸을 펼치고 향긋하게 마른 빨래처럼, 기분이 뽀송뽀송해진다.
한가로이 길가에 앉아 햇살에 까맣게 얼굴을 태우는 중인 태국 토종 샴고양이와 마주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엔 담벼락에서 사이좋게 서로 합심하여 주렁주렁 걸린 생선들을 사냥 중인 고양이들과 마주쳤다.
식사 전에 맞닥뜨린 ‘우리동네지킴이’ 호랑이와는 사뭇 다른 개구진 모습들에 웃음부터 터져 나온다. 호랑이와 고양이는 같은 과의 맹수들이지만, 그림을 그린 사람은 딱히 이 녀석들에게서 ‘우리를 보호해 달라’는 기대 따위는 하지 않았을 거다. ‘생선을 훔쳐 가는 고양이를 조심하시오!’라고 경고하기 위한 것도 물론 아니고, 이 담벼락에 고양이들이 그려져 있는 이유는 아마도, ‘그냥 귀엽기 때문’이리라.
압도적인 체구와 힘뿐만 아니라, 이 치명적인 ‘귀여움’ 역시도 어찌 보면 우리네 인간 삶을 톡톡히 ‘수호’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귀여운 녀석들을 그저 가만히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마냥 좋아지고, 그림을 그린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 어느새 전달되어, 세상이 조금 전보다 더 살 만하게 보이니 말이다!
걷다 보니 어느덧 해질 무렵, 붉게 번지는 하루의 마지막 빛 속에서 또다시 사원의 담장 곁을 걸었다.
어쩌다 (또) 미슐랭
어제 시간이 너무 늦어 가지 못했던 식당에 왔다. 숙소 뒤편에 있는 중국음식점인데, 앞에 다다르자마자 빨갛게 불을 밝힌 ‘미슐랭’ 입간판과 마주쳤다.
미슐랭식당을 부러 찾은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또 미슐랭식당에 왔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날 맞이한 지배인아저씨는 식당 한가운데 놓인 널찍한 식탁으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실은 북경오리가 먹고 싶어서 오늘 저녁은 간만에 지출 좀 하자고 결심했는데, 이런 넉넉한 자리를 내주다니! 식탁이 꽉 차도록 만찬을 벌여 주마...!!!
...고 결심했지만, 북경오리는 품절. 좌절한 내 표정을 보더니 싱글벙글 지배인아저씨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음, 아마 오리가 반 마리 정도는 남아 있을 거야, 그거라도 괜찮아?’라고 해서 대환영이라고 했더니, 그가 잠깐만 기다리라며 주방으로 향했다.
잠시 후 돌아온 그가 안타깝게도 지금 가능한 건 이거 하나뿐이라며 메뉴판을 펼쳐 보였다. 그가 가리킨 건 간장소스로 졸인 북경식 오리요리. 예약도 없이 문 닫기 한 시간 전인 식당에 와서 대여섯 시간 이상을 조리해야 하는 북경오리를 찾다니, 뒤늦게 생각해 보니 애초에 안 될 일이었다. 어쨌든 비슷한 메뉴라도 먹을 수 있어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냅다 주문을 했다. 이왕 만찬을 벌이기로 결심했으니, 게살볶음밥도 추가!
까만 밤, 까만 식탁 위에 성대한 만찬이 차려졌다. 오리요리는 두툼하게 썰려 있어 기대한 것보다도 훨씬 양이 많았고, 볶음밥은, 그야말로 산더미라는 말이 딱 어울리도록 수북이 나왔다. 만찬에 딱 걸맞은 상차림!
혼자서는 혹 외로울까, 천장에 매달린 조명들이 식탁 위에 내려앉아 알록달록 참견을 한다. 그 단란한 빛들을 벗 삼아, 깊어가는 밤, 풍성한 음식들로 원 없이 배를 채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인적 없는 풍경들 속엔 어둠이 텃세라도 부리듯 웅크리고 있었지만, 어제는 덜컥 두려움이 앞섰던 낯선 골목들이 그새 하루만큼 더 익숙해져, 지도를 보지 않고도 금세 환히 불을 밝힌 숙소 앞에 다다랐다.
Copyright 2025 by 여름햇살 All Rights Reserved
* 다음 주는 개인사정으로 한 주 쉬어 갑니다. 폭염이 계속되는 와중에 더운 나라를 여행한 이야기는 조금 읽기 버겁지 않을까 하여 마지막 권 연재를 조금 미룰까 했더니 폭우가 들이닥쳐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네요. 비 피해 없으시길 바라며... 8월 첫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