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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탈고 Sep 14. 2023

민재가 왔다 - 2

입수

 


  바다에 들어가는 일을 왜 이렇게 좋아하게 됐을까. 당연했던 중력이 희미해져서 다른 힘이라도 빌려보자는 심산으로 온몸에 힘을 줬을 때. 정신까지 희미해졌던 첫 바다 수영을 기억한다. 사실 수영도 아니었다. 그냥 첨벙첨벙. 눈 질끈 감고 1m도 안 되는 바위에서 뛰어내렸다가 다시 올라가는 게 전부였다. 부산 영도 중리해변이었고, 민재가 나를 어르고 달래서 데려갔었다. 그날 수영도 처음 배웠다. 평형? 아마도 맞을 거다. 개구리 다리로 하는 그 수영법. 더 이상 알려주지 않았고 더 이상 배우려 하지도 않았으니, 나의 수영법은 평형이 전부다. 



   그렇게 조금씩 바다와 친해지다 민재와 함께 갔던 발리에서 첫 서핑을 배웠고, 이후로 바다를 전전하며 라이프스타일을 조금씩 바꿔갔다. 여름 주말엔 웬만하면 바다에 가서 다이빙하거나 수영을 했고, 시간이 더 흐른 뒤엔 강원도에서 5개월 넘게 여행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엔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이곳, 강원도로 완전히 와버렸다. 만약 그날 민재가 나를 중리해변으로 끌고 가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어땠을까.



   그런 바다 사나이들이 만났으니 입수는 당연했지만 얼마 전 다친 발등 상처가 여전했다. 옛날 같았으면 뭔 소리냐며, 하남자가 따로 없다고 부추겼을 민재지만 머리가 좀 컸는지 웬일로 진지하게 걱정하며 자기만 입수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혼자 수경 쓰고 바다 안 풍경을 보는 게 아쉬웠는지, 아니면 그냥 혼자 입수한 게 심심했는지 슬슬 유혹하기 시작했다. 물이 맑아서 진짜 예쁘다느니, 물고기 보고 싶지 않냐느니, 이왕 왔는데 한 번은 들어오라느니 등등. 민재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사실 나도 들어가고 싶어 한다는 걸.



   단지 상처가 덧나지 않을까 무서웠을 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신발과 옷을 벗고 조심조심 들어가 버렸다. 



   둥실둥실. 함께 바다에 떠서 수평선을 바라보며 나누는 대화는 행복이다. 내용도 별거 없다. 저녁엔 뭐 먹지. 어디서 한잔할까. 지금 밑에 물고기들 지나간다 키득키득. 그렇게 잠수해서 물고기를 구경하다 몸을 돌려 시선을 위로 옮겼다. 바다 밑에서 바라보는 하늘과 햇살이란 아무리 하찮은 이야기도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금빛으로 새겨 놓는데, 행복이 아니고서야. 



   용기 내서 한 발짝 내딛고 나서야 마음을 위협하던 발등 상처가 얼마나 하찮은 고민이었는지 알았다. 만약 무서워서 망설이기만 하는 나에게 그 누구도 무관심했다면, 그래서 작은 용기마저 말라버렸다면, 수평선을 바라보며 나누는 대화의 행복과 금빛으로 일렁이는 해수면 너머의 아름다움도 몰랐을 것이다. 중리해변이나 발리도 가지 않았을 거고, 수영과 서핑도 배울 일 없었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관심을 참견이나 눈치, 오지랖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면 1m도 안 되는 높이에서 바다로 뛰어들 용기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럼 이토록 바다를 좋아할 일도 없었을 거고. 만약 혼자였다면 입수는 무슨. 바라만 보다 아무 일 없이 돌아섰을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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