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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북쪽이야? 남쪽이야?

Munchen, GERMANY

by 구수정


체코에서 독일 국경 어디쯤이었나. 오.. 이 산만 넘으면 다른 나라야. 참 신기한 일이다. 빠리서 뿌조를 빌려 한참 신나게 유럽 여행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짐이 많아 차 지붕에 스키어들처럼 짐을 잔뜩 싣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목적지를 향해 운전하고 있는데 제복을 입은 한 남자가 길 한가운데 우리의 차를 막고 세웠다.

어디서 왔어? 제복 입은 남자가 물었다. 꼬레아. 우리는 별일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꼬레아... 꼬레아?? 남자는 아쭈, 옳지 잘 걸렸다 하는 표정으로 반문한다. 그래, 꼬레아. 뭐 문제 있어? 우린 뭔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되물었다. 그래 다른 차들은 다 통과시키는데 굳이 우리만 세운 이유가 뭔가 꼬롬했다. 여권 줘봐. 그는 상당히 강압적인 뉘앙스로 입을 떼었다. 뭐.. 국경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우리는 네 개의 여권을 내밀었다. 꼬레아... 꼬레아.... 꼬레아 어디? 싸우쓰 아님 노쓰? 그는 여권을 살피며 말했다. 싸우쓰지. 여권 봐봐. 하며 우리는 여권을 펼쳐 주었는데 아뿔싸. 우리 대한민국의 공식 명칭은 리퍼블릭 오브 꼬레아가 아닌가. 움마야 맙소사. 제복을 입은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눈알을 굴려 우리의 차 안을 빠르게 스캔한다. 이런. 뭔가 잘못되었다.

유럽 애들은 잘 구별을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의 영어 정식 이름은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DPRK). 딱히 대한민국을 칭하는 Republic of KOREA와 쓰는 단어도 같고, 그렇다고 이념이나 사회체제를 구별할 단어를 사용한 것도 아니고 직역을 해봐도 민주(Democratic) 란 말이 들어가는 DPRK를 대한민국으로 혼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되묻는다. 그래서, 북쪽이야? 남쪽이야?

대충 외국 애들이 이것 때문에 헷갈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게 우리가 겪게 될 고비라는 것은 미처 알지 못했다. 제복을 입은 남자는 우리 차를 건물 쪽에 세우라는 제스처 후에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우리가 설마 북한 사람으로 오해받는 건 아니지? 아무리 우리가 추리하게 입고 냄새가 나도 그렇지. 이건 고되고 긴 여행 일정 때문에 그런 거라고. 우리는 차 안에 다소곳이 널린 아직 덜 마른 양말을 서둘러 치웠다. 차 지붕에 잔뜩 실린 짐도 내심 걱정이 되었다. 우릴 무슨 북한에서 탈출한 탈북자로 보는 건가. 아니야 여권을 가져갔으니 알아서 잘 처리하겠지. 우리의 여권을 몽땅 가져간 그를 기다리며 우리는 북한에 끌려가는 어이없는 상황까지 걱정했다. 납북되는 건 아니겠지?

이윽고 그의 모습이 저 멀리서 포착되었다. 그의 걸음걸이로 봐서는 급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다. 유럽 애들은 원래 일처리가 급하지 않으니 속단할 수는 없다. 웃어, 웃어. 우리는 긴장한 마음을 감추고 빙그레 웃으며 최대한 태연하게 그를 맞이했다. 그는 창밖에서 우리의 여권을 내민다. 무슨 일이야? 우린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 별일 아니야. 너네 이제 어디 갈 거야? 민휀. 그래 좋은 여행!! 그는 손을 흔들며 우리에게 건투를 빈다. 쟤 뭐야? 여권을 살펴보니 유럽식 입국 도장이 덩그러니 찍혀있다. 비행기 모양이 아닌 자동차 모양으로.


민휀에 도착한 후, 알고 보니 그즈음 북한의 핵 도발이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가 염려했던 대로 북한에 끌려가진 않았지만 북한 사람이라고 오해를 받은 건 어느 정도 확실해졌다. 이렇게 여행 중에 전쟁이라도 나면 어쩌나. 그럼 우린 이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떠돌아 살아야 하나. 조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여러 나라를 떠돌다 타지에서 생을 마감한 어느 시인 이야기를 떠올리며 때아닌 조국의 안녕을 걱정한다. 잠시 부모님 생각에 울컥한다. 이 와중에 군 미필자 두 명은 오히려 외국에 있을 때 전쟁 나는 편이 낫다며 응수한다.

가끔 여행을 하다 보면 차로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생소하기만 하다. 한국에서는 꼭 바다를 건너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외국 여행이지 않은가. '비행기를 탄다'란 말은 '다른 나라로 떠난다'라는 말과 같은 나로선 국가와 국가의 육지가 땅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낯설다.

반도국가임에도 섬처럼 사는 대한민국, 그 이유는 아마도 남과 북 분단에 있을 것이다. 북한으로 막혀 있으니 육지로 통하는 길은 차단된 셈이다. 그래서 무슨 부산에서부터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직통열차를 놓는다는 뉴스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로만 느껴진다. 실은 그다지 불편한 느낌도 없다. 고구려 백제 신라 시대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여행의 시작을 비행기로 시작한 짧은 인생의 나로선 그렇다.


하지만 막상 나라 밖을 나와선 의외로 다르다. 미국 스미쓰(마켓) 앞에서 만난 호호백발 할아버지는 "그래서 너희 어떡해?"하며 김정일의 죽음에 대해 우리의 신변을 걱정한다. 한국을 네 차례나 방문 그리고 북한도 방문,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그러니까 못 살았을 때의 대한민국-과 지금을 기억하는 독일 아저씨 레널드도 있었다. 6.25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피부로 체험할 수 없는 세대라 그런지 제3의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외국인의 대한민국은 익숙치 않다. 이렇게 이북 땅의 존재를 우린 밖으로 나와서야 느낀다.


@2006 Munchen, GERM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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