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
항아리/ 이수미
치매로 거동 불편해진 어머니
부쩍, 과거와 현실의 기로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헤매신다
십일 남매를 낳느라 늘
배가 불러있었다던 어머니
홀쭉한 배가 오히려 어색했다고 하셨다
평생 살부림으로 숙성시킨 속에 것들
서울로 청주로 다 퍼서 올려 보내놓고
빈 독이 되어 나앉았다
뜨거운 물에 불리고 우려내도
쿰쿰한 냄새 가시질 않는다
금가락지 고운 옷 다 내려놓고
오로지 자식 품던 옛길만 기억하시는 어머니
하루에도 몇 번씩 오락가락하신다
벌써 며칠 째 누군가에게 길을 묻듯
혼자 중얼대시는 어머니
걱정스러운 마음에 뒤꼍에 나가 서성이는데
장독대 한 편
실금 가득한 폐기 하나
우묵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