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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기억의 파편들

by 수우미양가


능소화


오르막으로 내딛는 첫걸음은

언제나 아득해

몸이 먼저 떨려왔다

간절했음으로

절벽을 더듬는 손끝에 힘이 실렸다

가까스로 담벼락을 그러쥐고

한 뼘씩 키를 늘려가는 동안

긁히고 찢긴 상처 위로 몽글몽글

핏방울이 맺혔다

혈관이 말갛게 내비치도록 귓바퀴 늘려

담장 밖으로 늘어뜨리고

골목을 돌아 나오는 바람의 소맷자락을 붙잡아도,

지나가는 소리들을 끌어 모아 키질을 해도

헛것들만 걸렸다

오래전에 끊어진 안부를 찾느라

온몸 가득 열꽃이 번진 그녀

툭,

첫날밤 치룰 때 모습 그대로

담장을 뛰어내렸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골목에 흥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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