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식이 Nov 15. 2019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삶

오후 6시, 라스트 오더  

  특별한 일이 없을 때 저녁식사는 7시를 넘기지 않았다. 엄마의 도마는 6시 어간이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싱크대 벽면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6시가 넘어가면 도마를 마음껏 두드리지도, 절구에 마늘을 힘껏 빻지도 않았다. 청소기도 세탁기도 작동하는 법이 없었다. 연립주택부터 빌라, 아파트를 옮겨 다니면서도 엄마는 그만의 원칙을 고수했다. 뉴스에서 종종 나오는 층간소음으로 인한 사건 사고 때문이 아니었다. 엄마는 다만, 가족을 포함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 엄마를 넘어서는 사람이 아빠였다. 아빠는 평소 조용한 말투처럼 움직임도 요란하지 않았고, 앉고 서는 것도 정중했다. 밖에 나가서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법이 없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주위 사방을 똑똑히 주시하며 걸었다. 행여나 엄마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을까 염려하며 관리감독을 하는 것도 아빠였다. 


부모님의 평일 오전 일과는 동네 한의원에 가서 침 맞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한의원은 조금 독특해서 원장과 상담하는 원장실을 제외하고 모두 개방돼 있었다. 바닥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돌아가며 침을 맞고, 앉기 어려운 환자는 의자에 둘러앉아 침을 맞는 구조였다.  누군가의 한 마디가 그곳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 귀에 선명하게 들렸고, 누가 어디가 아파 한의원에 왔는지도 손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집에서는 위아래 옆집을 배려하느라 움츠러든 체로 조심하며 지내는 엄마는 밖에 나가면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 싫은 티가 때로 상대방에게 그대로 전해져 작은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침을 잘 놓는다고 소문난 이 한의원은 노인들로 그득했고, 예측 불가한 노인들의 돌출 행동이 갈등을 야기하기도 했다. 아빠는 엄마의 '싫은 티'가 늘 걱정이었고 그 날 한의원에서 입을 가리지 않고 기침을 해대는 노인에게 등을 돌린 채로 엄마는 크게 속삭였다.


어디다 대고 기침을 저렇게 함부로 해, 개념 없는 노인네가 


라는 엄마의 말에 방금 기침을 해 상기된 노인이 더욱 상기된 볼을 비비적대며 다가왔고 아빠는 그 노인을 진정시키느라 침 맞는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할애했고, 그 날 오후 부모님은 크게 다투셨다.' 제발 사람들 앞에서 크게 이야기하지 말라'는 아빠와 이 '나이에 내 맘대로 말도 못 하나?'라는 엄마의 항변이 맞섰다. 그 날 저녁식사 시간도 6시 어간이었다. 


엄마는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만큼 자신도 피해를 받고 싶지 않았다. 설령 피해를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의 표현이 누군가에게 피해가 되더라도. 엄마의 강박이 조금은 느슨해졌으면 좋겠다.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조금 옅어져야, 피해를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또 다른 생채기를 만들어내지 않을 테니까.     


    




 


  

이전 06화 장인어른과 피아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