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를 먹다
엄마가 불러서 그만
포도씨를 삼키고 말았다
큰일났다
포도씨가 뱃속에서
싹이 나서 잎이 나서 자라면
나도 포도나무가 되고 말 텐데
포도가 주렁주렁 열리면
우리반 친구들 우르르 몰려 올 텐데
라이벌 예림이는
내가 못생겨졌다고 고소해할 텐데
나는 포도는 먹지도 못하고
몽땅 나눠줘야 할 텐데
나랑 친한 영화는 잘 익은 송이를 주고
내 그림 보고 이상하다 했던
빈이는 덜 익은 포도 줘야지
포도가 하나도 안 남으면 어쩌지
아무도 놀러오지 않을 텐데 어쩌지
으악 큰일났다
엄마 포도씨를 삼켰어
포도나무 되기 싫어
뱃속에서 꾸루룩
싹이 나는 소리가 들려
얘는 무슨 맛있는 포도 먹고
계란방귀 뀌는 소리 하니
똥 누면 다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