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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린 산천어 Jul 29. 2023

성인, 베스트 드라이버

누구나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되기 힘들다

영화 '국제시장' 흥남 철수 작전




 1종 보통 면허만 가지고 있어도 도로를 다니기에는 넉넉합니다. 도를 따르는 데는 덕만 있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도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도로 위에서 사고가 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종 특수 면허, 1종 대형 면허, 건설기계조종사면허가 있어야 합니다. 군자로서 인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뭇사람을 사랑으로 감싸고, 뭇사람이 쩨쩨하지 않은 의로서 마땅한 일 돕게 하고, 시대를 가리지 않고 지나치거나 처지지 않는 잣대로 예를 세우고, 지로서 더할 나위 없는 슬기를 가진다면 성인(聖人)입니다. 


 신의 목소리를 듣거나, 온갖 고비를 넘겨 깨달음을 얻거나, 사람을 뛰어넘지 않아도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성인은 신인(神人)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굴착기나 불도저, 소방차나 혈액공급차량을 몰려면 운전면허학원이나 중장비학원에서 배워 한 번 더 시험을 쳐야겠지만 성인이 되는 방법은 군자 되기와 같습니다. 성인에게서 배워 성인처럼 하면 됩니다. 성인과 같이 마음을 먹고, 말하고, 행동하면 됩니다. 


 더불어 천명이 있어야 합니다. 천명을 만나 도를 이뤄야만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성인이 되기 쉽지 않은 까닭은 뭇사람이 꼭 그를 성인이라고 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냥 나 스스로 성인이 되었다고 여긴다면 성인이 아닙니다. 공자, 예수, 부처가 성인으로 남은 건 모두 나중 사람이 성인이라 여겨서입니다. 베스트 드라이버 (best driver)는 남들이 우러러보는 사람입니다. 어디 산속에 틀어박혀 운전실력만 갈고닦는다면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뭇사람은 성인이 만든 도로 위를 운전하고, 성인의 도에게 지켜집니다. 내 덕으로 세상에 도를 퍼뜨려야만 성인입니다. 




고자 상 24, 

故 凡同類者 擧相似也 何獨至於人而疑之 聖人 與我同類者

그러므로 무릇 종류가 같은 것은 모두 서로 비슷하니, 어찌 단지 사람의 경우에 이르러서만 그렇지 않다고 의심을 하겠는가? 성인도 나와 같은 부류이다.

등문공 상 2

成覵謂齊景公曰 彼丈夫也 我丈夫也 吾何畏彼哉 顔淵曰 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亦若是 公明儀曰 文王我師也 周公豈欺我哉

성간(成覵)이 제(齊) 나라 경공(景公)에게 말하기를 ‘저 성현(聖賢)도 장부(丈夫)이고 저도 장부이니, 제가 어찌 저 성현을 두려워하겠습니까? ’ 하였으며, 안연(顔淵)이 말하기를 ‘순(舜) 임금은 어떠한 분이며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훌륭한 일을 하는 자는 이 순임금과 같아질 수 있다.’ 하였으며, 노나라의 현인(賢人) 공명의(公明儀)는 말하기를 ‘주공(周公)께서 「문왕(文王)께서는 나의 스승이다. 」라고 말씀하셨으니, 주공이 어찌 나를 속이셨겠는가?


 교학에는 종류가 없고, 배울 수 있는 사람에는 부류가 없습니다. 가르침은 하나이고, 모든 사람은 배울 수 있습니다. 성인이 배운 도덕과 내가 배우는 도덕이 같으니 나도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나와 베스트 드라이버는 같은 사람입니다. 똑같이 핸들을 잡을 수 있는 손이 있고, 액셀과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는 발이 있습니다. 내가 베스트 드라이버처럼 운전하지 못하란 법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나도 덕을 가지고 있고, 성인도 욕구가 있을 터입니다. 내 덕을 성인만큼 키우지 못하리란 법이 없고, 성인이 떨쳐낸 욕구를 내가 못 떨쳐내리란 법도 없습니다. 내가 공자처럼 한다면 나는 곧 공자입니다. 기독교를 믿으려면 예수를 닮고, 불교를 믿으려면 부처를 닮아야 합니다. 덕을 지키고 도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공자를 닮도록 해야 합니다.




옹야 28, 

子貢曰 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 子曰 何事於仁 必也聖乎 堯舜 其猶病諸.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子貢이 말하였다. “만일 백성에게 은혜를 널리 베풀어 많은 사람을 구제한다면 어떻습니까? 仁이라고 할 만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인에 그치겠는가? 그런 사람은 반드시 聖人일 것이네. 堯舜도 오히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병통으로 여겼네. 仁者는 자신이 서고자 하면 남도 서게 하고, 자신이 통달하고자 하면 남도 통달하게 해 준다네. 가까이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인을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네.”

술이 25

子曰 聖人 吾不得而見之矣 得見君子者 斯可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성인을 내가 만나볼 수 없다면 군자라도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 "


 덕을 지키고 도를 따르면 소인은 군자가 되며, 군자가 천명을 만나면 성인이 됩니다. 군자는 주변 사람을 도덕으로 이끌지만, 성인은 먼 곳의 사람까지 힘이 닿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홍수가 나고 지진이 나도 도로를 지킵니다. 불도저와 굴착기가 되어 쓰러진 건물 속에 사람을 구하고, 소방차가 되어 불을 끄며, 구급차가 되어 사람을 살립니다. 군자는 천명 앞에서는 한낱 사람일 뿐이지만, 성인은 천명을 타고 다른 천명에 맞서는 사람입니다. 오직 공자, 예수, 부처만이 성인이겠습니까? 괘씸한 독재자를 끌어내리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막으며, 굶주리며 괴로워하는 뭇사람의 살림살이를 돕는다면 성인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계씨 8, 

8. 孔子曰 君子有三畏... 畏聖人之言 小人... 侮聖人之言

8.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으니,... 성인聖人의 말씀을 두려워한다. 소인은... 성인의 말씀을 업신여긴다.”

진심 하 14

孟子曰 聖人 百世之師也 伯夷柳下惠 是也 故 聞伯夷之風者 頑夫廉 懦夫有立志 聞柳下惠之風者 薄夫敦 鄙夫寬 奮乎百世之上 百世之下 聞者 莫不興起也 非聖人而能若是乎 而況於親炙之者乎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성인(聖人)은 백세의 스승이니, 백이(伯夷)와 유하혜(柳下惠)가 그런 분이다. 그러므로 백이의 풍도(風度)를 들은 자는 탐욕스러운 자가 청렴해지고, 나약한 자가 뜻을 세우게 된다. 유하혜의 풍도를 들은 자는 각박한 자가 후(厚)해지고 편협한 자가 관대해진다. 백세 전에 분발하면 백세 후에 그 풍도를 들은 자가 흥기(興起) 하지 않은 이가 없으니, 성인이 아니고서야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성인에게 직접 훈도를 받은 자에 있어서이겠는가? ”


 성인의 말씀은 세상에 도를 세웁니다. 흙과 바위를 고르게 파내고, 땅을 펴주며, 아스팔트를 바르고, 굳게 다집니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천명을 다합니다. 그렇기에 성인의 말씀은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전해집니다. 이 나라에 살면서 저 나라에 영향을 주고, 이 시대에 살면서 저 시대에 영향을 줍니다. 우리나라의 경부고속도로는 개통된 지 40년, 독일의 아우토반은 90년이 지난 지금까지 두 나라 교통의 심장으로 여전히 있습니다. 성인의 말씀은 소인을 군자로 만듭니다. 10년이건 100년이건 시간의 얽매임이 없고, 서울이건 베를린이건 장소의 거리낌이 없습니다. 온 세상에 군자를 낳는 것은 성인의 말씀입니다.




양화 13, 

子曰 鄕原 德之賊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향원은 덕을 해치는 자이다.”


진심 상 45~49

孔子曰 過我門而不入我室 我不憾焉者 其惟鄕原乎 鄕原 德之賊也 曰 何如斯可謂之鄕原矣 曰 何以是嘐嘐也言不顧行行不顧言則曰古之人古之人 行何爲踽踽涼涼 生斯世也 爲斯世也 善斯可矣 閹然媚於世也者 是鄕原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집 문 앞을 지나면서 내 집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내가 서운해하지 않은 자는 오직 향원(鄕原)뿐이다. 향원은 덕을 해치는 자이다.’ 하셨으니, 어떤 자를 향원이라 할 수 있습니까? ”

“향원이 광자를 비난하기를 ‘어찌하여 이렇게 말과 뜻이 커서 말은 행실을 돌아보지 않고 행실은 말을 돌아보지 않고서 「옛사람이여, 옛사람이여!」 하는가? ’ 하며, 향원이 견자를 비난하기를 ‘행실을 어찌하여 이처럼 외롭고 쓸쓸하게 하는고?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이 세상의 일을 하여 남들이 선하다고 하면 그만이다.’ 하여 세상에 아첨하는 자가 향원이네.”


萬章曰 一鄕 皆稱原人焉 無所往而不爲原人 孔子以爲德之賊 何哉 曰 非之無擧也 刺之無刺也 同乎流俗 合乎汚世 居之似忠信 行之似廉潔 衆皆悅之 自以爲是而不可與入堯舜之道 故 曰 德之賊也

만장이 말하였다. “한 지방 사람들이 모두 점잖은 사람이라고 일컫는다면 가는 곳마다 점잖은 사람이 되지 않음이 없을 것인데, 공자께서 ‘덕을 해친다.’고 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

“비난하려 해도 들추어낼 것이 없으며, 풍자하려 해도 풍자할 것이 없으며, 유속(流俗)과 동화하고 더러운 세상에 영합하여, 평소에는 진실하면서 신의가 있는 듯하고 행동함에는 청렴결백(淸廉潔白) 한 것 같아서 여러 사람이 다 그를 좋아하면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만, 그런 자와는 함께 요순(堯舜)의 도에 들어갈 수가 없네. 그러므로 ‘덕을 해친다.’고 하신 것이네.


孔子曰 惡似而非者...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비슷하지만 아닌 것인 사이비(似而非’)를 미워하노니... '


 천명을 타고 뭇사람에게 떠받들여진다고 하더라도 성인이 아닌 사람이 있으니, 바로 향원(鄕原)입니다.  향원은 큰 힘을 갖습니다. 욕구를 채워주는 말을 도덕의 껍데기를 씌워 말하거나, 도덕과 욕구를 섞어 말하며 뭇사람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해줍니다. 사람이 몰리고 무리를 이루며 힘을 불립니다. 그러나 향원의 힘은 성인에 비하면 부끄러울만치 턱없고 작습니다. 성인 밑에 모이는 사람은 어질고 의로운 군자이기에 나날이 조화하지만, 향원 밑에 모이는 사람은 꼭 좀스럽고 사나운 소인이기에 갈수록 불화합니다. 향원의 힘은 말라 없어지며 끝장을 보고 성인의 힘은 흘러 넘치며 끝이 없습니다.


 향원은 성인이나 군자 같으면서도 꼭 아닙니다. 흔히 말하는 사이비(似而非)입니다. 도덕에서 비롯되지 않은 말로 사람을 홀리고, 평범함 속에서 찾지 않고 특이함 속에서 찾습니다. 성인은 큰길, 한길을 틉니다. 경차, SUV는 물론 버스도 트럭도 다닐 수 있는 도로입니다. 그러나 향원은 무엇이든 쉽게 쉽게 하고 싶은 욕구로 사람을 꼬셔냅니다. 샛길, 곁길은 문득 보기에는 빠르게 갈 수 있어 보이지만 대형 교통사고를 내기 좋으니 결코 꾐에 빠져서는 됩니다. 여러분은 부디 향원에게 속지 말고 성인의 말씀에 귀기울여주세요. 뜨거운 마음으로 인의를, 빛나는 눈으로 예지를, 여러분의 손발과 말로 도를 이루고 군자와 성인이 되어주세요.




 소인에서 출발해 성인까지 도착한 <도덕운전면허학원>의 운전은 여기에서 끝나지만, 여러분의 운전은 이제 시작입니다. 율곡 이이 선생이 쓴 <격몽요결(擊蒙要訣)>의 말을 빌려서 말합니다. 덕을 지키고 도를 따르려는 사람은 반드시 성인이 되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털끝만큼이라도 자신을 작게 여겨서 핑계를 대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누구라도 성인이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아무나가 아닙니다. 성인의 씨앗을 가진 사람입니다. 여러분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책을 덮고 덕에 올라타주세요. 연습은 끝, 이제부터는 실전입니다. 실린더로 깊게 숨을 머금고, 머플러로 내쉰 다음 힘차게 도를 향해 달리는 겁니다. 성인이 되기까지 안전 운전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도를 이루는 그날까지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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