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순간, 숲이 그를 깨웠다.

07_잡학스런 공동체이야기

by 지구별 여행자

07_잡학스런 공동체이야기


멈춘 순간,

숲이 그를 깨웠다.

블라지미르 메그레(Vladimir Megre)의 ≪아나스타시아(Anastasia)≫


세대 충돌의 시대, 숲으로 향한 사유의 시작

≪아나스타시아(Anastasia)≫의 저자 블라지미르 메그레(Vladimir Megre)의 개인적 체험과 러시아 사회의 전환기를 긴밀히 엮어낸다. 1980년대 후반 고르바초프가 추진한 개혁·개방 정책은 계획경제 체제를 무너뜨리고 시장경제를 도입했으며, 사유화와 개인 기업의 설립을 허용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사회 전반에 심각한 혼란을 불러왔다. 물가가 치솟고 실업이 급증했으며, 사회 안전망은 붕괴되었다. 집단농장과 국가 배급에 익숙한 노년층과 자유시장과 부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가 서로 충돌하면서 불안과 갈등은 일상의 풍경이 되었다.


상인의 항해에서 영적 여정으로

블라지미르 메그레는 한때 시베리아에서 성공한 기업가였다. 그는 노보시비르스크를 거점으로 시베리아 최초의 민간 기업가 단체인 ‘시베리안 코오퍼레이터(Siberian Cooperator)’의 회장을 맡아 활동했으며, 오비 강을 따라 물류와 무역을 조직하고 소비재 유통망을 구축하며 빠른 속도로 부를 쌓았다. 또 선상(船上) 클럽을 열어 신흥 사업가들을 위한 경제 포럼과 네트워킹의 장을 주도하며 새로운 시대의 기업가상을 대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의 이면에서 그는 점점 더 깊은 의문에 사로잡히게 된다. 마을 광장에서 마주한 노년층과 젊은 세대의 가치 충돌과 논쟁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과연 물질적 풍요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라는 질문이 마음속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기업가로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회적 갈등과 내적 공허 사이에서 흔들리며,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자 하는 갈망을 키워갔다.


북극을 향한 항해

1994년 여름, 블라지미르 메그레는 세 척의 배를 이끌고 오비 강을 따라 북극권을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 사업가였던 그는 새로운 무역 루트를 개척하고, 극북 지역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찾고자 했다. 배에는 기업가와 상인들, 항해를 돕는 선원들이 가득했다. 목적은 분명히 상업적이었다. 하지만 메그레의 마음 한구석에는 설명하기 힘든 공허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돈과 성공이 늘어나도 행복이 채워지지 않는 현실, 그리고 며칠 전 마을 광장에서 마주한 노인들의 격렬한 반대와 질문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강가의 노인 부부

항해 중 어느 지점, 강가의 작은 마을에 들렀을 때 메그레는 수수께끼 같은 노인 부부를 만난다. 초라한 옷차림에도 눈빛만은 강렬했던 이들은 그에게 오래된 전설을 들려주었다. 그 전설은 바로 ‘울리는 삼나무(Ringing Cedar)’였다.


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시베리아 깊은 숲에는 수백 년 동안 태양과 우주에서 흘러오는 에너지를 가득 품은 특별한 삼나무가 있다고 했다. 보통의 나무와는 달리, 이 삼나무는 언젠가 그 에너지를 다 채우면 스스로 진동하기 시작하며, 울림을 내어 숲과 하늘을 가득 채운다고 했다. 그 진동은 단순한 물리적 소리가 아니라, 인간의 몸과 영혼을 치유하고, 잠들어 있던 지혜와 감각을 일깨우는 우주의 메아리와도 같았다.


노인 부부는 또한, 이 나무에서 얻은 기름이나 목재가 사람에게 특별한 힘을 주고 병을 낫게 한다고 덧붙였다. 그들의 눈빛은 마치 실제로 그 나무를 본 적이 있는 듯한 확신으로 빛났다.


숲으로의 발걸음

메그레는 이상한 흥분을 느꼈다. 단순한 신화처럼 들렸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 그 이야기가 진실임을 확신하는 듯했다. 그는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배를 멈추고, 강을 거슬러 타이가 숲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숲은 점점 사람의 흔적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무는 높고 울창했으며, 햇빛조차 희미하게 스며들었다. 강은 점차 가늘어져 보트로는 더 이상 나아가기 어려웠고, 결국 그는 도보로 숲길을 더듬어 들어가야 했다. 날카로운 바람과 고요한 숲의 정적 속에서, 그는 마치 무언가가 자신을 부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숲 속의 여인, 아나스타시아

그리고 마침내, 그는 아나스타시아를 만났다. 숲 속 공터에서 나타난 그녀는 긴 금발 머리를 휘날리며, 눈은 맑고 초록빛으로 빛났다. 맨발로 서 있었지만 발걸음은 나뭇잎 위를 스치는 바람처럼 가벼웠다. 곁에는 야생동물들이 있었다. 다람쥐가 그녀의 어깨 위에서 장난을 치고, 토끼는 발밑을 맴돌았다. 놀랍게도 맹수조차 그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늑대와 곰이 평온하게 곁에 머물렀고, 마치 가족처럼 그녀를 지켜보았다.


메그레는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다. 그러나 곧 그녀의 존재가 꾸며낸 환상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녀는 인간이면서도 인간을 넘어선, 자연과 완벽히 하나가 된 존재였다.


아나스타시아는 그를 환영하며 숲을 안내했다. 그녀는 동식물과 마치 대화하듯 소통했고, 별과 하늘에 시선을 두고 무언가를 듣고 응답하는 듯했다. 그녀는 또 다른 능력을 보여주었다. 자신이 ‘광선(Ray)’이라고 부르는 에너지를 통해 멀리 떨어진 사람과 소통하거나 병든 이를 치유할 수 있었다. 이는 단순한 초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인간이 본래 지니고 있으나 잊어 버린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짧은 만남 속에서 아나스타시아는 인간과 문명, 그리고 자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인간은 본래 자연과 우주와 하나이며, 서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진정으로 창조할 수 있는 힘은 사랑에서 비롯된다. 사랑은 우주 전체를 움직이는 에너지이며, 아이를 낳고 키우며 땅을 돌보는 행위 속에서 실현된다.

숲 속에서의 며칠은 메그레의 인생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쫓아온 성공과 부가 허상처럼 느껴졌다. 대신 눈앞에 있는 아나스타시아와 그녀가 보여준 삶, 그리고 사랑과 자연을 중심에 둔 새로운 문명이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숲의 목소리를 전하다: Ringing Cedars 시리즈의 시작

숲에서의 만남 이후, 블라지미르 메그레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더 이상 기업가로서의 성공을 좇지 않았다. 오히려 사업 세계에서 발을 빼고, 자신이 체험한 아나스타시아와의 대화와 메시지를 기록하고 세상에 전하는 일을 새로운 사명으로 삼았다. 1996년, 그는 마침내 첫 책 ≪아나스타시아(Anastasia)≫를 출간하며 “울리는 시베리아 삼나무(Ringing Cedars)” 시리즈의 서막을 열었다. 이 책은 러시아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에 담긴 숲의 지혜와 새로운 문명의 비전에 매료되었다.


메그레는 출간 이후 러시아 전역을 돌며 강연을 이어갔고, 각지에서 열리는 모임을 통해 독자들과 직접 교류했다. 그는 단순히 책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나스타시아가 말한 가족정원(킨즈 도메인, Rodovoye Pomestye) 운동을 사회적 실천으로 제안했다. 한 가족이 땅을 일구어 숲과 과수원, 연못, 집을 가꾸고 후손에게 물려주는 삶의 방식은, 점차 현실적인 대안 공동체 모델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20여 년 동안 메그레는 총 10권에 이르는 “울리는 시베리아 삼나무(Ringing Cedars of Russia)” 시리즈를 집필하며 자신의 체험과 아나스타시아의 메시지를 더 깊고 넓게 풀어냈다. 그의 책은 러시아를 넘어 유럽과 북미를 비롯하여 한국어로도 번역·출간되면서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뿐 아니라, 그가 이야기한 가족정원 운동은 러시아 전역의 수백 개 정착지로 확산되기 시작했으며 해외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생태공동체와 대안 정착 운동으로 이어졌다. 숲에서의 우연한 만남은 결국 한 사람의 인생뿐 아니라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생태문명의 불씨가 된 것이다.



https://youtu.be/0WsHTRixPcc?si=DwkOL4Qp6e8_9A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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