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공자와 같은 시대에 등장한 또 하나의 걸출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앞서 언급한 두 사람과 달리 종교의 창시자가 아닙니다. 고대 페르시아 초대 황제 키루스 2세 보졸그.
그의 출생년도는 기원전 576년에서 590년 사이로 추정됩니다. 페르시아족 출신 캄비세스 1세와 메디아 국왕 아스티아게스의 딸 만다네 사이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렇듯 귀한 왕손이었으나 정작 외조부 아스티아게스 국왕에게 심하게 박대를 받아 어린 시절에는 목동 밑에서 목동처럼 자라다가 10세가 되어서야 간신히 친부모에게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편, 크세노폰은 저서 『키루스의 교육』에서 키루스가 아스티아게스의 아들인 외삼촌 키악사레스에게서 메디아 왕위를 물려받은 것으로 서술했습니다.
피지배 민족의 종교를 존중하고 그들의 문화를 능동적으로 배우려 했던 정복자는 키루스가 역사상 최초 같습니다. 그는 다른 민족의 정부형태와 통치방식도 기꺼이 받아들여 활용했습니다. 그의 업적은 앞서 언급한 크세노폰의 저서 『키루스의 교육』과 키루스 실린더라고도 불리는 키루스 헌장에 남아 있습니다. 키루스 실린더는 1879년 메소포타미아(현재 이라크)의 바빌론 유적에서 발견되어 이후 대영박물관 52호실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노예제도를 금한 인류 최초의 인권선언이 적혀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키루스 대제가 통치하던 지역에서 최고신은 마르두크(Marduk)입니다. 키루스 실린더를 기록한 사람은 왕에게 권위를 더할 의무가 있는 마르두크 사제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많은 부분 정복자에게 유리하도록 미화된 면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종교의 자유를 허하고 노예제도 금지시킨 것만큼은 사실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그를 메시아라 불렀습니다. 키루스 대제는 우리 관점으로 보면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천자天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