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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Jul 08. 2019

이토록 영감을 주는 친구들이라니

그 당시 나는 그들을 질투했고 지금은 그들이 부럽지 않다

내 삶에서 어떤 것이 중요한지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었다. 내 나이 또래답지 않게 은퇴 후의 삶을 상상하는 것 또한 나의 취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의 삶을 유심히 바라보고 나의 경우에 자주 대입해보곤 한다.


부모님은 5년 전에 은퇴를 하시고 남해에서 생활하고 계신다. 엄밀히 말하자면 따뜻한 봄, 여름에는 남해에서 생활하시고(2020 지금은 여수로 이사가셨다. 여수폐교​를 리모델링하신다며...) 추워지면 중국의 하이난에서 나머지 반년을 보내신다. 두 분이서 관리하기 편한 자그마한 공간에서 생활하고 계시기 때문에 돈이 많은 사람들만이 이런 생활이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습한 곳은 엄마의 관절에 좋지 않아서 두 분은 따뜻한 곳에서의 생활을 선택하신 거다.


나 역시 내가 반년씩 남해와 하이난에서 생활한다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건강이 안 좋다면 이런 생활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지금도 건강이 무엇보다도 우선이 되었다. 그다음은 뭐가 아쉬울까 생각해본다. 고정적으로 안정적인 수입과 의미 있는 경제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고 책을 쓰려고 마음먹었다. 그걸 언젠가 죽기 전에 해야지가 아니라 지금 당장 하겠다는 마음으로 바뀐 것이다. 우리나라 출판시장이 크지 않아 출간으로만 먹고살 수 없으니 1인 기업이 되어야겠다 마음먹게 된 것도 이런 이유다. 그다음은 뭐가 아쉬울까 나에게 더 깊이 질문을 던져본다. 내가 떠올린 것은 친구였다. 영감을 주고받는 멋진 동료이자 벗이 나의 삶에서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다 자기 살길 찾아갈 테고 나와 남편만이 남았을 때 둘이서 오손도손 생활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나이에 상관없이 나를 성장시키고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 벗이 중요하다는 걸 나는 절실히 느꼈다. 그런 나의 마음에 돌을 던져 수면 위 파문이 생기듯 일렁거리게 만든 것이 이덕무와 그의 벗들의 이야기였다.



책을 읽기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간서치(책만 보는 바보라는 의미)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면 어떤 정도일까 싶을 것이다. 배가 고픈데 책을 읽으면 배고픔을 잊을 수 있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는 조선의 선비에게 솔직히 말해 호기심이 일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햇살과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서 나는 동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햇살이 비치는 공간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의 행복을 이덕무는 온 마음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중략) 햇살이 환한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책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신기하기도 했다  책상 위에 놓인 책 한 권이 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중략) 그러나 일단 책을 펼치고 보면, 그 속에 담긴 세상은 끝도 없이 넓고 아득했다. 넘실넘실 바다를 건너고 굽이굽이 산맥을 넘는 기분이었다.(중략) 하고한 날 좁은 방 안에 들어박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처럼 날마다 책 속을 누비고 다니느라 나는 정신없이 바빴다. 때론 가슴 벅차기도 하고, 때론 숨 가쁘기도 하고, 때론 실제로 돌아다닌 것처럼 다리가 뻐근하기도 했다. - '책만 보는 바보' 본문 중에서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 중 하나는 햇살이 비치는 방에서 책을 읽을 때다. 책 읽는 나를 위해서 햇살이 나에게만 내려온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할 정도다. 그리고 그런 햇살을 받으며 나는 책 속으로 아무 제약 없는 여행을 한다. 참 신기한 경험이다. 정신 차리고 보면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은 소파 위에 내가 있다.


이덕무가 책을 좋아하는 것만큼 그의 벗들도 책을 참 좋아한다. 그리고 함께 웃고 배우고 서로를 격려한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쩌면 그들에게 질투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벗을 얻고 함께 즐거워한 그들의 삶을 질투했던 것 같다.


책을 좋아하고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1인 기업이 되기 위한 행동을 옮길수록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람들이 적지는 않을 텐데 그런 이야기를 하며 서로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벗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더욱 사람들을 만나려 했는지도 모른다. '아득히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하더라도 한눈에 알아보는 벗을, 나도 만날 수 있을까?'라며 간절히 바라던 이덕무 선생처럼 나 역시 그런 벗을 만나고 싶었다. 어떤 때는 우스갯소리로 나의 울적한 마음을 날려 보낼 수 있는 유득공과 같은 친구가 필요했다. 그리고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는 함께 화를 내주고 내 편이 되어주는 든든한 박제가 같은 친구를 찾았다. 책 이야기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게 되는 이서구 같은 친구가 있다는 것은 큰 복이다. 그리고 담헌 홍대용 선생이나 연암 박지원 선생처럼 멋진 스승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덕무 선생은 가난을 빼면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일 수도 있다. 먹고살만해도 그런 벗 하나 없이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와 그의 벗들을 하나로 묶어준 것은 책이었을 테고 서로가 서로를 알아봤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책만 보는 바보'를 읽으면서 이덕무 선생과 그의 벗들의 얼굴이 궁금했다. 책에서 외모를 묘사하는 부분이 많아서 더욱 그랬다.

약과 러버 이덕무 선생, 요섹남 연암 박지원 선생 등등


그려보고 나니 그들에게 더욱 애정이 갔다. 역사 속 멀고 먼 옛날 인물이라는 느낌보다 그저 책이 좋아 모인 독서모임 멤버같이 느껴졌다.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라는 책에서도 연암 박지원 선생의 청년 시절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는데  이 책에서도 그의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의 면모를 볼 수 있어서 웃음이 났다. 지금까지 경영서적, 사회과학 서적들을 쫓기듯 읽으며 내 머릿속에 새로운 지식들을 꾸역꾸역 넣고 있던 나는 이번 책을 통해서 어느 한 봄날 잔디밭에서 음식을 나눠먹으며 깔깔대던 친구들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책으로 맺어진 이덕무와 그의 벗들의 교류를 바라보며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지치지 않고 가는 방법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걸 먹는게 나에게는 최고의 행복이다


그 후의 이야기, 영감을 주는 사람들과 영감가득한 하루

'책만 읽는 바보'를 읽고 위의 글을 쓰고 4개월이 지났다. 다시 나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걸까. 매일매일이 새로운 영감으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 그러다 보니 매일이 똑같은 하루가 견디기 힘들었고 발전이 없이 툴툴대는 사람들과 함께하기 힘들었다. 그러다가 멋진 사람들을 만났다. 내가 이덕무와 그 벗들을 부러워하고 질투했었는데 이젠 전혀 부럽지가 않았다. 씽큐베이션과 여러 모임들을 통해서 성장하고 싶어 하고 빛이 반짝이는 사람들을 만났다. 어쩌면 우리 모두 자기 안의 빛을 못 보고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나의 빛이 있는지도 잊고 특별한 누군가의 삶만이 부럽다고 말이다. 지금까지 우린 모두 목이 말랐었다. 내 안의 빛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나타나 주기를, 내가 진짜 나일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커뮤니티가 빛나는 사람들을 찾아준 걸까, 빛나는 사람들이 모여 모임들이 만들어진 걸까. 지금 와서는 그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이미 우리는 이 연결 속에 있고 지금까지 느껴온 설렘은 시작에 불과하니까. 이런 벅찬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불과 몇 개월 전의 나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는 게 없을까 봐 전전긍긍했었고 조급했다.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가서 아쉬웠고 내가 부족한 거 같아 불안했다.


이제는 몇 개월 전에 힘들 거라고 생각했던 1일 1글(심지어 꽤 긴 분량의)과 그림 그리기가 그냥 일상이 되었고 글쓰기를 멈추는 게 나에게는 더 이상 휴식이 아니다. 글쓰기를 멈추는 건 성장을 멈추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지금 1일1글이 습관이 잡혔는데 멈춘다면 다시 시작할 때 또다시 처음처럼 될 것 같다는 두려움도 있다. 이미 관성이 붙은 나의 글쓰기는 더욱 높은 곳을 향해 가려고 설렁설렁 뛰고 있는 상태다. 마라톤 하면서 완전히 멈춰서 휴식하는 것보다 조금 페이스 다운하면서 숨을 고르는 것처럼.


나에게 흔한 기념일들은 기대가 되지 않는다. 요즘에는 매일매일이 설레니까 힘든 것을 생각할 시간조차 아깝다. 마중물을 끌어올리기 위한 펌프질은 이미 끝났다. 이제 즐기며 더 큰 성장을 위해 다시 뛰면 된다. 동료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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