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소소하더라도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의미 있는 성과를 냈던 순간은? 어떤 과정을 거쳐 성과를 이룰 수 있었는지, 크기가 작더라도 '주체적으로 이룬 성과'에 대해...
작은 성공은 사람을 단단하게 한다. 크기가 작더라도 내가 주체적으로 이룬 것은 소중할 수밖에 없다. 나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던 때가 언제였는지 떠올려 봤다.
나는 건강이 안 좋아진 다음에(참고: 전환점 1) 밤새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게 되었다. 하지만 도시설계 수업 과제가 있던 전날, 나는 그 주제에 완전히 꽂혀 있었다. 밤을 새우며 준비하면서도 재미있었고 다음 날 교수님이 발표할 사람 없냐고 물었을 때도 어제 밤샌 게 아까워서 자진해서 발표도 했다. 내가 그 프로젝트에 온 마음을 다해서 그랬는지 발표도 자연스럽게 했고 결과도 좋았다. 지금 떠올려보면 불안해하거나 조급해하지 않을 때 나는 결과가 항상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차분하게 남은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일을 계획하고 최선을 다 했을 때 몰입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이라는 책을 쓴 후루이치 노리토시라는 젊은 사회학자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오면 그가 한 말들이 인터넷에서 자주 화제에 오르곤 했었다. 그러다가 그가 신작을 썼다는 걸 일본의 책 소개 프로그램을 보다가 알게 되었다. 그 책이 한국에 아직 안 나와서 원서를 주문해서 읽어봤다. 너무너무 심장이 뛰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내 또래의 미혼의 남자 사회학자가 말하고 있었다. 찾아보니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전작이 민음사에서 출판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작정 민음사에 연락해서 그 책을 출판하실 의향은 없냐고 빨리 한국 독자분들도 읽으셨으면 좋겠다고 열렬한 메시지를 보냈다. 신기하게도 담당자가 그 책 계약을 막 마친 상태라고 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없는지 나의 강력한 어필이 통했는지 운이 좋게 '아이는 국가가 키워라'라는 책으로 번역하는 걸 나에게 맡겨주셨다. 그때 첫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는데 그 감격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결국 나는 몰입할 때와 내가 주도적이 되었을 때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오는 거 같다.
글쓰기를 잘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고등학교 1학년 초까지 없었다. 그저 나의 언어영역 점수를 올리고 싶었을 뿐이었다. 내가 좋아하던 훈남 국어 선생님은 그저 뭘 보든 '써봐'라고 하셨다. 그 말에 홀리듯 만화를 봐도 쓰고, 영화 보고 나서도 쓰고, 기분이 울적하면 쓰고, 책을 읽고 나면 쓰고.... 이런 식으로 쓰다 보니 글쓰기가 수다 떠는 것처럼 재미있어졌다. 1년도 안되어서 교내 논술대회가 있었는데 종이 받자마자 신나서 개요 짜고 글을 써 내려갔고 그때 몰입을 했다. 글을 써 내려가는데 엄청 재미있다고 느꼈다. 상을 타야겠다는 생각보다 그 순간에는 그냥 글 쓰는 게 재미있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논술대회에 대해서 잊을 때쯤 윤리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서 잘 쓴 글이 있다고 읽어주셨는데 그게 내 글이었다. 그 순간 정말 영화의 한 장면같이 느껴졌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글 쓰거나 책 읽는 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별로 없어서 내가 받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 작은 경험은 나에게 엄청 컸다. 대학에 와서도 글을 쓰거나 토론을 하는 수업은 이렇게 해서 점수받아도 되나 싶을 만큼 즐겁게 했었다.
위의 세 가지 순간들은 지금 생각해도 감사하고 기쁜 일이지만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해 준 결정적인 힘은 꾸준함이었다는 것도 참 의미가 깊다. 걷기를 올해 1월부터 9개월 넘게 매일 40분~1시간을 걸었고 최근에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린 지 3주가 거의 다 되어간다니 믿기지 않는다. 달릴 때도 나는 몰입을 경험한다. 그리고 매일매일 꾸준함으로 작은 성공을 맛본다. 나는 이 단단함으로 더 많이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한 기초를 다질 것이다. 결국 의미 있는 성과는 '몰입'할 때 찾아온다. 나의 자존감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