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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Aug 19. 2020

모든 건 외로움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이제 외로움을 다룰 줄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도 나는 외로울 때가 있어."


대학생 때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철학적이면서도 쓸쓸한 그 말을 듣고, 나는 그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기 어려웠다. '영혼의 단짝을 만난다면 그런 외로움도 사라지지 않을까?'하고 말이다.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말의 의미를 이제야 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혼자 있을 때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도 외로움을 느낀다.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은 어쩌면 '누군가'와 함께 한다고 해소가 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느 순간 하게 되었다.


 

기술이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을까

 우리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술이 어마어마하게 발전해서 모든 게 풍요로워진 것만 같은데 왜 아직도 불행한 사람들이 많은 걸까. 이게 기술 탓인 걸까. 아니면 그 기술을 잘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개인의 탓일까.


 심리학 책은 평소에 손이 잘 가지 않았지만 이 책만은 궁금했다. 기술은 어떻게 우리 삶을 변화시켰고 과연 우리는 기술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보다 더 많은 이들과 연결되어있는 데도 외로운 군중들은 더 많아지고 있다. 나 역시 내 안의 외로움을 돌아보니 결국 기술이란 '막'에 의한 공허함이 항상 있었다. 하지만 예전에는 막연하게 기술에 대한 불신과 걱정만이 가득했었다면, 루크 페르난데스와 수전 J. 맷이 쓴 <테크 심리학>을 읽고 나니 답답했던 마음속 안개가 걷히는 듯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외로운 존재였는데, 16-17세기에 와서야 오늘날의 외로움에 해당하는 감정이 언어로 구현된 것이다. - <테크 심리학> p. 123


 과거에는 외로움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기술들에 이미 익숙해진 우리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면, 우리가 외로움을 대처하는 데에는 더 이상 좋은 방법이 없는 걸까? 외로움, 지루함, 주의집중이라는 3가지 키워드를 통해 앞으로 우리가 느끼는 공허함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한번 살펴보려고 한다.



사고 실험을 통해 마주한 내 안의 외로움

 내가 평소에 자주 하는 사고 실험은 '돈과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경제적 자유를 얻게 되면 무엇을 하고 싶을까'라는 질문 던지기다. 그 질문을 던졌을 때 나의 욕망의 끝에는 '외로움'이 존재했다.

 외로운 돈 많은 노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일만 하느라 가족과의 시간을 내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외면받는다면 돈이 많아도 소용이 없겠다는 걸 깨달았다. 집이 있고 그럭저럭 먹고살만하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외로운 어르신, 은퇴 후에는 배우자와 졸혼의 형태로 각자 살아가는 중장년 부부, 부동산 임대 수익으로 큰돈을 만졌지만 가족들에게 외면받은 사례들을 다큐나 여러 가지 매체에서 접하다 보니 그런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그렇다면 '돈과 여유시간,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면 나는 행복할까'를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또 하나의 공허함이 남았다. 바로 동료들이었다. 은퇴하신 부모님의 친구분들을 봐도 나이가 들어서도 친구 관계가 유지되려면 생활수준이 비슷해야 했다. 가족과도 화목하고 몸도 건강해야 함께 만나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 이야기를 들으니 그런 분들이 좀처럼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나와 가치관이 맞는 성장형 사고방식의 동료들과 계속 일을 하고 싶었다. 불편하다고 생각되는 요소들을 함께 해결하며 평생 은퇴를 안 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려면 건강을 중요시하고 항상 배움에 대해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어야 했다. 오래 알고 지냈다는 것만으로 친구라고 말하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그렇게 나만의 삶의 방향성이 보이니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내 실력을 올리는 것과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동료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내 안의 외로움에 대해 처음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커뮤니티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다

그렇게 나는 수많은 커뮤니티를 경험했다. 최소 10개의 크고 작은 모임에 참가하다 보니 점점 더 내가 생각하는 동료를 찾는 게 쉽지 않구나를 느꼈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커뮤니티에 참여자로만 있으면 그 안의 사람들과 깊은 유대감을 갖기 어려웠다. 나처럼 그들 역시 자기 안의 외로움을 느끼고 모임에 참가했을 텐데 자신을 드러내기 어려워했고 심지어 자신이 누군지조차 몰랐다.


여러 커뮤니티 경험을 통해 내가 작게라도 모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년에 '언어 씹어먹기' 라는 모임을 만들 당시에는 내가 외로워서 이런 모임을 만든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 그저 언어 공부의 환경설정을 통해서 내가 배운걸 함께 나누고 '함께'의 힘을 이용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함께 어떤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자리 잡았다.


외로움이 아니라 즐거운 고독인 'Solitude'

<테크 심리학>에서는 과거에도 이런 외로움이 모두에게 있었다고 말한다. 19세기 초 노예의 외로움은 외압에 의한 외로움이었다. 그들은 외로움을 기도나 편지 쓰기를 통해 극복하려고 했다. 하지만 외로움도 상황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금광을 캐는 광부들의 외로움은 더 나은 삶을 위한 각오였다. 그리고 작가의 경우는 천재성을 드러내기 위한 자발적인 고립이었다. 편지나 전보, 전화 등의 기술이 등장해 고독을 달래려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인간은 철학적으로도 어느 정도 "고독과 사생활"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 도시생활에서 겪는 신경쇠약증은 타인과의 잦은 접촉과 최소한의 사생활조차 확보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가 원인이라 할 수 있다. (...) 이 때문에 그들은 사람들과의 교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정상적인 방법인 고독을 못 견딘다. 그러나 정상적인 삶에는 타인과의 교제 못지않게 일정 수준의 고독이 반드시 필요하다. 홀로 있는 상태나 고독을 우려하는 오늘날의 비평가들과 달리, 에드먼은 이(고독)를 자연스럽고 또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 - <테크 심리학> p. 143


도시 환경이 사람들에게 타인을 많이 알아야 한다는 강박과 또 그럴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지만, 대체로 기대가 충족되지 않아, 불만과 슬픔, 외로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p.145

이 부분을 읽으면서 '기대'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움 자체보다, 외로움이 부정적인 느낌으로 변질이 되었다는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사실은 "즐거운 고독"을 의미하는 영단어 'solitude'의 사용 빈도가 감소하는 반면, 외로움을 뜻하는 'loneliness'는 점점 증가하는 구글 엔그램의 통계에서 잘 드러난다. 미국인들이 쓰는 말에서 고독이라는 개념이 과거보다 많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외로움과 구분하는 능력도 점점 감퇴되고 있다.-  p. 195

그렇다면 홀로 있는 상태를 긍정적인 요소로 만드는 말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아니 이미 solitude라는 단어가 있으니 만들 필요는 없겠지만 요즘 들어 사람들이 쓰는 말속에서 그런 움직임이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혼밥', '소확행' 등의 용어에서 외로움보다는 자립심이 느껴지는 건 나만의 착각인 걸까.



고독, 외로움 대처법

 고독을 달래는 것이 갈증을 달래려고 바닷물을 마시는 것만큼이나 허무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들은 자신의 감정과 열망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p. 155

텔레비전이 가족을 한데 모은다는 환상을 주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소중한 가족, 사람들과의 화합을 위해 내가 떠올린 건 음식의 힘이었다. 함께 만들어먹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공간 말이다. 그래서 오픈 다이닝 공간인 미니멀 라이온을 올해 초에 열게 되었다.



외로움이 편지나 전보를 통해 해소될 것 같았지만 그 기술은 전화로 넘어갔고 또 TV, 라디오, 심지어 자동차까지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런 기술로도 해결이 되지 않자 인류는 그 해답을 공동체에서 찾으려고 했고 그럼에도 해결이 안 되자 사람들은 심리학과 자기 계발 도서에서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더 많은 앱이 이런 외로움을 해결해준다고 했지만 그러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튜브를 해도 결국 외로운데 사람들이 보기에는 외로워 보이지 않기 때문에(참여하고 그 공간에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사람들이 그 모습에 속는 거다.


외로움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앞선 세대와 달리, 오늘날 사람들은 그것을 치료가 가능하며, 핸드폰과 컴퓨터만 있으면 충분히 달랠 수 있는 상태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약속해준 행복과 따뜻함, 사교성 등을 얻을 수 없게 되자(지나치게 높아진 기대를 생각하면, 그 실패는 어쩌면 필연이라 볼 수 있다), 스스로를 탓하기에 이르렀다. -p. 199


 이젠 외롭다고 스스로를 탓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외로움 외에도 이 책에서는 지루함, 주의집중, 경이감, 분노, 허영심에 대해 다루고 있다. 지루함은 천재성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마누시 조모로디의 <심심할수록 똑똑해진다>를 보면 그 생각에 더욱 힘을 실게 된다. 사람들은 지루함을 두려워하지만 지루함을 오히려 기회로 볼 수도 있다. 나의 창의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 말이다. 지루함이 찾아왔을 때 무의식적으로 지루함을 없애려 하지 않고 지루함을 즐기게 된다면 어떨까. 많은 이들이 창의적인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주의집중을 위해서도 우린 선택이 필요하다. 결국 나의 욕망을 마주 볼 용기를 내고 실행하면 된다.


내가 나아갈 길, 우리가 나아갈 길

 앞으로도 우리 마음속에서 외로움을 뿌리 뽑을 수는 없다는 건 자명해졌다. 외로움을 해소하려고 한다면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더욱더 외로움에 목이 마르게 되어버린다. 하지만 외로움을 당연시하고 고독을 즐긴다면 때때로 찾아오는 고독이 반가울지도 모른다. 그리고 주의집중을 못해서 불안해하기보다 외로움과 지루함을 즐기고, 당연하다는 기대를 벗어던진다면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는 불안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지게 된다.


외로움을 느낄 때 쓰기가 그 무엇보다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글쓰기, 책 쓰기가 누군가와 닿을 것 같다는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활동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읽고 글 쓰며 책에 대해 대화 나누기 역시 말이다. 책을 읽고 대화 나누는 것이 불가능할 때는 또 하나의 방법을 이번에 발견했다. 책을 읽다가 의문이 생기거나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날 때 그 구절 옆에 내 생각을 적어봤다. 그러다보니 저자와 대화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고, 후에 그 페이지를 다시 읽었을 때 과거의 나의 생각과 다시 대화 나누는 느낌이라 후에 글쓰기 할 때도 더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까지 나의 불안이 나를 이렇게 성장하게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이 책이 나를 불안으로부터 구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고 나에게 집중할 준비가 되었다. 이렇게 자신감이 넘친 적 또한 없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 책과 글쓰기는 나를 매번 한 뼘씩 더 성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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