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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상우 Feb 07. 2024

강화, 금문도

같은 음식, 다른 생각

밤잠을 설친 것도 아닌데 찌뿌둥하게 눈이 떠진 어느 휴일.

나는 문득 탕수육이 먹고 싶어졌다.

그냥 탕수육이 아니라 정말 맛있는 탕수육이 먹고 싶어졌다.


2021년 겨울이었을까. 취준생이라 불리던 그 시절은 겨울이라는 계절만큼이나 내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기약 없는 불안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내 정신은 청춘이라 불리는 생기를 잃은 채 방황하고 있었다. 당시 살고 있었던 반지하 방은 꼭 내 삶과 비슷했다. 지상도 지하도 아닌 그 중간의 어딘가에 애매하게 끼여 빛하나 받지 못하는 그런 존재가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 그 시절의 나는 분명 깊은 우울에 빠져 있었다. 그 우울은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의무감과 그 의무를 하기 싫은 귀찮음 그리고 그 귀찮음으로 인해 느껴지는 죄책감, 자기혐오가 악순환을 반복하면서 더욱 심해져 갔었다.


의미 없고, 생기 없는 나날들이 반복되던 와중, 문득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졌다. 그냥 떠나고 싶었다. 이 답답한 현실을 단 한 순간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늘 창 앞을 가로막고 있는 주차장 담벼락이 아니라 가슴 뻥 뚫리는, 아무것도 가로막지 않는 바다를 보고 싶었다. 어디로 가볼까. 동해는 너무 멀다. 가까운 바다가 어디지. 그래. 서해로 가자. 대부도는 가는 길이 너무 머니까 인천으로 가야 하는데, 을왕리는 가봤으니... 좋아, 강화도로 가자. 입김이 호숫가의 안개처럼 짙게 불어져 나오던 날 아침. 혼자 떠나는 첫 여행이라는 설렘과 외로움, 불안이 야릇하게 뒤섞인 채 나는 강화도로 떠났다.


강화도에 도착하고 나니 배가 많이 고팠다. 출발하기 전 찾아본 것이라곤 강화도는 순무가 맛있고 토착음식으로 젓국갈비가 있다는 것뿐이었다. 무엇을 먹어야 하나. 시장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덜덜 거리는 엔진소리를 배경 삼아 열심히 휴대폰을 두드렸다. 그때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음식점 하나를 발견했다. 금문도. 강화버스터미널 상가 2층에 위치한 언 듯 평범해 보이는 중국집이었지만, 왜인지 느낌이 달랐다. 무언가 거대한 것을 발견한 모험가의 육감이 발동한 순간이었다.


금문도의 순무탕수육


금문도의 탕수육은 그것이 태어난 고향을 다시금 상기시키듯 강화도 특산품인 순무가 푸짐하게 쌓여있다. 탕수육이라는 음식이 이렇게 외관만으로도 압도감을 주는 음식이라는 것을 나는 처음 느꼈다. 탕수육과 무채의 조합이라니 참으로 기이하면서도 신선한 외경이다. 탕수육 아래에는 간장과 식초, 유자청으로 버무려진 달콤, 새콤, 짭조름한 소스가 있다. 이 소스를 무채와 함께 버무리고, 탕수육 위에 양념을 가득 머금은 무채를 올려 입안으로 넣는 순간 짭조름하면서 달콤한 유자간장소스가 혀 중단과 말단을 자극하고 향긋한 유자소스가 콧노래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윗턱과 아래턱 사이에 들어온 탕수육과 무채는 따뜻함과 차가움, 쫀득함과 아삭함을 번갈아주면서 아까부터 준비한 콧노래를 드디어 연주하게끔 한다. 참 맛있는 탕수육이다.


2021년에 다녀왔던 금문도와 2023년에 다녀온 금문도는 같은 식당이지만 내게는 다른 맛으로 기억된다. 21년의 금문도를 다녀온 나는 불안하고 방황하던 나였기에 지금과 비교했을 때 그 맛을 충분히 음미하지 못했다. 하지만 2023년의 나는 이전보다 단단해졌다. 불안도 방황도 외로움도 때가 되면 다 지나가리라는 것을 알기에 이전처럼 그곳에서 허우적대며 나를 갉아먹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 덕분이었을까. 내 앞에 놓인 음식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었고 나의 현재에 그리고 나의 삶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은 음식이지만 언제 먹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음을 금문도의 탕수육을 통해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음식은 그저 음식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거울이 될 수 있다. 똑같은 음식이더라도 내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그 맛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2021년 강화도에 금문도가 있었음에 감사하고 2023년에도 금문도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자매품 강화속노랑간짜장과 강화백짬뽕 (이 두 메뉴도 필히 먹을 것을 추천한다. 극락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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