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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상우 Feb 21. 2024

마곡, 산청 숯불가든

진심 가득한 돼지고기


순전히 나의 오피셜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쉽게,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음식점이 돼지고기구이집, 통칭 삼겹살집이다. 삼겹살집은 도시에도 시골에도 공평무사하게 있고 우리가 어디에 있을지 염려라도 하듯 주택, 상업, 공업 지역 가리지 않고 환하게 불을 켠 채 우리를 반기고 있다. 이처럼 수많은 삼겹살집들이 우리의 배고픔을 안 쓰러이 여겨 전국 곳곳에서 화롯불을 피어올리고 있지만,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맛있는 삼겹살집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그 이유는 돼지고기 구이가 참으로 어려운 요리이기 때문이다.


본디 구이는 요리 내에서도 아주 어려운 조리법에 속한다. 불의 온도와 고기의 상태, 굽는 방법에 따라 똑같은 고기도 전혀 다른 맛이 나기 때문에 단순하지만 고도의 섬세함이 요구되는 까다로운 조리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때문에 100개의 삼겹살집이 있다면 100개의 서로 다른 삼겹살 구이가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두께로 어떤 부위를 어떻게 정육하고 또 어떤 불판에 어떤 온도로 어떻게 굽느냐에 따라 수백 , 수천 가지의 돼지고기 구이가 탄생한다. 거기에 더해 어떤 양념에, 어떤 반찬과 곁들여 먹는 지까지 경우의 수를 추가하면 돼지고기구이의 갈래는 우주적 무한으로 향하게 된다.


 오늘 방문한 산청 숯불가든은 돼지고기의 본질에 집중한 것에서 더 나아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반찬, 사이드 메뉴부터 인테리어와 같은 외적인 요소까지 돼지고기와 충실한 조화를 선보이는 식당이다.


산청 숯불가든의 정육 장인들(좌), 재래식 소금구이 한접시(우)


산청 숯불가든의 돼지고기는 모두 지리산에서 자란 산청 흑돼지로 재래식 소금구이 한 접시(500g 58,000원)를 시키면 어깨살(견갑 부 앞다리살), 삼겹살, 목살로 구성된 두툼한 돼지고기 한판이 나온다. 모든 부위의 고기가 육즙을 끌어모으기 위해 두툼한 크기로 잘려 있는데, 특이한 점은 고기들이 모두 어슷 썰려져 있다는 것이다. 얇은 부분은 빨리 익고, 두꺼운 부분은 상대적으로 천천히 익기 때문에 어슷 써는 방법의 장점이 어떤 것인지는 잘 이해하지 못하겠으나 썰려진 고기만 보고서 '우와'라고 감탄이 나올 만큼 멋이 있다는 점에선 이견이 없다.


사각 석쇠 위에 놓여진 돼지고기(좌), 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 한점과 양념(우)

산청의 숯불과 사각의 대형 석쇠는 서로를 그리워하는 견우와 직녀가 오랜 기다린 끝에 오작교를 통해 만난 것처럼 아주 가깝게 붙어 있다. 그 덕분에 숯불의 화력은 오로지 돼지고기를 익히는 데에 최대의 효율을 발휘할 수 있고 불판은 최고(最高)의 온도로 돼지고기의 겉표면을 빠르게 익혀 육즙의 탈출을 기습적으로 그리고 영원토록 막아낸다.


노릇하게 구워진 돼지고기는 스텐 접시 위에 놓여 소금, 명란, 와사비와 조우를 하게 되는데, 단연 나의 선택은 소금이다. 비계 끝에 소금을 꾹 찔러 누르고 입안으로 한 점 고기를 넣으며 상악과 하악을 있는 힘껏 눌러 고기를 씹는 그 순간. 팔당댐이 열리고 말았다. 아삭, 말랑한 비계의 촉감이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살코기에 있던 육즙이 굳게 잠궜던 팔당댐 수문의 개방을 재현했다. 물 밀듯이 밀려오는 육즙은 입안에서 거센 파도를 일으켰고 잘게 씹힌 살점들과 함께 위장으로 아주 매끄럽게 내려갔다.


참 맛있는 돼지고기다. 애타게 찼던 돼지고기다. 고기를 한점, 한점 먹으며 나는 이런 돼지고기를 먹고 싶었다는 걸 새삼 다시 느꼈다. 늘상 먹어온 그저 그런 돼지고기가 아니라 이렇게 감동적인 돼지고기를 나는 먹고 싶었다. 산청 숯불가든의 돼지고기는 고기 그 자체만으로도 압도적인 맛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그 맛의 감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놓지 않고 다양한 변주를 주기 위하여 앞서 얘기한 소금, 명란, 와사비의 양념부터 파채, 갓김치, 무말랭이, 피클, 오이지의 반찬까지 정성스레 준비되어 있다. 각각의 양념과 반찬은 돼지고기의 맛을 위에서 아래에서 옆에서 보조해 주며 먹는다는 그 행위 자체를 기쁨으로 승화시킨다.


돼지고기구이는 참 어려운 요리다. 단순하기에 그 맛을 발전시키기 위해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산청 숯불가든은 장인의 세심함을 바탕으로 명품이라 불리어도 손색이 없는 돼지고기구이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식당이다. 정말 맛있는 돼지고기를 돼지고기와 정말 잘 어울리는 곳에서 먹고 싶다면 멀더라도 산청 숯불가든을 꼭 방문하여 먹어볼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파채, 오이지, 갓김치, 감자사라다 등의 사이드 메뉴(좌), 미치게 맛있는 검은콩 한우 된장찌개(우)
또 미치게 맛있는 고초장 양념구이(좌), 미친 나를 더 미치게 만드는 흰쌀밥 위 고초장 양념구이
산청의 나무 명패(좌), 그 이름에 충실하게 물조차 산청에서 길어오신 사장님의 센스(우)
산청 숯불가든 맛있게 먹는 법(좌), 우리의 탐구 대상 메뉴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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