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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상우 Feb 14. 2024

합정, 멘야준

내 마음속 염원, 음식

라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교토 주택가 골목에 자리한 자그마한 음식점에서 나는 라멘이라는 것을 처음 먹어보았다. 그때 먹어본 라멘은 '시오라멘'이었다. 일본 라멘은 걸쭉하고 진한 국물의 돈코츠만 있는 줄 알았던 내게 맑은 국물의 라멘은 참으로 생소했다. 하지만 한 숟가락 국물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순간, 혼미함을 느꼈다. 맛이 아득히도 깊었다. 투명한 국물에서 이런 깊음과 감칠맛이 느껴지다니. 깊은 맛은 짙고 탁한 국물에서 나올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을 와장창 깨부수는 맛이었다. 그때의 충격이 너무 강렬했던지,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도 일본 라멘집을 여러 곳 찾아다녔다. 하지만 그때 교토에서 먹었던 그 맛을 느끼기란 쉽지 않았다. 깊은 맛과 강렬한 감칠맛을 이미 느껴본 터라 그와 다른 라멘은 심심하고 어딘가 부족한 맛이 계속 느껴졌다. 여러 번의 실망이 반복되자 라멘을 찾아 나서는 발걸음은 줄어들었고, 그렇게 차츰 라멘은 내게서 멀어져 갔다.


교토에 다녀온 지도 6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라멘을 찾지 않았다. 그러다 올해 2월 늦은 겨울바람이 내 품으로 불어올 때, 문득 라멘이 먹고 싶어졌다. 따끈한 국물과 차슈, 멘마, 계란 등의 고명 그리고 탄탄한 면이 먹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라멘이 먹고 싶어 졌던 건 내 마음이 공허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차갑고 빈 공간처럼 느껴지는 내 마음속에 따끈하고 푸짐한 무엇을 가득 채우고 싶어 라멘이 먹고 싶어 졌던 걸지도 모르겠다.


멘야준의 시오라멘



멘야준의 시오라멘을 처음 보게 되면, 저절로 경건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릇과 국물의 색 그리고 놓여진 고명들의 자태가 참으로 단아하다. 그러나 조용하고 기품 있는 담김새와 달리 그 맛은 충격적이다. 국물을 한 숟가락 떠 목구멍으로 넘기면 외마디 비명이 자연스레 터져 나온다.


'아 맛있다!'


6년 동안 라멘을 찾지 않은 내게 후회의 형벌이 내려짐을 느끼면서 그 죄를 참회하고자 한 숟가락 더 국물을 떠넘긴다.


'아 맛있다!!'


멘야준의 국물에서는 내가 이전에 교토에서 느꼈던 깊은 맛과 감칠맛이 강렬하게 느껴진다. 차슈, 멘마, 닭가슴살 구이, 완자, 계란 등의 고명은 한 그릇에 담겨 있을 뿐, 하나하나가 주인공이라 불러도 될 만큼 강하고 개성 있는 맛을 가지고 있다. 면은 얇지만 라멘 특유의 단단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고소한 맛을 풍긴다. 국물, 고명, 면 그중 어느 하나도 부족함이 없다. 숟가락에 국물을 담고, 면을 넣고, 그 위에 차슈 한 조각을 뜯어 올린 다음 입안으로 넣는 순간 아찔함이 다시금 느껴진다.


'정말 맛있다'


오랜만에 맛있다는 말을 연거푸어 되뇌며 먹은 음식이다. 늘 먹는 음식이지만 우리가 먹는 그 음식에는 맛이라는 피상 너머 아득히 깊은 곳에 우리 마음의 염원이 담겨져 있다. 마음이 우울할 때 허전할 때 따뜻함이 필요할 때 우리는 그 마음을 담아 그리고 염원을 담아 한 그릇의 음식을 찾는다. 찬바람이 불어올 때, 마음속 빈 공간에 따뜻함을 채워 넣고 싶을 때, 나는 다시 멘야준을 찾아갈 예정이다. 호로록 호로록. 소리내어 먹는 그 경쾌함으로 나의 공허를 생동으로 바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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