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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상우 Jan 31. 2024

제주시, 명물

쥐치가 아니올시다. 객주리 올시다.

바야흐로 첫 직장을 다니던 시절이다.


제주도로 출장을 간다는 소식에 들뜬 마음으로 노트북을 가방에 욱여넣고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선배는 무거운 노트북은 왜 가져왔느냐며 핀잔을 주지만, 그의 입가에도 제주도에 대한 설렘이 흠씬 묻어있음을 희미하게 올라간 입꼬리로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제주도.


여행을 왔을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공항 출구를 나오자마자 우뚝 서있는 야자수를 바라보며, 이곳이 제주도라는 것을 느낄 세도 없이 선배들을 따라 흡연장으로 끌려갔다. 그렇게 나의 첫 출장지였던 제주도의 향기는 담배냄새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뒤에 찾아올 달큰한 행복의 냄새를 맡기 위한 인고의 시간이었을 뿐.


당시 제주도는 내가 다니던 회사의 주요 판매 지역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복 없이 꾸준히 매출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관리를 받는 곳이었다. 내가 출장을 간 것도 그 '특별 관리'의 일환이었다. 당시 제주도에 판매된 제품 중 하나로 인해 구매처에서 민원을 제기하였고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 나를 포함한 6명의 본사 직원이 출근하자마자 납치되듯이 특파되었다. 구매처는 본인이 넣은 문제 제기로 서울에서 6명이나 온 것을 보고 흡족해하며 해당 민원에 대해 원만한 합의 의사를 밝혔다.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고 난 뒤 이제 드디어 제주도를 제대로 느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던 찰나, 제주도 지사의 직원분이 고생하셨다는 말씀과 함께 미리 예약한 곳이 있으니 그곳에 가서 밥부터 먼저 먹자는 축복의 경종을 울려주셨다. 그렇게 차를 타고 40 여분. 하루동안 겪었던 일들로 인해 비몽사몽 꿈결을 헤매던 중 차가 멈추고 파랗게 빛나는 간판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그 이름을 보자마자 이곳이 성지임을 단 번에 알았다. 


나는 '명물' 앞에 당도했다.


명물의 객주리 조림


제주도에서는 쥐치를 객주리라고 한다. 육지사람들은 익히 쥐치는 쥐포를 만들기 위한 생선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주도 사람들은 이 쥐치를 갈치보다 더 맛있는 생선으로 쳐준다. 특히 쥐치는 조림으로 했을 때 최고라고 말하는데, 쥐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살이 쫄깃하고 단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그 쫄깃한 식감과 단맛 덕분에 매콤 짭짤한 조림 양념과 곁들여졌을 때 입안과 뇌를 번갈아 때리는 무시무시한 맛이 느껴진다. 그 정석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명물의 객주리 조림이다.


명물의 객주리 조림 소자에는 객주리 4마리와 감자, 무, 대파가 정성스레 놓여 있다. 처음 이 조림을 마주했을 때, 생선조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선 구미가 당기는 음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객주리의 옆구리를 한 움큼 떼어내 양념을 묻혀 입으로 넣는 순간.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는데... 내가 아는 생선조림에서 이런 맛이 날 수 없는데...'


살코기의 쫄깃한 식감과 함께 양념의 짠맛, 단맛이 완벽히 어우러지면서 젓가락을 놓을 수 없는, 빠져나오지 못할 이세계로 들어와 버리고 말았다. 살코기만 맛있었다면 이 글은 아주 쉽게 마무리되었을 테지만, 당연하게도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객주리 옆으로 놓여 있는 대파와 감자, 무는 양념을 제 몸 안으로 흠씬 빨아들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매력을 배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따뜻한 흰밥 위에 양념 묻힌 객주리 살점과 대파 한점, 조금 떼어낸 무나 감자를 올려놓고 한 입 하는 순간. 


'아 행복하다. 이걸 먹으려고 내가 제주도에 왔구나'


이 감탄 어린 말을 연거푸 하고 나니 어느새 냄비와 밥그릇은 텅 비어버렸다. 맛있다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묘한 매력이 명물의 객주리 조림에 존재한다. 그 매력은 제주도라는 비일상적인 기후와 풍경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낯선 신비함 덕분에 배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음식 자체만으로 보아도 명물은 귀한 음식을 내는 아주 좋은 음식점임에는 틀림없다. 


문득 제주도가 가고 싶은 생각이 들때면 이 명물의 객주리 조림의 짠맛과 단맛이 혀에 맴돈다. 그 때 그 맛이 이랬었지 참 맛있었지라고 상상하며 제주도의 푸르른 숲과 맑은 바다가 동시에 떠오른다. 그 날 객주리 조림을 먹은 뒤부터 나에게 제주도는 그 조림의 맛을 계속 상기시키는 애착있는 장소가 되었다. 장소와 음식이 찰떡과 같이 붙어버린 아주 기묘한 인연이다. 다시 명물의 객주리 조림을 먹는 그 날을 기약하며 입맛을 맛있게 다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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