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 대회 말고도 별의별 황당한 달리기 대회가 많다. 그중 하나는 매년 영국 웨일즈 지역에서 열리는 ‘인간 vs 말’ 마라톤 대회다. 말을 탄 기수와 두발로 뛰는 러너들이 35km의 같은 코스를 달리며 경주하는데, 놀랍게도 2023년에는 역대 세 번째로 인간 참가자가 우승했다. 사실 이 대회는 보기보다 황당하지 않다. 우리 인간에게는 긴 거리를 잘 달리는 종족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생각만 해도 힘든 달리기를 심지어 말보다 잘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니.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생계를 위해서 매일 대중교통을 타고 출퇴근하는 대다수의 우리와는 다르게,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우리의 원시 조상은 생존을 위해 긴 거리를 뛰어다녀야 했다. 폭발적인 가속도로 달아나는 동물을 사냥하려면 동물이 지칠 때까지 계속 쫓아가야 했다. 결과적으로, 긴 거리를 잘 달리지 못했던 조상은 굶어 죽었고, 잘 달리던 이들은 살아남았고, 그 후예인 우리는 잘 달릴 수 있는 능력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달리기를 잘할 수 있는데, 그토록 하기 싫은 건 왜 그러한가? 매년 나이키 광고는 ‘Just Do It’(그냥 해봐) 이라고 외치지만, 4년째 달리는 나도 솔직히 Just Do It ‘Later’ (나중에 할래) 하고 싶을 때가 많다. 달리기가 힘들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소식이 있다. 달리기는 생각보다 쉽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어딘가로 달리는 건 필연적으로 어렵지만, 우리의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다. 지금 나는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는 표현을 관용어로 쓰지 않고 문자 그대로 쓰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 조상은 살기 위해서 잘 달려야 했다. 하지만 달리기에 재미를 붙여서 수시로 달릴 수는 없었다. 먹을게 풍족하지 않던 시절, 그렇게 재미로 달리면서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소모해버리면 사냥하는데 달릴 에너지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인간은 진화를 거듭할수록 달리기를 수시로 하고 싶은 무언가보다는,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하기 싫은 무언가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건 희소식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달리기를 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멘탈에 걸린 브레이크만 풀면 우리 생각보다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할 수 있는 능력을 어느 정도 가지고 태어났고, 적당히 단단한 멘탈로 그 능력에 시동을 걸 수 있는 건 알겠는데, 왜 하필이면 취미로 달리기인가? 타고난 능력을 꼽자면, 호모사피엔스인 우리는 큰 뇌 용량으로 무언가를 취미 삼아 배울 수도 있고, 재미로 글을 쓸 수도 있고, 손수 글을 쓰는 대신에 ‘해줘’라고 ChatGPT에게 명령할 수도 있고, 취미보다 더 재밌다는 각종 돈벌이 활동을 취미로 삼을 수도 있는데, 왜 여러 대안 취미 대신에 달리기를 하면 좋을까?
무언가를 취미 삼아 꾸준히 하려면 무엇보다 재밌어야 한다. 재미에도 종류가 많지만 나는 스스로 어떤 아웃풋을 생산 해내는 것만큼 재밌는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 말에 동의한다면, 자신 있게 달리기를 권한다. 내 경험상 달리기만큼 인풋 대비 아웃풋이 정직하게 나오는 취미도 없기 때문이다.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실력이 빠르게 는다는 말이다. 예컨대, 심폐지구력은 가장 빠르게 올라간다. 숨이차서 더 못 뛰는게 아니라, 다리가 아파서 더 못 뛰는 경험을 할 것이다. 다리 근육도 점진적으로 붙어서, 시야에 보이지도 않는 먼 곳까지 달릴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먼 곳까지 달려왔다고?'라고 느낄 때의 성취감은 말할 것도 없다. 달리기만 하면 별다른 외부 변수의 영향 없이 이 모든 경험을 아웃풋으로 체험할 수 있다.
쉽게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는 취미가 대세인 요즘 시대에 취미 달리기는 구닥다리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달리기는 생각보다 쉽고, 그 어느 취미보다 하면 할수록 쉬워진다. 그리고 내 생각에 달리는 사람의 삶은 풍요로울 여지가 많다. 인풋을 아웃풋으로 바꾸는 경험의 즐거움을 맛보고 체력까지 좋은 사람이 달리기만 하겠는가. 내 경험상, 그런 사람은 창의력을 요구하거나 타자와 부대껴야하는 복잡다단한 삶의 영역까지 적극적으로 달려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