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세입자 일기 (7)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굴착 공사가 확정된 서울역 인근의 쪽방촌. 공공 재개발, 미군 용산기지 평택 이전으로 남북을 넘어 유라시아 교통 허브로 변화할 것이란 화려한 광고판을 보면서 가슴이 뛴 건 불안함이었다.
벌써부터 축배를 올리는 지주들의 환호와 동네 맘카페에선 집값이 얼마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란 기대. 이곳에 뿌리내리고 살길 바랐지만 아이들이 학업을 다 마치는 동안 동네를 떠나지 않고 지킬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이들도 있다. 누군가는 가까운 직장을 두고도 먼 곳으로 이사해야 할 것이고.
제발 이번에는 개발이 잘돼서 집값 좀 올랐으면 좋겠다는 사람과 내 집 앞에 공공임대를 짓는 것을 결사반대하는 사람, 용산기지에 공원을 만들자는 사람과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집단 대립. 인터넷 커뮤니티 공간은 분쟁을 넘어 혐오와 조롱의 집단 광기가 서린듯해 소름이 돋았다.
나는 양쪽에 다 속하는 사람이었다. 서울 세입자 생활 14년 동안 운이 좋아 작은 규모지만 일찍 투자에 뛰어들 수 있었고, 처음 집주인은 6년을 사는 동안 내내 전세금을 한 번도 올리지 않았다.
두 번째 집주인과는 분쟁이 있었다. 주택임대사업자여서 재계약 때 전세금을 5% 이하인 900만 원만 올릴 수 있었는데, 당시엔 역전세난으로 전셋값이 폭락하던 시기였다. 하루 만에 수천만 원이 오르내리는 부동산 거래시장에서 900만 원이라는 금액이 평범해 보이긴 해도 월급을 받는 회사원에게는 한 번에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돈이다. 하지만 임대인은 ‘용산’이기에 시세가 내려도 이만큼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 집주인도 주택임대사업자였다. 10년 동안 재계약 시 임대료 인상률이 5% 이하로 제한됐고 사실상 우리 가족은 공공임대에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주변 지인들을 보면 재계약 한 번에 전세금을 1억 원, 2억 원씩 올리는 게 흔했다. 대부분은 재계약을 포기하고 이사했다. 직장과 한 시간 거리의 수도권 외곽으로 밀려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아이 어린이집이나 학교를 옮기는 것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2020년 7월 개정 즉시 시행되며 사업자가 아닌 임대인도 임대차 재계약 시 임대료 인상률이 5%로 제한됐다. 역사적인 변화지만 임대료 규제가 재계약 한 번으로 제한되는 것은 여전히 한계일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재계약 시점이 오면 집주인이 계약을 거절하고 새 세입자를 구하거나 아니면 임대료를 폭등 수준으로 올리는 것이 법으로 허용되기 때문이다.
국내에 무주택자가 절반에 가깝지만 반대로 절반 이상은 집이 있다. 소수의 다주택자는 주택 임대를 생계수단이나 사업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임대인의 재산권 침해'를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입자의 재산권 침해를 논하는 사람은 없다. 버젓이 법이 있는데도 5% 룰을 지키지 않는 임대료 인상 요구도 벌어지는 것이 여러 차례 사실로 드러났는데도 말이다.
나는 임대인으로서 두 번의 임대차 재계약을 체결했다. 두 번 다 도심의 역세권 신축 빌라였기 때문에 초기 계약기간 2년 동안 임대료 상승률이 높았다. 당시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기 전이고 나는 사업자가 아니었지만 사업자 규정을 준수해 전세금을 5%만 올렸다. 이마저도 세입자에게 통보가 아닌 사전 동의를 구했다.
다른 한 번은 세입자에게 먼저 연락이 와 재계약을 원하지만 보증금을 깎아줄 수 있느냐고 했다. 사업적으로 자금난이 생겨서 목돈이 필요한데 재계약이 안되면 이사를 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때 모아둔 돈이 없었지만 보증금은 어차피 갚아야 할 빚이기에 신용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일부 상환했다. 새로 세입자를 구하는 과정이나 비용 지출보다 이득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세입자는 내 가족에게 돈을 벌게 해주는 자산이기도 하지만 한 동네에 사는 이웃이고 나 역시 세입자 신분이므로 법 규정을 떠나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계약을 하겠다는 생각이 잘못된 걸까. 세상은 이런 나를 ‘호구’라며 비웃는 듯했다.
쪽방촌의 건물주는 사회악이다. 보증금 500만 원이 없는 사회 최하위 계층의 빈곤을 이용한 비즈니스. 화장실과 수도 가스, 주거를 위한 기본 인프라가 없는 비정상 한 평짜리 방을 월세 30만 원에 임대하는 이들의 장사를 어떻게 경제활동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면적당 임대료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쪽방촌은 강남보다 비싼 임대촌이다.
이곳을 공공개발해 화장실이 있고 임대료도 합리적인 공공임대주택을 만들겠다고 하는 정부에 "서민의 내 집 마련 꿈을 빼앗는다"며 동네 건물마다 대형 현수막을 걸어놓는 이들이 어떻게 우리의 이웃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