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세입자 일기 (6)
아이 둘을 키우면서 5년 사이 벌써 세 번째 이사를 했다. 전셋집을 구하러 다닌 세 번 동안 가장 먼저 따졌던 조건은 이 집에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느냐는 문제였다.
집은 좁아도 되지만 신축이어야 하고, 가까운 곳에 놀이터와 어린이집이 있어야 하고, 두 아이를 케어하려면 회사에서 너무 멀어도 안됐다. 하지만 이 모든 조건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이주 리스크였다.
몇 년 후면 아이들이 등·하교를 하게 될 텐데 예측 불가능한 이사는 단지 귀찮거나 불편한 것, 비용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 세대와는 다르게 요즘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집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아이를 전학시키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학급이 소수로 운영되다 보니 새 학교에 적응하는 과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동네는 올해 초등학교 입학생이 서른 명 남짓에 불과했다. 한 반 학우가 스무 명도 안됐다.
국민 절반이 무주택자인 한국에서 전세금이나 임대료 폭등이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만은 아닌 이유다. 한 번에 수억 원의 보증금을 마련할 수 없는 경우 부모들은 아이를 전학시키지 않기 위해 더 좁거나 낡은 집으로, 아파트에서 빌라로, 많은 월세를 내는 선택으로 내몰리게 된다.
2020년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임대차2법)이 시행돼 임대차 보호기간이 2년에서 4년으로 늘어났지만 여전히 많은 세입자가 주거불안에 시달리는 원인은 자녀의 학령기와도 관련이 있다.
물론 집주인의 재산권이나 주거권 역시 보호받아야 하기에 실거주가 목적인 경우 임대차 재계약 의무가 예외 적용된다. 문제는 실거주 예외 조항이 세입자를 내쫓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밖에 없는 제도적인 허점과 이런 일부 사례가 집주인-세입자 사이의 불신과 혐오를 조장하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세입자를 합법적으로 쫓아내는 방법'과 같은 글이 공유되는 것을 보면 내가 집주인인 동시에 세입자임에도 자존감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집을 알아보던 당시에 공인중개사에게 가장 먼저 한 질문은 "집주인이 실거주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현재 임대차 계약을 맺고 있는 집주인은 인근 동네에 임대주택을 서른 채 정도 소유한 주택임대사업자였다. 실거주 가능성이 없을 뿐 아니라 장기임대 의무가 있어서 우리 가족이 원하면 10년 동안 이주 리스크가 없는 실질적인 공공임대다.
임대차2법이 이전보다 세입자 권리 보호에 긍정적인 기능을 하고 있지만 공공임대와 가장 큰 차이점은 임대료가 언제든 폭등할 수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4년 동안 임대료 규제를 받지만 이후엔 하루아침에 수억 원의 보증금 인상을 요구받을 수 있다. 세입자는 빚을 내든 더 나쁜 조건의 집으로 이사든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주택임대사업자가 임대하는 주택의 경우에 종합부동산세 감면 등 세제혜택을 받는 대신 공공임대와 유사한 장기임대, 임대료 제한 등 보호 기능이 있다. 내 가족은 앞으로 10년 동안은 자산 증식의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집을 사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된 것이다.
"세상 정말 많이 좋아졌다."
시어머니는 남편이 지금 우리 아이 나이일 때 서울에서 월세방에 사셨는데 임대차 보호기간이 3개월이었다고 한다. 세상에. 임대차 보호기간이 3개월이라니. 이삿짐 정리만 6개월이 걸리는 건 나뿐인가. 하지만 그 짧은 시간마저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 세입자의 아들과 집주인의 아들이 다퉜다는 이유였다.
30여 년 전과 비교하면 사회는 당연히 진보했고 경제적 약자에 대한 보호가 강화됐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발전해야 하는 이유는 주거권 보호가 맞벌이 부모의 경제활동뿐 아니라 자녀 교육의 안정, 나아가 사회 시스템을 유지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복지 제도기 때문이다. 집을 사는 사람이든 빌리는 사람이든 저마다의 사정과 이유가 있지만 주거생활을 보호받을 권리는 평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