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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향 Sep 08. 2021

임대차3법(3) : 정부가 월세를 정한다?

서울 세입자 일기 (8)

  아주 가까운 친척인 A는 공기업 간부로 직장생활을 하다가 은퇴 후 지금은 한 지방광역시에서 다가구주택을 임대하며 생활하고 있다.

  건물 한 채에 원룸과 투룸 10개 정도가 있고 가구가 한 달에 내는 월세가 대략 50만 원 안팎이다. 한 달 임대소득이 500만 원이니까 연간 6000만 원이 되고 여기에서 건물을 살 때 받은 대출이자와 각종 세금 등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은 2000만 원이 안된다고 했다. 한 달 동안 손에 쥘 수 있는 순수익은 100만 원을 조금 넘는 수준. 연금을 합해도 부부 두 사람이 풍족하게 생활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A는 정부의 임대차3법을 악법이라고 했다. 수요-공급의 시장경제에 의해 가격이 형성되지 못하도록 강제 규제를 하는 전·월세 신고제에 대해 가장 문제가 많다고 했다. 해당 제도는 2021년 6월에 시행됐다.



  "전·월세 가격을 공개하는 이유가 소비자의 알 권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부가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사실은 우리 같은 은퇴자들의 노후 소득이 대부분 부동산 임대소득에서 발생하는데 세금을 왕창 뜯어내려는 속셈이다."



  기자의 시각으로 볼 때 그의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공기업을 정년퇴직했고 서울과 지방에 다가구주택 말고도 아파트가 두 채 더 있는 A는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때 최소 중산층 이상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소득이 발생하는 곳에 마땅히 부과해야 할 세금을 낼 수 없을 만큼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진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가족으로서 가까이 속사정을 보게 되면 그가 돈 때문에 늘 여유만 있는 건 아닌 은퇴자임을 부정할 수도 없다.

  평균수명은 점점 늘어나고, 자녀 세대의 경제능력은 하락하고, 더 많은 미래 비용을 준비해야 하는 '불안의 시대'를 살고 있는 대부분의 평범한 이들의 문제가 아닐까.



  단돈 만 원짜리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인터넷 검색 한 번이면 가격 정보와 적정 가격을 알 수 있는 세상이다. 가격 경쟁력을 비교해 합리적 선택을 하는 것이 소비자의 권리겠지만 부동산이라는 재화의 특성상 적정 가격이라고 인식하는 기준이 거래자의 각자 사정에 따라 다르다는 문제가 있다.

  수요자와 공급자의 이해관계에 의해 가격이 형성되고 이는 소위 '호가' 형성을 가능하게 만든다. 경기 호황과 불황에 따라 수억에서 수십억까지 가격이 변동해, 이는 누군가에겐 전재산보다 큰 금액이 될 수 있다.

  무주택자 입장에선 선택의 권리마저 박탈당하는, 재테크나 부의 증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살기 위해 폭력적인 부동산 가격에 이끌려갈 수밖에 없는 문제는 비단 시장경제의 논리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2년 새 전셋값 인상분이 연봉의 몇 배나 오르는 상황을 못 견디는 세입자가 도심의 외곽으로, 더 좁은 집으로, 낡은 집으로 밀려나는 것을 국가가 통제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독일 등 유럽 국가에서 국민 투표를 통해 ‘토지 공개념’응 도입한 것은 이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세입자 신분이기도 하고 집주인 신분이기도 한 나는 전·월세 신고제가 꼭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네이버부동산이나 직방 같이 다양한 플랫폼의 등장과 경쟁으로 소비자의 정보 습득 능력이 향상된 것은 사실이나, 이 또한 정확하고 완벽한 정보로서의 기능을 한다고 볼 수는 없다.

  임대인이 세입자로부터 받은 보증금은 자산이 아닌 부채이므로 전세제도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사실상 경제 뇌관을 안고 있는 무이자 사금융 시장인 셈이다.



  전세금만 수십억에서 수천억 원을 굴리는 자산가나 갭투자(매매가-전세가 차액만 내고 집을 매수)를 하는 경우엔 채무상환능력을 검증할 수 없는 규제의 사각지대가 너무나도 많다.

  비단 소형 공동주택이어서 발생하는 문제는 아니다. 한국의 부동산 공산품으로 불리는 브랜드 아파트의 경우는 어떨까.

  과거 삼성 에버랜드 공시지가 조작 사건을 폭로한 감정평가사 J는 대형 법인과 시중은행을 그만둔 이유에 대해 "특정 자산가나 기업의 이해 득실을 위해서 누군가에겐 생계 문제인 부동산 가격을 마치 시장에서 콩나물 가격 흥정하듯 평가서 작성을 요구당하던 관행에 넌덜머리가 났다"고 표현했다.

  물론 부동산 가격을 통제하고 정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법 또한 자본주의 시대에 완벽한 제도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인이 투기판을 만들어놓은 자본주의의 끝판왕 뉴욕과 홍콩의 임대료가 어떻게 됐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미래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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