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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향 Nov 13. 2019

평범하던 우리가 부동산에 미친 이유

서울 세입자 일기 (10)

  "모 부처 고위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를 고발합니다."


  이메일 제보를 받았다. 부동산 취재를 담당하면서 많은 종류의 제보를 받지만 그중 기사화할 수 있는 내용은 몇 개가 되지 않는다. 사익을 노리는 의도이거나 원한관계에 의한 폭로, 음해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문제는 근거가 부족하다. 제보의 이유가 어떻든 사실관계가 맞다면 보도 가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불법이거나 공직 윤리 등을 위반하는 사안이 아닌데도 제보 측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보도를 강요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험이 있는 기자는 일반인의 제보를 소위 믿고 거른다. 그럼에도 모든 제보에 당연히 관심을 갖고 확인하는 것이 기자의 의무이자 독자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다.


  해당 제보자와 만나기로 한 장소는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다. 편도 택시비가 3만 원 넘게 나오는 경기도 외곽에서 약속장소를 찾다가 이미 짜증이 날대로 난 상태였다. 택시 기사도 못 찾는 카페를 헤매고 헤매 어렵게 갔다.


  제보인 A는 나보다 나이가 아홉 살이나 어린 젊은 엄마였다. 큰아이가 내 둘째 아이와 동갑이고 뱃속에는 14주 된 둘째를 임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동질감과 연민을 느꼈다. 무거운 몸으로 어린 자녀를 키우느라 지치고 정신없을 여인이 무슨 사연으로 고발 사건에 연루되어 소송이라는 짐을 짊어지게 됐을까.


  그녀는 2년 전 서울의 한 아파트 분양권에 당첨됐다. 무주택자 신혼부부에 자녀가 있어서 당첨 혜택을 받았을 것이다. 전매제한 기한이 풀리기 전 A는 분양권을 팔았다. 불법전매를 한 것이다. 프리미엄을 1000만 원이나 받았고 6개월 새 아파트 분양권은 5억 원 이상 올라 거래됐다.


  A는 이성을 잃었다. 5억 원을 받을 수 있는 아파트 분양권을 5000만 원도 아니고 겨우 1000만 원에 헐값만 받고 팔았으니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했을 것이다. 부부싸움도 했을 수 있다. 5억 원이면 젊은 직장인 부부가 몇 년을 일해야 모을 수 있는 금액이란 말인가. 계약 파기를 요구했지만 상대는 위약금 1억5000만 원을 요구했고 민사 소송마저 제기했다. 상대는 정부부처 중에서도 가장 권력이 있는 기관의 고위공무원이었다.


  정부가 고위공무원의 주택 투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시국에 불법전매를 했다는 사실이 A에게 약점으로 붙잡혔다. 뒷조사를 하자 그는 부동산 세금을 감면받기 위해 주택임대사업자 등록도 한 다주택자였다. 공무원은 특정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주택 임대사업이 금지돼 있다. 업무 연관이 없다고 인정되거나 직접 거주하는 다가구주택 등에 한해서만 허용된다.

  A는 공무원이 투기 목적으로 아파트 분양권을 불법 매매한 것은 공직 윤리에 반한다는 내용의 투서를 정부와 지자체에 뿌렸다. 그는 내부 감찰을 받았다.


  하지만 현행법은 불법전매라도 분양권을 매수한 사람이 아닌 매도자만 처벌한다. 매수인은 내 집 마련 등 선량한 목적으로 분양권을 매수할 수 있다고 배려하는 것이다. 매도인은 분양 당시 전매제한 기한을 인지하고 청약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한다.

  A는 자신이 전매제한 기한을 지켰고 불법전매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취재 결과 계약서를 쓰지 않았고 계약금도 송금이 아닌 현금으로 받았다. 계좌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다.

  심지어 법정에선 현금으로 받은 계약금마저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겠다는 계획까지 변호사와 짜고 있었다. 불법전매로 벌어진 거래의 소유권을 놓고 민사소송이 가능하다는 사실조차 충격이었다.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보다 오로지 5억 원에 눈이 멀어 변호사를 선임하고 힘든 소송을 벌이는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어려서 사회 경험이 부족했어요. 부동산도 잘 몰랐고요. 제보한 이유는 제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에요. 저희 가족의 소중한 첫 집을 비리 공무원에게 팔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건 사회 정의에 반하는 일이잖아요?"


  불법거래를 하고 법정에서 허위 진술을 도모하는 그녀가 사회 정의를 말하는 것에 헛웃음이 났다. 자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가르치기 위해, 불편하지만 성실히 법과 윤리를 지키며 이토록 힘겨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부모의 책임임을 훗날 그녀는 깨닫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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