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뚱뚱하고 못 생겼던 동창이 눈부신 미인이 되어 동창회에 나올 때가 있다. 성형수술도 하고 살도 빼고 잘 꾸미고 나오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이럴 때 지렁이가 용 되었다고 하나?
이런 경우는 어떨까? 한 남자 동창생이 겪은 실화다. 그 친구가 하루는 30대 시절 길을 가다가 한 예쁜 아가씨가 자길 보고 아는 척을 하더란다. 모르는 여자가 아는 척을 하니, 술집에서 봤나? 꽃뱀인가? 했는데, 왠지 낯이 익었다. 누구시냐고 하니까 그 여자가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아. 나야 나. ** 우리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잖아." 목소릴 들으니 겨우 기억이 났다.
그런데, 그런데, 이상하다. 그땐 분명 남자였는데. 친구 하는 말이 군대 갔다 와서 수술을 했다고. 이제 그 친구를 여자 동창이라고 해야 하나 남자 동창이라고 해야 하나. 이 경우엔 용이 아니라 환골탈태라고 하나?
아이들은 야채를 싫어한다. 최근 건강을 위해 식이요법을 하면서 그 심정을 백번 이해하게 되었다. 불친절한 식감부터가.풋내도 비호감이다. 맛이 있는 음식의 특징은 혀끝에 달콤하거나 고소함이 느껴져야 한다. 식감으론 적어도 바삭하거나 쫀득하거나 해야 하는데, 야채는 해당 사항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야채 중에서도 진상 오브 더 진상인 야채가 있다면 뭘까? 내 생각엔 가지다. 컬러부터가 침샘을 말려주는 보랏빛(당근은 오렌지빛이라 적어도 눈으론 식욕을 돋운다.)인 야채. 보랏빛은 옷이나 필통으로는 몰라도 음식 컬러로는 너무 우아한 색이다. 게다가 외모도 과하다. 졸부가 머리에 듬뿍 바른 포마드처럼 번들거리는 광에다 배부터 불러오는 뭉툭한 몸통이. 식감도 최악이다. 가지 속살은 더더군다나 부드럽지도, 쫄깃하지도 않은 그저 퍽퍽한 스펀지 같다. 맛은 어떤가. 달지도 고소하지도 새콤하지도 않다. 풀 비린내가 나고 내 맛도 니맛도 없다.
그나마 요리가 맛이 있으면 용서가 된다. 요리로 나오는 가지는 점입가경이었다. 삶은 가지를 길이대로 죽죽 찢어서 갖은양념에 조물조물 무쳐낸 가지무침, 밀가루를 묻혀 쪄낸 후 양념한 찐가지 무침, 아니면 썰어서 프라이팬에 볶다가 양념을 한 가지 볶음. 먹어보면 하나같이 물컹한 질감에 양념 맛일 뿐이었다. 반찬으론 영 구미가 당기지 않는 가지. 보라 색소에는 안토시아닌이 들어있다지? 이름부터가 벌써 맛이 없게 생겼다.(사람 이름 같기도 하고)
적어도 어린 시절 내게 가지는 그런 존재였다. 그런데 가지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국 상해에 살 때 가지의 다른 면을 알게 된 것이다. 중국요리는 요리법이 우리나라와 다르다. 우리나라는 원재료 맛보다는 양념 맛으로 먹는 반면 중국에선 재료의 특성을 잘 살린다. 특히 가지 요리가 일품이었다. 그중에서 동북 요리인 가지김치에 매료되었다. 오이소박이처럼 부추를 소로 넣은 건데 가지 속살이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지삼선이라는 요리는 특별히 맛이 있었다. 이 요리도 동북 요리인데 가지와 피망, 감자를 굴소스에 버무린 것이다. 최근 먹고 싶어 인터넷을 뒤져 만들어 보았다. 여기서 가지 조리법을 새로 알게 되었다. 그전에 내가 알던 가지 조리법이 아니었다. 즉 가지를 찌거나 삶는 게 아니라 전분을 입혀서 기름에 튀기는 것이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살살 녹는 궁극의, '겉바속촉'이 가지에서 정점을 찍을 줄이야.
그동안 몰라봐서 미안하다. 가지가 이토록 고급지고 친절하고 부드럽고 호감 가는 재료였다니. 그 전의 조리법은 한마디로 가지를 가장 못 생기고 맛없게 만든 것이다. 원래 그런 대접을 받을 아이가 아니었다. '재료'가 문제가 아니라 '조리법'이 문제였다.
가지의 재발견 이후 장 볼 때마다 가지를 빼놓지 않는다. 전엔 음식이 아니라 보라색 몽둥이 정도로 바라보던 가지다. 가장 어울리는 재료와 함께 가장 맛있는 조리법을 알아내어 딱 그 요리를 하면, 가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야채가 되는 것이다.
여기저 진실은 가지가 갑자기 맛있어진 게 아니라는 거다. 가지는 늘 똑같았다. 가지를 다루는 내가 달라진 것일 뿐. 가지에 대해 알게 되고 그에 맞는 요리를 익히고 실제로 실행한 것, 물론 나이가 들어 입맛이 바뀌기도 했고.
여기서 가지를 확대해 볼까.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늘 똑같다. 그런데 한 때 내가 형편없는 아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겼나,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나, 나는 왜 능력이 없나, 나는 왜 운이 없나, 나는, 나는, 나는...
이제 조금 알겠다. 나에 대해 잘 알아내고, 나에게 맞는 옷을 입고, 나에게 맞는 직업을 갖고, 나에게 잘 맞는 친구를 곁에 두고, 내 몸에 가장 좋은 음식을 먹으면, 나도 눈부시게 빛날 수 있다고. 그 전엔 나의 진짜 가치를 몰랐던 것뿐이라고.
아직도 내가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고? 야채계의 왕따인 가지도 조리법에 따라 이렇게 달라지는데? 겸손도 유분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