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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Oct 03. 2022

딱 너만큼만 딱딱이복숭아

후숙한다고 꼭 달아지진 않는다

 우리나라 과일 중 가장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대답할 것이다. 딱딱이복숭아라고. 그냥 복숭아가 아니다. 딱, 딱딱이복숭아여야만 한다. 다른 과일들은 대부분 극단적이다. 달거나 싱겁거나. 또 대체로 과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신맛, 단맛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과일은 달거나 시지 않다.


 이 과일에 감탄하는 이유는 그 달거나 시기가 어쩜 그렇게 알맞을까 하는 점이다. 귤이 싱거우면 화가 난다. 귤은 당연히 시거나 달아야 한다 하는 선입견 때문이다. 수박도 그렇다. 아니 제일 그렇다. 수박은 여러모로 수고가 많이 드는 과일이다. 부피와 무게 때문이다. 무거운 수박 한 통을 사 오려면 대단한 결심을 해야 한다. 그래서 배달을 시키곤 한다.


 배달이 드물었던 예전 시절 수박을 살 때 하던 행위가 있었다. 돈을 내기 전에 삼각형 모양을 내서 따 보는 것이다. 그 삼각형이 빨간색이면 사고 하얀색에 가까우면 안 샀다. 맛없는 과일을 먹게 되는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가상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과일인 사과, 바나나, 배, 감도 마찬가지다. 모두 단맛이 담보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복숭아는 다르다. 그리 만만한 과일에 들지 못한다. 나오는 기간이 짧고 보관이 까다로워서일까. 황도나 백도는 무른 탓에 사기 전 만져보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다른 과일에 비해 멍도 잘 들고 벌레도 많이 꼬인다.


 복숭아가 그나마 딱딱한 시기가 있다. 대략 5, 6월경 봄과 여름 중간쯤이다. 이 시기엔 가장 딱딱하고 맛있는 복숭아가 나온다. 아쉽게도 딱 한두 달이다. 조금 앞서면 단맛이 너무 약하다. 조금 뒤서면 조금 더 달긴 하지만 너무 물러져 있다.


 내가 가는 단골 과일집 사장님은 조금 늦게 나오는 복숭아를 중딱이라고 부르신다. 이 중딱이는 나의 간택에서 멀어진다. 나는 가장 딱딱한 시기, 즉 약 6월 정도에 나오는 딱딱이복숭아만 사랑한다. 1년 중 이 시기를 기다렸다가 박스채 구입해서 먹는다.

 

 이 복숭아는 내가 느끼기에 약간 달고 약간 짜고 약간 시다. 그리고 단단하고 아삭아삭하다. 결코 물렁하지 않으며 결단력 있는 맛이 난다. 그리고 물렁한 나에게 말하는 듯하다. 세상 그렇게 만만하게 살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너무 속을 보이면 안 된다고. 어른들의 세계만 그런 게 아니다. 어린이집에 근무하는 지인이 하는 말이 있다. 겨우 두세 살 된 아기들도 사람을 봐가면서 말을 듣는다는 것이다. 귀엽다고 잘해주면 말을 안 듣고 무섭게 하면 잘 듣는다고. 자신의 순수했던 마음이 아기들에게서 큰 상처를 입는다는 것이다.


 각종 일로 상처를 받을 때, 그럼 나더러 어쩌라고. 하며 소리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땐 이 복숭아를 한 입 깨어물고 깨닫는다. '그래. 이 정도가 딱이야. 베어 물면 적당히 즙이 흘러. 물처럼 너무 흘러넘치지도 않고 안으로 숨는 야박함도 없지. 그냥 딱 이 정도가 좋은 거 같아. 너무 흐르면 옷이고 얼굴이고 범벅이 되잖아. 달기도 그래. 너무 달면 머리가 띵하니 아픈 것 같아. 이 정도 달면 몇 개 더 먹고 싶어질 정도지. 단단하기도 그래. 너무 물컹하면 심심하지. 너무 딱딱해도 이가 아파. 이건 딱 좋은걸. 식감이 아주 그만이잖아. 아삭아삭 서걱서걱 이 사이에서 씹히는 소리가 경쾌하기까지 하니까.'


 다 큰  어른이 되도록 어린아이 같은 심정을 붙들고 살았다. 성경에 나오는 말씀을 붙잡기도 했다. 천국은 어린아이 같이 순수한 사람이 갈 수 있다나. 또 피터팬 신드롬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네버 네버랜드에서 난, 결코 네버 네버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


 내 직장이 어린이들과 함께라서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그렇다. 나는 내가 만든 시나리오안에서 살았다. 어린아이 같이 순수하고 철없어서 좋았다. 어른은 어른 다움을 가져야 하는데. 게다가 지금 나는 이제 '그냥' 어른이 아니라 '늙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그 시간 간극을 두 배속으로 달려서 따라잡아야 한다. 그런데 너무 자책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주변에 보면 진짜 어른이 많지는 않은 것 같으니.


 얼마 전 목격한 일이다. 위아래 층 살면서 층간 소음 문제로 다툼을 벌이는 이웃을 보았다. 나이가 지긋한 부인들은 서로 자기주장만 펼치고 있었다. 한 부인이 소음문제로 위층 자식을 흉보았다. 그러자 위층 부인이 죄송하다면서 K대생인데 공부밖에 몰라서 그런다나. 그러자 아래층 부인은 지나가는 사람이 들으라는 식으로 크게 말했다. "우리 딸은 S대학 다녀요."


 이렇게 논리적이지 않은 대화를 하곤 하는 게 어른의 세계라니.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은 아닐 것이다. 적당히 단단하고 적당히 인자한 내면이 필요한데. 또 절제력이 돋보이는 화술과 자신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자존감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서 딱딱이복숭아의 위엄이 필요한 것인가. 그런데 우린 때때로 그 반대로 한다.


 별것 아닌 것 가지고도 분노하고 남의 말에 쉽게 상처받으며, 그 안에는 인자함이 텅 비어있다. 또 무분별한 수다와 독설을 내뿜고, 자존감이 형편없이 약한 존재들. 어른들은 어쩌면 이 안에서 적당히 무르익기를 바라면서 시간만 의지하는 존재들이 아닐까. 맛없는 딱딱이복숭아가 후숙을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인생은 생각보다 너무 빨리 지나간다.


 얼마 전 딱딱이복숭아를 지금까지 파는 걸 보았다. 반가운 마음에 사 왔는데 영 맛이 없다. 싱겁고 무르기만 할 뿐, 단맛이 생기지는 않고 아삭함만 잃어버린 복숭아, 내게 이런 노년이 다가오는 건 아닌지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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