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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클레어 Dec 18. 2021

수학은 언어다

수포자의 수학 극복기


내게 수학이 굉장히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은 수학을 극복하게 해 준 귀한 은사님, 곧 수학 고수님을 만나게 되어서였다.


사업과 투자를 공부하다 보면 사업가들이나 투자자들이 "숫자는 언어다"라는 표현을 주로 쓰는데 이를 보다 보니 문득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도 기억나는 <숨마쿰라우데> 수학 기본서의 첫 장. 거기에는 "수학은 언어다"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었다. 


당시 "수포자"였던 나는 "좋은 말이네. 그런데 무슨 소리인지 이해는 안 된다...."라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저 사업가들이나 투자자들의 표현에 "숫자는 언어. 무슨 의미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계속 공부하겠습니다"라는 댓글을 봤는데 그때의 내 모습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졌다.


지금의 나는 개인적으로 정말 공감하는 말이다. 부친께서 내게 수학을 가르쳐주었을 때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수학은 '약속'이다"라는 말이었는데, 비슷한 말인데도 그것보다 더 직관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약속이요? 왜요, 굳이 무슨 필요가 있어서 그런 '수학적 개념'을 '정의'하기로 약속한 거예요?? 대체 누가 누구랑???"라고 되물으며 혼란에 빠졌다. 그 이후로 그 말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지만 그 어떤 좋은 선생님이나 강사님에게 배워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에 대한 해답은 은사님이던 수학 고수님께서 깨닫게 해 주셨다.


"책 읽는 거 좋아하지?"

"네."

"글도 많이 읽고 쓰나?"

"글 읽는 거 좋아하고 글쓰기는 취미일 정도죠."

"언어는 잘하나?"

"수학보다.... 는요?"

"그럼 수학을 접근하는 방법만 알면 수학도 잘할 수 있어."

"??.... 수학이랑 언어랑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건가요?"

"아주 있지. 자 생각해보자. 이 '세상'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하지?"

"말로 하거나, 글을 쓰겠죠? 언어를 사용하네요."




"좋아. 그런데 말이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는 게 좋을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표현'요?"

"'문제'가 핵심이다. '문제'를 문장으로 구구절절 풀어야 할까? 답을 도출해내는 데까지 모든 표현을 줄글로 쓰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릴 거 같지 않니?"

"아..... 아!!!"

"그래, 그게 '수(숫자)와 수식'이고 이것을 다루는 학문이 '수학'이란다. 다시 말해 숫자와 수식도 '언어적 표현'의 한 방식이란다. 그래서 수학 또한 일종의 외국어 같은 '언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 그리고 수학의 다양한 개념들을 그런 언어적 도구로 쓰자고 우리 인간들은 서로 약속을 했단다. "


나는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수학 문제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봤다. 내가 진짜로 초등학생 때부터 제일 못하던 단원이 당시 교육과정 기준으로 마지막 8단원 "문제 푸는 방법 찾기"였나 그랬는데 아마 그것을 기억하는 이 글을 읽고 계신 "수포자"분들은 공감하실 것이다. 그 단원이 대량의 수포자들을 양산해내는 주범이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의 경우에서는 모든 단원의 마지막에 꼭 실생활 응용문제로 끼어있는 그것 말이다. 이 응용문제들에 대해서 나는 너무도 공포를 느꼈다. 


도대체 이놈의 소금과 물은 비율을 따져가며 왜 자꾸 넣다 뺐다 섞어야 하는 것이며, 

돈을 달마다 넣어 복리 계산을 해서 연금으로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가 학생이던 당장의 내게 무슨 의미가 있던 것이며, 

왜 누가 자꾸 달력을 찢어 버려서 날짜와 요일을 직접 계산해야 하는 것이고, 

열차와 달리기 시합은 왜 해야 하는 것이며, 

영희와 철수는 왜 항상 초속을 달리해서 운동장을 반대로 돌다가 만나야 하는 것인가! 


그런데 이 실생활 문제라면서 상당히 극단적인 상황을 묘사했던 이 문제들이 결국 묻고 싶었던 것은 "그래서 당신은 현실세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래?" 였던 것이다.




수학 문제를 풀 때 해설지의 풀이 방안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듣는다. 당시에 나는 너무 이해가 안 갔다. 결국에는 답은 똑같이 나오는데 어째서 사람마다 풀이과정이 다른 걸까?


그런데 수학이 현실세계의 문제를 푸는 하나의 언어적 도구라면 풀이과정이 다른 것이 당연한 것이다. 설령 문제에 대한 단 하나의 답이 있다 하더라도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데 모든 사람의 접근 방법이 다르고 푸는 방법이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은사님에게 얻은 "숫자와 수식은 언어. 수학도 언어라고 하기로 약속했다."라는 깨달음은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도 180도 달라지게 만들었다. 


우리는 수학 얘기를 하면 꼭 이런 말을 한다.

"수학이 대체 실생활에 무슨 쓸모가 있어요?!!! " 


물론 이건 다 실생활 문제라면서 전혀 엉뚱한 상황으로 응용문제를 만든 탓이 큰 것 같다. 그러면 대안으로 그런 말이 나온다.


"수학은 실생활에 도움은 안되는데 산술 계산과 숫자는 꽤 쓸모가 있어." 



그러나 사실 수학은 우리의 현실 세계와 굉장히 밀접한 학문이 맞다. 수학에서 쓰이는 여러 가지 수학적 개념은 거칠게 말하자면 각자의 상황에서 적절하게 쓸 수 있는 '문제 해결 도구'이다. 현실세계의 복잡한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는데 최전선에 나서는 직종의 사람들이 어느 수준까지의 수학을 하는지 보면 알 수 있다. 우리가 수학이 실생활에서 쓸모없다고 느끼는 까닭은 솔직히 까고 말하자면 우리가 '현실세계 문제 해결사'의 위치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동안 부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살펴보면 "현실세계 문제 해결사"인 사람들에게로 돈이 흘러간다. 대다수의 부자들이 수학자만큼은 수학을 하지 못하더라도 그래도 '숫자'를 보는 안목이 남다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학은 포기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적어도 "숫자와 수식"으로 현실 세계를 단순-추상화해서 바라보는 것은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의 모든 것을 수와 수식으로 바라보면 색다른 통찰력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



피타고라스는 이렇게 말했다. "만물은 수로 이루어져 있다"라고. 물론 그는 '무리수'를 인정하지 못해 히파수스를 살해하는 무리수를 저질렀지만 그건 그의 세계관이 완벽한 질서에 얽매여 있어서 그런 것이었다.


이 세상이 질서-무질서, 유한-무한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오늘날의 우리들은 고등수학의 발달로 무한까지 커버할 수 있는 수학적 도구들을 통해 실세계와 여기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충분히 수와 수식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를 수와 식으로 단순화하여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 적절한 해결방안을 빠르게 도출하는데 용이하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피타고라스의 저 말은 수학을 대하는 우리들의 마음에 여전히 울림을 준다.


다시 한번 써본다.

"숫자와 식은 표현 도구이고 수학은 하나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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