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포자의 수학 극복기
이야기를 진행하기에 앞서 고수님을 만나기 훨씬 전 오래 전의 기억을 먼저 꺼내야 할 것 같다.
중고등학생이었던 시절의 내게 3명의 수학 은사님들이 있었다. 당시 나는 소수정예로 운영되는 수학학원에 다녔는데 학원 입학시험에서 문제 풀다가 반포기 상태로 엎드려 자면서 시험을 끝냈다.
포기하면서 본 시험인데 결과는 놀랍게도 매우 매우 어중간한 점수.
이게 높은 반에 들어갈 점수는 아닌데 그렇다고 낮은 반에 갈 점수는 더욱 아닌 매우 난감한 상황.
결국 면담을 통해 내 의지를 확인하셨다.
“그 점수가 높은 반에 갈 성적은 아니지만 낮은 반에 넣기도 되게 애매하단다. 낮은 반 가는 것보다 그래도 높은 반 들어가서 따라가 보는 도전을 통해 성장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어떠니?”
솔직히 내가 시험 중에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잤다고 하기에도 좀 창피한 부분이 있는 데다 그 와중에 턱걸이 점수라도 나온 게 용하니 떡을 주신다는데 받아야겠다 싶어서 일단 높은 반에 들어가서 버텨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높은 반의 수업은….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 수준에서 따라가기 너무 힘들었다.
강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들과의 수준 차이에서 스스로 느끼는 열등감 때문이었다. 지금 쓰면서도 실소가 나오는 기억인데 같이 수업을 들었던 친구들의 수학 점수는 90점대가 기본이었다. 조금 미끄러져도 85점 이상. 그런데 나는…. 그들보다 4,50점 아래였다.
나 역시도 도대체 내가 왜 여기 어떻게 앉아 있는 거지 싶었다.
수학학원의 담임 선생님들도 나를 보면 굉장히 난감하신 듯했다.
애가 강의 듣는 거 보면 나름대로 잘 이해하고 공식도 잘 외우고 기본문제도 잘 풀면서 따라오는 거 같은데 그놈의 응용문제만 풀면 초토화되니 말이다.
시험 성적도 그게 학원 쪽지시험이던 학교 내신이던 어떻게 된 게 반에서 항상 꼴찌다.
“넌 진짜 이상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다른 반으로 보내기에는 묘하게 책임져야 할 거 같고. 열심히 하는 거 같은데 왜 한 끗을 못 넘을까...”
그렇게 높은 반을 맡아주신 두 분의 선생님들이 나를 믿어주시고 최선을 다해주셨지만 나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채 학년이 올라가 예비고1이 되었고 다음으로 우리 반을 맡게 된 분은 학원의 원장 선생님이셨다.
놀랍게도 원장 선생님도 내게 같은 말씀을 하셨다.
너는 비록 반의 꼴찌지만 (물론 이렇게는 표현 안 하셨다^^) 이상하게 성장시키고 싶은 오기가 생기는구나라고.
차라리 그냥 날 좀 더 낮은 반으로 보내셨다면 더 편하셨을 텐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분들을 만나서 격려받을 수 있어서 수학을 더 끝까지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원래 원장 선생님은 상당히 까다롭고 엄한 분으로 학원 내에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그분 반의 학생들은 항상 약간 긴장상태로 수업을 받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 담임 선생님이 바로 그 ‘원장님’이 된 것이다.
그런데 직접 수업을 듣게 된 원장 선생님은 무섭긴 하셨지만 반의 꼴찌였던 내게는 굉장히 따뜻하셨고 신경 많이 써주셨다. 다른 분들도 그랬지만 원장 선생님께서도 직접 일대일 특별 수업도 자주 해주셨다.
이때 원장 선생님께서 내게 그러셨다. 수학을 잘하고 싶으면 책 하나를 추천한다고.
내게 폴리아의 <어떻게 문제를 풀 것인가>라는 책을 읽어보라고 하셨다.
조지 폴리아라는 수학자이자 수학교육 이론가가 수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4단계의 방법을 정리해놓았는데, ‘수학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을 모르는 내가 읽어본다면 상당히 도움이 될 거라는 것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원장 선생님이 강의하신 방식은 폴리아의 수학교육 이론을 바탕으로 하시지 않으셨나 싶다. 학원에서 자체 제작해서 제공해준 ‘오답노트’ 형식을 보면 말이다.
아무튼 나는 그 말을 들은 다음날 학교 수업이 끝난 뒤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서 해당 책을 찾아보았다. 웬걸 ‘수학 전문 분야’에 꽂혀 있던 학술논문 단행본이었다. 중학 3학년-예비고1이 읽기에는 너무 벅찬 수준. 더군다나 수학도 잘 못하는 학생이었으니 더더욱 생소하고 당황스러운 용어가 잔뜩 있다고 느꼈던 책으로 나는 학술논문이란 걸 그 책으로 처음 접했다.
그래도 여기 문제를 잘 풀 수 있는 비밀이 담겨 있다면….
나는 폴리아의 이론에 희망을 갖고 일단 사온 뒤 책을 펼쳤다. 그리고 한 챕터 읽고 덮었다. 좋은 말을 하는 거 같은데 뭔 소리인지 진짜 모르겠다….
첫 챕터를 그나마 읽을 수 있던 것은 그 장에서 주로 서술하는 주장은 “구하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보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학원에서 수업할 때도 들었던 말이라 낯설지는 않았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다만…..
그런데 수학에서는 왜 그렇게 “구하라는 것이 무엇인가” 가 중요한 것일까?
어렸던 나는 도저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수학 선생님들에게 위의 질문을 해보았다. 질문을 들은 수학 선생님들은 당황하신 듯하였지만 그분들 나름대로의 생각을 말해주셨다. 그러나 선생님들에게서 나는 스스로 만족스러운 답을 얻을 수 없었다.
당연하다.
수학선생님들은 “수학이란 문제 해결을 위한 학문”이라는 걸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 깨닫고 체화한 사람들이지만 본디 그럴수록 타인에게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깨달음이란 남에게 직접 전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수학 고수님의 “수학은 언어, 현실 문제 해결의 도구”라는 말씀과 중고등학생 시절 추천받은 폴리아의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의 접점이 닿았다. 나는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내가 오래전부터 품었던 수학 공부의 본질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생님. 그동안 수학 공부도 하고 문제도 풀면서 진짜 궁금했던 것이 있었어요. 수학에서 수식에 문자를 사용하잖아요. x, y, z, a, b, c, k, i 등등요. 그런데 전 그 문자를 쓰는 까닭부터 이해가 안 갔고, 어떨 때 어떤 문자를 써야 하는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어요. 혹시 어느 상황에서 어떤 문자를 사용하는지도 수학이 언어라는 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그럼, 관련 있다마다.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읽는 게 아니라 수학 문제의 마지막 줄부터 보라고 했지. 자, 이 문제를 예시로 들어보자. 문제의 마지막에 뭐라고 적혀 있지?”
“'…를 구하여라'라고 되어 있어요.”
“그렇지. 수학 공부의 본질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를 풀어갈 때 ‘구하여라’는 얼마나 긴 표현이니. 그래서 우리는 ‘구하여라’라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수학에서는 ‘x’라고 쓰기로 약속을 한 거란다.”
“아하….”
“따라서 제일 먼저 살펴야 할 건 무엇을 x로 둘 것이냐는 거다. 이것만 잘 두어도 문제의 반은 끝난 것이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구해야 하는 것, 그것을 x로 표현해야 한다. y와 z의 경우는 문제를 푸는 과정 상에서 구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을 지칭할 때 두어야 하지. 그래서 이들을 우리는 이들을 모두 ‘미지수’라고 이름 붙인 거란다.”
“그럼 a, b, c, k, i 같은 건 뭐죠? 임의의 문자라고 하던데 그 ‘임의의’가 왜 붙는지 모르겠어요.”
“미지수와 반대로 우리가 구할 필요가 없는, 이미 정해져 있는 고정적인 상수라고 보면 된단다. 쉽게 얘기하자면 ‘특정 상황 그 자체’인 게다. 다만 그러한 상수란 해결해야 하는 문제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임의’라고 표현한 것이지.”
이제야 묵었던 의문이 해소되었다. 수학 문제를 푸는데 문자를 사용한 까닭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적 표현이 너무 길어서 문제를 푸는 식을 세우는데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자, 이제 수학에서 문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이것들을 활용해서 어떻게 수학 문제를 해석할 수 있는지 살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