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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스갯소리 May 20. 2024

갑자기 근로장학생

대학생 시절 꿀알바

교대는 참 좁다.

과에 한 학번 동기들이 서른 명 남짓이었으니

석 달 정도 지내다 보면 노력하지 않아도 바로 윗 학번 선배는 물론이고 학번 선배들까지 얼굴과 이름, 성격을 어느정도 알게 된다. 교대에서 과는 반의 개념으로, 교대 합격 후 학생의 지망으로 정해진다.

과 지망을 하는 시즌에는 합격한 교대 카페에 '우리 과가 제일 좋다'는 내용의 재학생 홍보 글이 올라오고,

신입생들은 자신의 흥미와 적성, 그리고 과 분위기를 고려하여 과 지망을 한다. 나는 분위기가 좋다는 사회과교육과를 1지망으로 썼고, 사회과교육과 신입생이 되었다.

 

입학하고 보니 '분위기가 좋다'는 것은 '모임이 많다'는 말이었고 극내향형 인간인 나는 그 '좋은 과 분위기'에 적응을 못하는 주눅든 학생이었다. 수업 자료를 프린트 하러 사무실에 갈 때면 절대로 앉는 법 없이 유령처럼 조용히 있다가 볼 일이 끝나면 후다닥 나오기 일쑤였다.

그런데 유령같이 서 있던 나를 유심히 지켜본 두 학번 위의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와는 말을 섞어본 적이 없는데, 불쑥 나에게 스카웃 제의를 했다.

근로장학생을 해보지 않겠냐는 것이다.


자신이 2년 간 이어온 대학 내의 꿀알바가 있는데

이제 임고 공부를 해야 해서 성실한 후배가 있으면 물려줘야 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과사무실에서 군기가 바짝 들어 꼿꼿하게 있던 내가 눈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선배의 오해 아닌 오해로 나는 인생 첫 수익 창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나의 한 달 용돈이 30만원이었는데, 간단한 노동으로 10만원 정도를 더 벌 수 있었으니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근로장학생의 일은 분야가 다양한데, 내가 맡은 일은 선배의 말대로 꿀 중의 꿀이었다. 아침에 대학교 교직원 휴게실에 가서 커피 머신에 원두를 채우고 빈 소모품을 챙겨놓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별로 티가 나지 않는 일이었지만 선배의 안목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그야말로 정성껏 내 의무를 수행했다.


어느 날은 재료 보관함의 설탕 때문에 개미들이 줄줄이 꼬이는 것을 목격하고는, 꽤 열심히 설탕을 제거하느라 평소보다 일을 좀더 길게 했다.

교직원 분이 개미와 고군분투하는 내 모습을 유심히 보고는

평소에 개미와 싸울 수 있는 호전적인 사람에게 자녀를 맡기고 싶었는지, 자신의 아들을 과외해줄 수 없겠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렇게 과외선생을 하게 되었다.


과사무실에서 바짝 쫄아있던 덕에 근로장학생이 되고,

개미와 싸우다가 졸지에 과외 선생님까지 하게 되었으니,

당장은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작은 기회로 찾아오기도 한다는걸 알았다. 요즘 시대에는 받는 만큼만 일하자는 의식이 우세하지만 나의 노력을 아무도 보지 않는 같아도 누군가는 주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꼭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경험이라는 자산만은 고스란히 남게 되어 있다.

이상 30대 젊은 꼰대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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