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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스갯소리 May 23. 2024

예비교사의 과외

관계 형성

교사 신분으로 앞으로 과외를 할 일은 없을테니

내 인생에서 과외로 연을 맺은 아이는 세 명이다.

첫 번째 아이는 내가 대학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는 모습을 지켜본 교직원분의 초등학생 아들이었고,

나머지 두 아이는 내가 몇 달 간 파트타임으로 일했던 국수가게 사장님의 자녀인 중학생 남매였다.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일을 할 때 나의 성실함을 높이 산 어른들이 자녀를 맡긴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시로는 입학 문턱이 높았던 교대에 다니니 잘 가르칠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수도 있겠다.


교대에서 실습을 나가는건 꽤 나중 일이기 때문에, 교육학이니 교육과정이니 하는 이론적인 내용을 배우고 있었지만 실전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우선 첫 번째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 남자 아이로, 전형적인 개구쟁이였다. 최대한 재미있는 방법으로 공부를 시켜보려 했으나 아직 노는게 제일 좋은 그 또래의 아이에게 학습 동기를 불러일으킨다는건 쉽지 않았다. 마치 아이가 즐겨먹는 음식에 몰래 약을 섞여 먹이려다 들킨 것 같은 수업의 연속이었다. 아이의 엄마는 1대1 과외 선생을 붙여 아이가 차분하게 공부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성과가 없자 자연히 그 일을 오래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


두 번째 과외는, 한 가정에서 누나와 동생을 각각 1대1로 진행했다. 한창 사춘기인 누나는 말수가 현저히 적어서 내가 무얼 물어보면 무표정과 단답형으로 대답을 했다. 그 아이는 만화책 보는걸 좋아해서 책상 앞에 만화책이 많이 꽂혀 있었다. 나는 일말의 관심사라도 끌어내고 싶어 과외를 갈 때마다 아이에게 만화책을 빌려왔고, 그걸 읽고 다음 과외 시간에는 첫 5분 정도 만화책 이야기를 했다. 그러길 반복하다 보니 아이는 처음보다 말수가 많이 늘었고, 나는 의도치않게 만화책에 진심으로 빠졌다. 아이러니하지만 만화책을 매개로 아이가 좀더 공부에 관심을 갖게 할 수 있었다. 동생은 적당한 예의와 장난끼를 갖고 있는 아이여서 좀더 편한 마음으로 가르칠 수 있었다. 아이들의 시험 기간에는 주말에 그 집에 머물면서 시험 공부를 시키고, 시험이 끝나면 피자를 시켜서 같이 콜라로 축배를 들며 영화를 봤다. 아이들 부모님은 내가 계속 과외를 지속해주길 바라셨다.


과외의 목적이라고 하면 궁극적으로 학업 성적을 끌어 올리는 것이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무조건 래포 형성이 우선이다. 특히 아직 입시와 맞닿아 있지 않은 중학생, 초등학생이면 공부는 잘하고 싶어하지만 그 이상의 학습 동기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과외할 때는 그걸 어렴풋이 깨달았다면, 이후로 10년간 교사로 일하면서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교육은 긍정적인 관계 형성을 기반으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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