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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스갯소리 May 21. 2024

스무살, 삼겹살집 써빙

잘 안 맞네요

대학 1학년 여름방학,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봤다.

식당, 카페, 빵집, 옷가게...

많은 업종 중에서도 삼겹살집 홀써빙을 지원했다.

부모님이 고깃집을 오래 운영하셨기 때문에,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듯 고깃집 딸로 산 세월이 내 이력이 되어주리라 생각했다.

사장님들이 가장 궁금해하는건 당연하게도 아르바이트 경험이었고, 가게 아르바이트 경험은 0이었기 때문에 뭐라도 내세울게 있어야 했다. 나는 부모님이 오래 고깃집을 운영하셨고 일을 종종 도왔기 때문에 잘할 자신이 있다고 어필했다. 비록 그 시절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내가 도와드린 것이라고 해봐야 고작 빈 물통에 물을 채워놓거나 숟가락을 채우는 정도였다는 설명까지 덧붙이진 않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장님은 나의 어필을 순순히 받아들이셨고, 그렇게 나는 삼겹살집 써빙을 하게 되었다.


첫날이니만큼 단정한 모습으로 고깃집 유니폼을 입고, 포스기 조작법을 배우고, 메뉴를 숙지했다.

테이블을 깨끗하게 닦고 냅킨이나 수저 등을 채워놓으면서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니 금방 오픈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하나 둘, 문을 열고 손님이 들어왔다. 모든게 처음이어서 심장이 두근두근했지만 손님이 앉은 테이블에 물과 메뉴판을 갖다 주고, 잠시 후 떨리는 목소리로 '주문하시겠어요?'라고 물었다.

테이블 번호와 주문한 음식을 잘 기억하고 포스기로 가서 입력하면 일단 한시름 놓을... 겨를 없이 다른 테이블에 손님이 앉는다. 밑반찬을 가져다 주고, 또 주문을 받고, 포스기에 입력하고, 주방에서 나온 음식을 전달하고, 손님이 퇴장하면 테이블을 치우고... 손님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은 규칙적이지 않기에 이 과정들이 섞이기 때문에 헷갈리지 않으면서 빨리 행동해야 했다. 일머리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테이블을 치우는 일이었는데, 커다란 적색 다라이를 들고 가서 테이블에 셋팅되어 있던 접시와 음식들을 때려 담아 무게가 꽤 나가는 그것을 주방 앞으로 옮겨야 했다. 안그래도 체구가 작은 나는 가득 찬 다라이를 들고 휘청거리지 않도록 애써야 했다. 손님이 순차적으로 오면 좋을텐데 몰리는 시간이 따로 있기 때문에 바쁠 때 더 바쁘고 몸을 생각할 겨를 따위는 없었다. 어서 퇴근하고 싶은 내 마음과는 다르게 중심상가에 위치한 이 가게에는 밤 늦게까지 손님들이 계속 들어왔다. 간절했지만 오지 않을 것만 같던 퇴근 시각이 되었을 때,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옛날에 엄마가 온몸에 고기 냄새가 벤 채로 집에 오면 어깨를 주물러 달라고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음 날, 일어나려고 하는데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몸살이었다. 몇 시간 후에 또 출근해야 하는데 몸은 방망이로 두드려 맞은 것 같았다. 그 때 구원처럼 핸드폰 문자 알림이 떴다. 사장님 번호다.

[우리 가게와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일급은 계좌로 보냈습니다.]

이런 몸으로 일하러 가지 않아도 되어서 참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하루만에 짤렸다는 사실이 못내 씁쓸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할 삼겹살집 하루만에 짤린 일화는 2학기 개강 후 동기들의 입에 한동안 오르내렸다. 내게 남은건 약간의 수치심에서 비롯된 자조와 통장에 찍힌 일급이었지만,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의 큰 차이를 깨닫게 한 사건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오랜 시간을 바라보아도 그 일을 직접 해보는 것과 보기만 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모님께서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일했을 수없을 날들의 무게도 아주 조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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