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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샤쓰 그 신후 Jun 19. 2021

밀리터리 장르소설) 무토 - 인간, 병기

1부 - 챕터# 14. 기무라는 병기의부적 주머니를꺼냈다.

    기무라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급히 책상 서랍부터 열었다. 서류더미 사이에서 부적 주머니를 찾아 여자의 사진을 꺼냈다. 

    바로 기억했어야 했다. 무토의 개인 소지품을 전달받았을 때부터 가끔씩 꺼내 보곤 했던 사진이었다. 언젠가 무토가 부적 주머니를 물어온다면 시험 삼아 보여줄 요량이었다. 혹시라도 무토가 기억을 되살렸는지에 대해. 

    뒤늦은 후회가 파고들었다. 여자의 얼굴이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바로 떠올렸어야 했다. 급한 욕구 때문에 병신 같은 실수를 저질러버리다니... 그때 알아챘다면 여자를 다른 위안소로 조용히 보내버리면 끝날 터였다. 조금 전 복도에서의 상황은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기무라는 여자의 사진을 내려다보며 깍지를 꼈다. 결론은 이미 나와 있었다. 병기라는 이름을 외친 순간 이 여자의 운명은 결정 난 거와 다름없었다. 당연히 무토와 함께 부대 내에 놔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약혼녀를 계속 무토 곁에 둔다는 건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침대 밑에 두는 꼴과 마찬가지일 뿐. 

여자는 처리되어야 한다. 한시라도 빨리. 가장 큰 문제는 무토가 이미 정혼녀의 존재를 알아버렸다는 것이다. 여자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면 분명 의심이 솟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기무라의 고심은 무토로 옮겨갔다. 한순간 흔들렸던 무토의 눈빛이 되살아나며 의심에 발동이 걸렸다. 진짜 여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기무라가 얼른 부적 주머니를 다시 서랍에 넣었다. 

    "누군가?"

    "마츠이입니다."

    "들어와."  

    마츠이가 들어오자마자 경례를 붙이고는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아까는 빨리 상황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어서... 좀 밀어붙인다는 게... 죄송합니다." 

    "아니다.  그 일 때문에 온 거면 가서 쉬어도 좋다." 

    "무토 말입니다. 저대로 두실 겁니까?" 

    "저대로 두다니?" 

    "만약 여자를 기억했는데도 모른 척한 거라면... 사단에 보고를 해야 할 사안이라고 봅니다만."

    "무토는 거짓말을 못한다. 훈련받은 대로 행동해. 무기를 들지 않은 여자와 아이는 공격하지 않는다고 한 말 못 들었나?"

    "제가 알기로는... 그런 훈련은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지 혼자 만든 규칙 같은 겁니다."

    한번 발동이 걸렸던 의심이 또 한 번 기무라의 내면을 휘저었다.   

    "실험이 성공적이었다 해도 인간의 뇌구조에 완벽한 건 없습니다. 아까 보셨잖습니까? 그놈의 눈빛과 행동 말입니다. 그러니까 제 생각은 시험을 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뭐를 말인가?" 

    "거짓인지 아닌지 말입니다. 시간이 지나 부작용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아직 그런 징후는 보고 받지 않았다. 지대장 말이야. 내가 봐도 그렇고."

    "최악의 상황부터 따져봐야 합니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정혼녀를 본 이상... 수 일 내로나, 몇 달 후라도 기억이 떠오르기라도 한다면 말입니다. 게다가 대작전도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인도 진격작전 말입니다."

    기무라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문제가 될 소지는 충분히 있었다. 

    "상상도 해서는 안 되지만... 만약에 기억이 돌아오기라도 한다면 무토는 그 힘을 우리에게 쓸 겁니다. 무시무시한 그 능력을 말입니다."

    마츠이가 예리하게 쳐다봤다. 기무라는 정곡을 찔린 기분이었다. 무토를 곁에 두면서도 한편으로는 늘 고심하던 지점을 마츠이가 적확히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한시바삐 여자부터 처리해야지. 가장 먼 양곤 쪽 위안소로..."

    "수소문조차 못하게 해야죠. 완벽하게 찾지 못하게 말입니다."

    "무토가 의심하지 않을 방법이 있나?"

    이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마츠이가 바로 말을 이었다. 

    "공식적으로는 여자를 야전 병원으로 후송 처리하시면 될 겁니다. 지대장이 직접 데리고 가는 걸로요. 여자의 내출혈이 확인돼서 수술이 필요하다고 하면 아무 의심도 못할 겁니다. 나중에 수술 후에 사망했다고 하면 깨끗해질 겁니다." 

    기무라가 일어서다니 마츠이에게 다가섰다. 

    "절대 흔적을 남기지 말도록. 자그마한 실수도 끼어선 안 된다." 

    마츠이는 그 말의 의미를 바로 알아차렸다. 

    "여기는 전쟁텁니다. 시체 따윈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겁니다."



    마츠이가 자기 방으로 들어서며 문을 닫고 잠겼다. 

    철제 침대 위에는 알몸의 소녀가 군용 담요로 몸을 가리고 있었다. 마츠이가 다가섰을 때 소녀는 무표정하게 벽 한 곳을 응시하며 숫자를 세고 있었다. 마치 얼굴이 존재하지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 양 볼에는 진한 눈물 자국이 말라 있었다. 구백 구십 구, 천까지 세고 나자 소녀는 하나부터 다시 세기 시작했다. 

    "입 다물어."

    "다섯, 여섯..." 

    소녀는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짝! 소리와 함께 소녀의 고개가 돌아갔다. 마츠이가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댔다. 쉿! 

    입을 다문 소녀가 고개를 내려 깔았다. 매트리스에 빨간 점 하나가 떨어졌다. 소녀의 눈은 빨간 점에 꽂혔다. 입술에서 떨어진 핏방울이 두 개, 세 개로 늘어나고 있었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소녀는 핏방울을 세기 시작했다. 넷... 다섯... 여섯... 

    마츠이가 소녀의 머리 채를 한 움큼 쥐더니 발라당 눕혔다. 곧바로 군용 담요를 걷어내자 어린 알몸이 드러났다. 마츠이가 매트리스 밑을 들쳐 군용 나이프를 꺼냈다. 소녀의 터진 입술에서는 빨간 피가 여전히 새어 나오고 있었다. 새빨간 물방울은 늘 마츠이의 성감을 강렬하게 자극했다. 칼과 피가 어우러진 성교는 마츠이가 가장 원하는 극한의 쾌감이었다.  마츠이는 마지막으로 여자를 난도질하면서 즐겼던 지옥만큼 달콤했던 쾌락을 떠올렸다. 


    홀로 숲길을 내려가던 원주민 여자... 업고 가던 아기... 풀잎처럼 떨던 여자의 몸... 정글 바닥을 적신 피... 살 속을 파고들 때의 칼날의 달콤한 떨림... 새빨갛게 적셔진 몸뚱이... 아기의 울음소리... 꺽꺽거리는 여자의 울음 섞인 신음 소리... 사정의 순간, 때마침 쏟아진 폭우가 선사한 광기가... 


    소녀의 작고 여린 몸 위에 올라탄 마츠이가 칼끝을 이마에 대더니 점점 아래로 끌고 내려왔다. 목선을 타고 내리던 칼 끝이 쇄골에 이르자 마츠이는 힘을 주어 긋기 시작했다. 소녀가 움찔하며 두 눈이 확 벌어졌지만 공포로 마비된 몸뚱이는 돌멩이에 불과할 뿐이었다. 마츠이는 소녀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않을 만큼만 피부 표면을 그으가며 허리 짓을 반복했다. 소녀의 몸 곳곳이 붉게 물들어갔고 돌멩이가 된 소녀는 울음조차 터트리지 못했다. 

    마츠이는 그 자세로 허리를 움직이며 정혜를 생각했다. 그냥 죽이는 건 시시하다... 

    그 순간, 절정을 향해 가던 환상 속에서 정혜의 붉은 몸뚱이가 불쑥 찾아들었다. 피범벅이 되어 숨을 깔딱거리는 정혜의 얼굴이. 난도질에 신음하면서 죽어가던 정글 바닥의 그 버마년처럼. 

    절정이 찾아왔다. 마츠이의 칼이 소녀의 허벅지를 푹 찔렀고 소녀의 비명 속에서 마츠이는 부르르 떨며 사정을 끝냈다. 


    마츠이의 눈 앞에 붉은 지옥도가 펼쳐졌다. 

    정혜의 피가 자신의 온몸을 뒤덮은 광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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