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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민 Dec 22. 2022

진도를 천천히 나가는 여행

진도 한 달 살기 -6-

진도까지는 다섯 시간이나 걸렸다. 숙소에 밤늦게 도착해서 대충 짐정리하고 바로 잠자리를 준비했다. 여행 첫날의 대부분을 길 위에서 보내며 계획이 틀어지고 말았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우린 진도에 한 달 살러 왔기에 충분한 만큼의 내일과 다음 내일이 계속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한실이불을 덮자 온기와 함께 여행의 낭만이 우리 몸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내일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우리는 진도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던 거실



다음날 아침 사장님께서 직접 내린 커피와 다과를 방으로 가져다주셨다. 멋진 한옥에서 아름다운 정원을 보며 커피를 마시니 유명한 한옥카페에 온듯했다. 따뜻한 커피와 함께 맞이하는 아침은 일주일 머무는 동안 계속되었다. 커피를 매일 주시는 것도 감사한 일이었는데 우리는 내일은 어떤 다과가 커피와 함께 나올지 궁금해했다. 그래서 이곳에서의 아침을 계속 기대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많은 것이 마음에 들었지만 나는 무엇보다 잔디가 곱게 깔린 앞마당이 마음에 들었다. 사장님께서 이 잔디는 농약도 안쳤으니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아도 된다고 하셨다. 이 아름다운 정원은 그대로 지호와 나의 놀이터가 되어주었고 우린 매일 오전에는 숙소에서 놀며 시간을 보냈다.

물총놀이 후 쉬는 중 / 비누방울 날리고 도망가는 중
한복 입고 징검다리 건너기 놀이 / 돌탑 쌓기 놀이



숙소에서 사장님도 우리를 매우 친절하게 맞이해주셨는데 우리를 기다리던 또 다른 주인이 있었으니 바로 고양이들이었다. 여기 한옥마을에 사는 길고양이들인데 아무래도 숙소 손님들이 오가며 음식을 던져주니 여기로 자주 모이는 것 같았다. 다 모이면 일곱 마리나 되었는데 이른 아침부터 잔디밭에서 장난치는 모습이 귀여웠다. 고양이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가 우리가 밥만 먹으면 어떻게 알고 조용히 다가왔다. 음식을 던져주려다가 한두 마리도 아니고 한번 주면 계속 온다는 아내의 주의에 손을 거두었다. 그래도 항상 식사 시간에 찾아오는 고양이가 안쓰러워 아내 몰래 남은 음식 몇 점을 몇 번 던져 주었다. 아내도 나 몰래 몇 번 음식을 고양이들에게 주었었던 것 같다.

한옥마을의 고양이들



한 달 살기를 하면 좋은 점은 여행이 일상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여행이라는 제한된 시간에 쫓기지 않고 일상같이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물론 뒤로 갈수록 아쉬움에 조급함을 느끼게 되었지만 진도 한 달 살기의 시작이었던 여기서만큼은 여유 있게 남은 시간을 마음껏 느리게 보낼 수 있었다.



이곳에서의 마지막 밤에 나는 홀로 나와 별을 감상하고 사진을 찍었다. 이 수많은 별들 아래서 잠들어 있는 아내와 지호를 생각하니 이곳에서의 추억이 별들만큼이나 아름다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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