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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많은 어른이 되어 사랑의 렌즈를 회복해야지

[Lyrics] 7: 잔나비 - 꿈과 책과 힘과 벽

by 민석
잔나비 2집 <전설>


나에게 가장 각별한 곡.


그 계기가 되었던 것은 작년 잔나비 콘서트였다.


가장 좋았던 무대를 꼽자면 나는 단연 꿈책힘벽이다. 본인들의 작업실 컨셉으로 꾸민 무대 위에서 비상구를 열고 들어오는 최정훈을 잊지 못 한다. 마치 자신들이 쌓아올린 벽을 활짝- 열어버리는 그 모습을.


꿈과 책과 힘과 벽 사이를 힘차게 헤쳐나가는 그룹사운드 잔나비의 위용을.


FANTASTIC OLD FASHIONED 2024


해가 뜨고 다시 지는 것에
연연하였던 나의 작은방
텅 빈 마음 노랠 불러봤자
누군가에겐 소음일 테니

꼭 다문 입 그 새로 삐져나온
보잘것없는 나의 한숨에
나 들으라고 내쉰 숨이 더냐
아버지 내게 물으시고
제 발 저려 난 답할 수 없었네

우리는 우리는
어째서
어른이 된 걸까
하루하루가
참 무거운 짐이야
더는 못 갈 거야

꿈과 책과 힘과 벽 사이를
눈치 보기에 바쁜 나날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무책임한 격언 따위에

저 바다를 호령하는 거야
어처구니없던 나의 어린 꿈
가질 수 없음을 알게 되던 날
두드러기처럼 돋은 심술이
끝내 그 이름 더럽히고 말았네

우리는 우리는
어째서
어른이 된 걸까
하루하루가
참 무거운 짐이야
더는 못 간대두

멈춰 선 남겨진
날 보면
어떤 맘이 들까
하루하루가
참 무서운 밤인 걸
잘도 버티는 넌
하루하루가
참 무서운 밤인 걸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하루는 더 어른이 될 테니
무덤덤한 그 눈빛을 기억해
어릴 적 본 그들의 눈을
우린 조금씩 닮아야 할 거야

잔나비 <꿈과 책과 힘과 벽>






꿈이란 놈은 참 요망하다.


다가간 듯 싶으면 멀어지고, 관심을 끄고 있으면 불현듯 어떤 계기로 내 앞에 나타나 나를 홀린다.


'꿈과 책과 힘과 벽'이 가장 슬픈 지점은, 어린 꿈을 접고서 그저 그런 어른이 되어가야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노래임을 알게 될 때부터다. 그렇게 우리도 덤덤한 눈빛이 서린 어른이 되어, 총명하던 어린 시절의 꿈을 잃어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임을 시인하게 되는 순간, 내 삶을 버텨오던 무장이 해제되는 느낌이랄까.


그러니 어른이 된다는 것은 참 무섭다.


마냥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남고 싶은데, 한 번뿐인 인생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흘러간다. 처음의 순수함을 더는 느낄 수 없게 되고, 새로움보다 익숙함이 많은 시절로 접어들게 된다.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책임들 속에서 계획대로 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으니, 어떤 어른으로 살아가야할지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안개 속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꿈이란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책임을 다 해야 하고, 힘과 맞서기 위해서는 벽을 깨부셔야 한다는 것.


꿈책힘벽이 말하고 있는 어른으로서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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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총명하게 자신의 꿈을 간직하는 시기가 있다. 다섯 살 때 나는 포크레인 기사가 되겠다고 했고, 여덟 살 때는 하버드 의대에 간다고 했단다.

중학교 생활기록부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중학생 때는 공무원이 된다고 했고, 고등학생 때는 마케터와 CEO가 된단다.


물 흐르듯 흘러간 나의 학창시절을 지나, 스물여섯의 나는 새로운 꿈 앞에 설 준비를 했다.


증권사를 그만 두고 알고리즘 트레이딩을 사업화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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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권력욕도 없고, 회사에서 잘되겠다는 생각은 단 1도 없다. 그런 것들에 내 마음과 정신을 쏟을 바에 내 가족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따뜻한 말을 전하고, 따뜻한 밥이라도 사먹이겠다.


그래서일까? 타인을 돕기 위해 시작했던 내 첫 번째 꿈은 온데간데 없이 산산조각 났다. 너무 물렀고, 사람을 쉽게 믿었다.


남은 건 빚과 나의 몸뚱이, 끝.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더라. 취직하고 나서도 내 이야기를 하면 다들 도망을 간다. 부모님께도 말하지 못 했고, 3년 동안 혼자서 마음을 앓아왔다. 꿈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그렇게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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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싶은 생각에 별의별 짓을 다 했다.


이직 공백기('23년 말) 때는 취준을 하면서 배달일을 한창 했다. 마포구 일대에 안 가본 곳이 없다. 북아현동의 무시무시한 언덕길, 들어가는 동안 몇 번이고 경비 선생님이 화를 내서 진땀을 뺐던 이대 기숙사, 자전거가 없어서 배달가방을 메고 뛰어다니며 엽떡을 배달해주던 디자인고, 항상 콜이 밀려서 10분 넘게 기다리는 엽떡 상수점 등등. 알바든 사장님이든 경비원이든 대부분이 장착하고 있는 하대의 시선은 디폴트, 생존을 담보로 인도와 차도를 아슬아슬 오가는 곡예 주행은 옵션.


퇴사하고 사업 준비를 하던 시절('23년)에는 나태해지는 게 싫었기 때문에 항상 6시 40분에 일어나서 메가커피 1리터짜리를 뽑고, 7시반에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보통 하루 일과의 끝은 저녁 10시. 매일 같이, 평일이든 주말이든 공휴일이든 그렇게 1년동안 살았다.


퇴사 직후 개인 사무실을 구했을 때('22년 말)는, 항상 낮에 나가서 새벽 3-4시쯤 들어왔다. 상수의 만취한 사람들을 나의 전용 스킨 삼아 광흥창까지 항상 걸어왔다. FOMC에서 공개하는 점도표와 파월의 청문회, 아홉시 반만 되면 난리법석이던 CPI, 그리고 각종 영어로 된 투자 정보 자료들. 영어 실력만 한창 올라가던 그 시절이랄까.


간절하다고 다 이루어지는 건 아니란 걸 몸소 체감하며, 나락으로 빠지기 시작했던 첫 번째 꿈의 나날들.


조금 현명하게 다쳤어야 했는데, 너무 크게 다쳤다.





회사를 다시 들어오고 난 뒤에도 상황이 좋아지진 않았다. 당시에 있었던 돈과 사람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몸이 힘들었던 건 2022년과 2023년이었지만,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건 2024년 초부터 2025년 상반기까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의 가장 깊고 큰 슬럼프 기간. (정확히 말하자면 전자도 정신적 스트레스가 컸지만, 후자는 스트레스를 초월해 절제력을 잃는 경지에 이르렀다)


* 제 글을 꾸준히 읽어주시는 감사한 분이 계시다면, 앞으로 혹은 이전에(25년 한정) 이야기했던 저의 상처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대부분 22-25년에 생산되었다,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업 준비를 하던 시절에는 꿈의 생존을 위해서 허둥댔다면, 이 때는 정말 생존을 생각했다. 삶과 죽음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말하는 진짜 생존 말이다.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을지, 죽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죽음에 가까워져보면 내 삶이 좀 더 소중해질 것인지' 하는 생각들을 내내 하면서, 일상에서 폭식, 게임, 술 등으로 도피를 일삼았다. 무언가 몰입하여 도망칠 곳을 계속 찾았다. 나를 마주하는 게 너무 힘들었고, 나를 봐줄 수 있는 사람만 찾아다니는 그런 멋없는 인간이었다. '뭐가 됐든 너희는 내 삶을 몰라' 라는 방어기제 - 철회 혹은 투사적 동일시 - 가 커졌기 때문에 사람의 말을 흘려듣는 이상한 습관마저 생겨버렸다. 불면증은 기본이라 만성피로는 주렁주렁 키링처럼 달고 다녔고, 서른을 앞둔 놈이 사람들로부터 혼자가 되는 것에 상처를 왜 그리도 받는지. 유약한 인간 같으니라고.


태수보다 먼저, 참으로 오랜 기간 스스로 자몽살구클럽을 운영했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한로로 소설 <자몽살구클럽>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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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


'이대로 죽는 게 너무 아깝다. 더 할 수 있는 게 많다. 고통 총량의 법칙을 믿어보자.'


원래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게 단 하나도 없지 않은가. 다만 내 자신만큼은 분명 내 힘으로 컨트롤할 수 있으니, 수많은 long-list(민석 구원 리스트)의 아이템 중 1위를 차지한 것. 그것은 바로 외모 가꾸기 였다.


그리고 2순위는 글을 쓰는 것. 잊고 살았던 낭만을 되찾자, 지금 내가 기꺼이 사랑하고 미워하고 반응하는 모든 것들을 최대한 많이 기록해두자. 언젠가 더 힘든 일을 겪을 나에게 큰 힘이 되어줄테니 말이다.


3순위는 아마도 문화생활을 향유하는 것. 새로움을 기다리는 것을 나의 동력으로 삼고 싶었다.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만들면,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도 그만큼 많아질테고, 내 세상이 그만큼 넓어질테니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는 것. 음악부터 전시, 공연, 공간 등 사람이 살아가는 다양한 연결고리를 내가 직접 체화하면서 내 삶의 신선함을 스스로 만들자는 것.


그렇게 나는 무너졌던 내 자존감을 쌓아올리기 위해, 내가 어떤 것을 사랑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서른의 문턱에서 다시금 나의 생존법을 되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고자 마음먹었다.


내 삶을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잘 살고 싶다는 열망이 어느 때보다 커진 8월이었다. 언젠가 그에게도 이 이야기를 꼭 해줘야지.




꿈과 시간은 밀도 높은 인력(gravitation)을 향유한다.


대개 꿈이란 놈은 진득하게 시간의 편에 선 사람의 손을 들어주도록 생겨먹었다. 인내심이 없는 사람으로부터 있는 사람에게로 흘러간다. 오랜 시간을 버틴 사람이 승자가 되는 놀랍도록 합리적인 보상 체계이자 인생의 법칙이랄까. 그러니, 버티면 된다. 정말 된다.


다만, 그게 쉬웠으면 모두가 꿈을 찾고 이상을 좇아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happily ever after 엔딩을 맞이했겠지. 올바른 방향으로, 고난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꾸준히 해나간다는 건 참으로 희소한 일이다. 방향 설정에서 9할은 떨어져나갈테고, 끝까지 끌고 가는 일에서 남은 사람의 9할이 또 떨어져나간다.


그리고, 나처럼 회복도 안 될 정도로 다치면 꿈이고 뭐고 살아가는 이유부터 찾게 되니 현명하게 다쳤으면 좋겠다. 낙법도 생존법이다만 떨어지지 않는 게 진짜 생존법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맹신하지 말고, 꾸준히 시간의 힘을 믿는 게 훨씬 더 당신의 삶을 로맨틱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도전하는 사람은 섹시할지언정, 시간을 끝까지 품어낸 사람은 그 자체로 낭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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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마흔쯤 황금기를 맞으리라고 예상한다. 아마 지금 다니는 은행도 최소 10년은 더 다녀야겠지.


인생에는 필히 대운이 들어오는 시절이 있는 것 같다. 마흔 즈음에 전성기를 맞이하기 시작한 연예인으로 비유를 하자면, 배우 이준혁 님, 가수 권정열 님, 장도연 님 정도가 생각난다.


나이보다 중요한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방향이겠지 하는 것을 몇 번이고 다짐하지만, 생각보다 자기실현적 예언을 되뇌이는 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당장 손에 잡히는 게 없고, 꾸준히 내 방향으로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게 참 어렵다. 맞는 길인지, 속도가 느리진 않을지, 남들과 다르진 않을지 하고 내 인생을 계속 재단한다.


그렇게 제 풀에 꺾여서 제 갈길을 잃어버리다보면, 그 길들 위에 자신의 꿈을 한 섶, 두 섶, 흘리고 흘려서 채워지지 못 한 미련으로 생의 끝에 도달하겠지. 내 마음에 불쏘시개를 한 번이라도 더 던져볼 걸, 내 길 위에 주단을 깔고 당당하게 걸어볼 걸 하고 말이다.


꿈을 이루겠다는 장대한 포부 대신, 그냥 꿈 많은 어른으로 남을까보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며, 꿈은 간직하고 이상은 동경할 줄 아는 아이같은 어른이 되어 삶의 초점을 흐리지 않는 사람이 될테다.


질투보단 사랑으로, 모험보단 여유로서 유연하게 삶을 대하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어릴 적 본 부모님의 눈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만큼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너무도 큰 축복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낙관의 필터는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나를 더 깊은 심연으로 빠뜨린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사람을 너무 쉽게 믿었고, 세상을 너무 어리석게 바라보았다. 어른과 꿈의 무게추를 지탱하지 못 하는 유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나 말고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한 번도 원망한 적 없고, 여전히 나는 내 안에서 원인을 찾는 내부귀인형 인간이다.


어서, 나의 가장 소중한 어른들이 가졌던 사랑의 렌즈를 회복해야겠다.



2012년 학교 과제로 어머니가 써주신 편지.


삶이 힘들 때마다 몇 번이고 더 꺼내볼 어머니의 편지 마지막 구절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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