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동죽의 말

퉤퉤

동죽조개가 나를 보고 처음 한 말은 “퉤!”였다.

가래를 뱉는 것처럼 모래 섞인 끈적한 타액을 작은 숨구멍에서 뱉어냈다.


만약 여기가 바다라면 이 여린 숨구멍을 모래 위로 올려보내 가뿐 숨을 쉬었겠지? 해감을 위해 빛도 투과되지 않는 검은색 플라스틱통에 동죽조개 20마리를 넣어 놨다. 생각보다 소금을 많이 뿌려야했다.


물 700ml에 소금 세큰술 정도? 차가운 냉장고 안에선 의외로 토악질이 활발하지 않다. 해감이 얼마나 됐을까? 궁금해서 바깥으로 꺼내자 그제서야 냉기가 가시는지 뽀글뽀글 숨도 쉬고 토악질도 한다.


난 그때부터 하루에 몇 차례씩 통을 꺼내 조개들을 살폈다. 단단한 껍질 밖으로 내민 뽀얀 조갯살은 혓바닥처럼 선홍빛도 나고 약간은 투명하기까지했다.


“퉤퉤.”


가장 먼저 숨구멍을 연 조개는 반짝한 모래를 내뱉으며 조심성도 없이 처음부터 거칠게 숨을 쉬었다.


“크악. 퉤퉤.”


그 목소리가 나에게까지 들렸다. 껍질만 보아도 가장 작고 어렸던 조개는 철없는 아이처럼 깊은 숨을 참다참다 못해 켁켁거렸다. 그리곤 통통한 조갯살을 바닥에 탕탕 부딪혀가며 플라스틱 통 안을 유유히 헤엄쳐 다녔다.


“여긴 어디지?”


어리둥절한 표정과 둥근 통안을 혼자서 빙둘러 가던 녀석의 움직임을 아직도 난 잊을 수가 없다. 조개가 하는 짓이 기가막혀서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린 녀석을 시작으로 그 옆에 있던 조개들이 돌멩이처럼 움적움적 움직였다. 아무리 숨쉬기가 급하다고 해도 처음 움직인 녀석만큼은 아니었다. 말간 해가 바다 위로 조금씩 고개를 내미는 것처럼 그렇게 조갯살이 드러났다.


한놈에서 두놈으로 숨쉬는 기포가 옮겨갔지만 구석에서 웅크리고 도저히 입을 열지 않는 동죽도 보였다. 크기도 꽤 크고 껍질도 단단해보였다. 바닷 속에서 오래 살아 남은 놈들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신중함이 너희를 여태까지 생존케했으리라 나도 신중하게 기다려주기로 했다.


모래와 불순물을 토해낸 조개들은 서로 밀어내기도 하고 한놈이 한놈 위로 올라가 점프하듯 튀어 다니며 물 속을 누비기도 했다. 그 아이들은 생각보다 꽤 오래 살았다. 왁자지껄 떠들 때도 있었고, 내가 조심스레 뚜껑을 열면 선생님에게 들킨 학생들마냥 쑤욱하고 조갯살을 얼른 감췄다. 통안은 암흑처럼 조용해졌지만 이따금 뻐끔뻐끔 숨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동안 왜 들리지 않았을까? 희미했던 작은 목소리들이 큰 울림으로 들리는 건 너와 나의 바다가 다르지 않아서.


나에게 밀려드는 뜨거운 해풍이 타들어가는 너희의 심장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 왠지모를 미안함이 작은 숨소리가 잦아 들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저의 글로 잠시나마 쉬어가셨다면 응원하기 부탁드립니다 ♥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3화오징어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