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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조림

두부의 성장

두부조림은 한번 익혀낸 두부로 해야 제 맛이다.


부드러운 하얀 두부도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물기를 한번 쫙 빼내고 고소한 맛이 진해진 노릇한 두부는 조림에서 최종의 빛을 발한다.


이럴 땐 명절 때 잔뜩 부쳐 놓은 처치곤란 두부전이 구원투수가 된다. 들기름으로 고소하게 부쳐 놓은 두부전은 이미 간이 되어 있어서 양념장을 가볍게 해도 맛이 좋다. 겉면은 유부처럼 쫀쫀하면서 고소한 맛이 진하고, 안은 조금 더 단단해진 식감에 수분이 빠져 탄력적인 식감을 갖게 된다.


두부와 두부전은 완전히 다르다. 거기에 두부전으로 조린 두부조림은 어나더 레벨의 요리가 된다. 부드러움 식감 끝에 약간은 쓴맛이 남는 수분가득한 촉촉한 두부. 전으로 만들면 그것은 곧 두부의 진화가 된다.


소금 한꼬집, 후추로 살짝 밑간을 한 다음 키친타월로 물기를 한번 싹 빼준다. 처음보다 수분이 빠지면서 부피는 약간 줄지만 그만큼 고소한 맛은 응축된다. 팬에 들기름을 충분히 두르고 두부 속 수분이 남아 있던 자리에 들기름이 들어차게 한다.


강하지 않은 약중불에 수분을 날려가며 이 과정을 진득하니 오래오래 견디다보면 유부보다 맛있는 두부전이 탄생한다. 이건 두부의 성장이다. 포켓몬이 1단계, 2단계로 진화하는 것처럼 두부전 안에도 성숙한 맛이 꽉 들어찼다.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제사상에 올리는 밋밋한 두부전으론 인기를 끌지 못 한다. 간을 세게 하지 않아서 친척들의 손이 잘 가지 않는 두부전은 오롯이 우리집의 차지가 된다. 한동안 냉동실에서 꽝꽝 얼어있던 두부전을 별다른 반찬거리가 없는 날 꺼내본다.


동물성이 없는 비건 식탁에 올리기 좋은 반찬. 먹고 나서 진한 향이 남는 들기름의 고소함과 눈처럼 깨끗한 맛으로 이뤄진 하얀 부드러움. 이 둘은 궁합이 아주 잘 맞다.


이미 진득해진 두부전의 쫀쫀함에 둘의 맛은 하나가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양념장엔 들기름은 넣지 않는다. 통깨를 넣어 언뜻언뜻 느껴지는 희미한 고소함만을 추가한다. 누군가의 손에서 직접 탄생한 한식간장은 양념장의 기본을 다 한다.


여기에 저염간장 한큰술, 고춧가루, 다진마늘, 후추, 물을 넣는다. 동물성 반찬을 잊게 만드는 두부조림의 핵심 비법은 바로 산초가루에 있다. 일명 쓰촨페퍼로 불리는 산초가루는 마라맛을 내는 천연조미료다.


이걸 후추와 함께 넣으면 색다른 두부조림맛에 자꾸만 젓가락이 가게 된다. 첫맛은 약간 마파두부같은 향을 내지만 여지없이 중간맛과 끝맛은 한식 두부조림이다. 첫 맛에 탁 치고 가는 강렬한 맛은 있지만 생각보다 얼얼한 맛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


간장의 짭쪼름한 맛과 깊은 감칠맛, 고춧가루의 단맛이 도는 매콤함과 후추, 산초의 향은 남아 있던 두부의 떫은 맛과 비린향까지 잡아준다. 고소함만 남은 두부전의 깊은 모공 속에 양념장이 확 베인다. 두부 아래 깔아주는 무의 시원한 맛, 설탕 대신 충분히 넣은 당근으로 단맛은 충분하다. 여기에 양파가 한 몫을 더한다.


별다른 건 없다. 마지막에 잔잔한 불에서 대파와 매콤한 청양고추 몇 개를 더해주고, 불을 끈 다음 참기름을 한 바퀴 둘러준다. 무도 너무 무르지 않게 아사삭 잘 익었고 당근도 부드럽게 달큰하니 밥에 비벼먹기 딱 좋다. 너무 짜지 않았던 양념장은 냄비 안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채소의 맛들과 얼큰하게 조려진다. 그 간이 두부전의 간과 잘 맞는다.


고기는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콩이 모든 걸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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