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는 아끼지만 학비는 낸다.
2~3주 정도 글이 막혀서 업로드를 하지 못했다. 여행을 다녀오느라, 독감에 걸린 아이들을 케어하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소재가 있어도 그게 글로 풀어지지 않았다. 지금 이 소재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써 보자.
사립초등학교 지원 접수가 11월 7일부터 시작된다. 첫째의 졸업을 앞두고, 6년 전 초등학교를 고민하던 때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첫째를 내가 근무하는 학교로 지원할지, 근처 공립초등학교로 보낼지 고민이 많았다. (사립초는 100퍼센트 랜덤 추첨으로 학생을 뽑는데, 교사 자녀도 예외 없이 추첨에서 합격해야 다닐 수 있다.)
내가 근무하는 사립초에 아이를 입학시키자니, 가장 큰 걱정은 역시 가족이라는 사실 그 자체였다. 예전에 우리 학교에 계셨던 선생님의 자녀가 친구와 싸움을 했는데, 그 일로 교장실에서 선생님이 상대방 학부모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그 장면이 너무나 슬펐는데 ‘나도 아이의 부족함으로 부끄러워지는 일이 있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솔직히 사실이었다. 물론 그런 일이 있더라도 받아들여야겠지만.
결국 아이의 선택을 최대한 존중하기로 했다. 교사 자녀로 학교를 다닌다면 행동의 제약이 없을 수 없다. 예를 들면 생일 파티가 있다. 우리 학교는, 생일 파티는 가급적 가족과 함께하고, 친구를 불러 파티를 여는 것은 자제하도록 하고 있다. 그래도 친한 친구들을 살짝 불러 함께 생일을 기념하곤 하지만, 학급에서 대놓고 초대장을 주거나 선물을 주고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생일 파티에 초대되지 못한 친구들이 위화감을 느낄 수 있고, 생일 파티의 규모나 선물 때문에 아이들 사이에서 비교 의식이 생기는 것도 방지하는 차원이다. 학부모님도 이런 학교의 방침에 잘 따라주고 계신다. 실제로 나도 부모인 입장에서, 자녀의 생일 파티는 초대받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막상 아이는 자기 생일에도 초대하고 싶어 하면 그것이 또 부담이 되기 때문에 학교의 방침이 아주 만족스럽다. 하지만 아이도 정말 친한 친구와는 서로 정을 나누고 싶을 것인데, 교사인 내가, 그게 죄는 아니지만, 학교 방침과 반대되는 것을 하기는 힘든 상황인 것이다. 이런 자잘한 제약들에 대해 아이에게 잘 설명했다.
아이는 결국 ‘엄마 학교’를 선택했다. 지원해 보고 붙으면 보내고, 떨어지면 공립초등학교에 보내면 된다!
그랬던 첫째가 추첨에 당첨되어 입학했고, 벌써 6년이나 흘러 올해 졸업을 앞두고 있다. 우려했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아이들의 존경을 받게 된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엄마반이 제일 재밌어보여요. 엄마반 되고 싶어요."라고 자주 말했고 내가 오랫동안 애정을 쏟아온 오케스트라에서도 성실한 단원이 되어주었다. 둘째, 셋째도 모두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입학했는데, 형제자매가 있는 경우 본 추첨에서 떨어져도 대기자 명단에 오를 수 있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게 입학할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사립 초등학교의 좋은 점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내 아이들도 공립초등학교를 다녀보지 않아서 정확히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점들을 이야기했다.
학교에서 재미있는 행사를 많이 한다는 점. 특히 재미있는 행사는 과학경진대회, 수학의 날 행사, 미술대회, 연말 음악 발표회, 체육대회 등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갑자기 행사 이야기를 하며 셋이 무한 수다를 펼치기 시작한다. 셋이 같은 학교를 보내니, 서로 챙기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심지어 나도 같은 학교니 더욱 대화가 풍성해진다.)
스포츠, 컴퓨터, 음악, 미술 선생님이 따로 계시다는 점. 이건 막내가 강조한 부분이다. 공립초등학교는 1, 2학년의 경우 체육, 음악, 미술 교과가 따로 있지 않고 모두 ‘즐거운 생활’로 통합하여 담임 선생님이 가르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립초는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전담 교과선생님이 정규 수업 외에 추가로 예체능과 컴퓨터 수업을 한다. (그만큼 수업 시간도 공립초등학교보다 많다. 다양한 수업 추가로 공립초등학교보다 하교 시각이 늦는 이유이다.) 막내는 스포츠 시간이 주 3시간 있는 지금 학교가 최고라고 한다.
교복이 있어서 옷 입을 고민을 안 해도 된다는 점. (이 부분은 취향이 강한 아이들이라면 불만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우리 아이들은 모두 학교의 통일된 복장을 편하게 생각한다.)
3학년부터는 심성수련회나 스키캠프, 제주도, 경주 교육여행 등 매년 ‘자고 오는 여행’을 간다는 점. 첫째는 6학년이라 얼마 전에 제주도 교육 여행을 다녀오느라 발명교실을 결석했다. 다음 주에 발명교실을 가서 왜 결석했는지 공립초 친구들과 이야기했는데, 공립초 친구들은 아무도 자고 오는 여행을 안 간다고 했다고 한다. 체험학습에서 생기는 사고의 우려, 또 사고의 해결 과정에서 교사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사립이라고 탄탄한 법적 체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관리자와 교사, 학부모, 학생 모두가 서로 신뢰하는 분위기나 다 함께 조심하는 분위기가 비교적 높다는 생각이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 당일형 체험학습은 물론 숙박형 체험학습도 지속되고 있다.
오케스트라가 있다는 점. 우리 학교 오케스트라는 4~6학년 중 희망자는 누구나 오디션 없이 함께 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에서 첫째는 튜바, 둘째는 호른 파트에서 활동하고 있다. 셋째도 물론 오케스트라에 지원할 예정이다. 둘 다 즐겁게 배워주어서 참 고맙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이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가. 학교 안에서 금관 악기를 배울 수 있고, 정규편성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해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오케스트라 덕분에 아이들과 음악회도 자주 가고, 서로 좋아하는 곡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을 무척 감사하게 생각한다.
물론 아이들은 사립초라 싫은 점도 있다고 한다. 영어가 어렵고, 공부와 관련된 대회도 많은 게 싫다고 한다. (수학사고력대회는 그나마 용돈을 받아서 좋지만, 스펠링을 외워야 하는 영어단어인증제는 용돈을 주셔도 못한다고 한다.ㅎㅎ)
교사맘인 나는, 내 자녀가 우리 학교에 다닌 덕분에, 초등학교 교육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학부모 입장에서 새롭게 느낄 수 있었다. 또,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얼마나 훌륭한 분들인지도 더욱 생생하게 알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담임선생님의 존재란 얼마나 큰지. 그 큰 존재인 선생님들이 내 아이를 포함하여 반 아이들을 정말 따뜻하게 바라봐주시고, 가르치고 계셨다. 나는 자녀가 셋이라 대부분의 동료선생님들을 담임선생님으로 만났는데, 매일 올려주시는 알림장에서, 또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들려주는 아이의 이야기 속에서, 선생님들마다 아이들을 다양한 색깔로 사랑해주고 계신다는 걸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지속성이 있는 교육
1학년 때부터 한 학년도 빠짐없이 쭉 써온 일기장과 독서록, 그 속에 적힌 선생님들의 따뜻한 코멘트들.
6년간의 연주를 통해 클래식 악기를 다루고,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모습.
좋은 책이 가득한 학교 도서관을 매일 가고, 책을 빌려 와 읽는 모습.
선생님과 친구들,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이야기를 할 때마다 늘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얼굴.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내 자녀들에게 좋은 습관과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온 것을 보니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대한 애정이 자꾸 커진다. 교사로서는 업무의 무게를 생각하며 힘들다고 여겼던 수많은 행사와 다양한 예체능 교육, 현장학습 등이 막상 학부모의 눈으로 보니 아이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교육이었던지.
그리고 이 모든 교육이, 전근 없이 오래 근무하며 학교를 사랑해 온(애증도 몇 방울 있지만) 선생님들에 의해 꾸준히,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사립초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서울시 신입생의 절반이 지원하는 사립초등학교
사립초를 보낼까 말까 고민하는 분들도 계시고, 꼭 보내고 싶은데 어디를 보낼까 고민하는 분들도 계신다. 특히 서울이 그렇다. 사립초등학교는 전국에 있지만 대부분 서울에 있다. 서울 38개 사립초에, 서울시 7세 아동(5만 4천여 명)의 거의 절반(2만 7천여 명)이 지원했다.(작년 기준)
사립초에서 열일하는 한 명의 교사로서 이런 높은 지원률을 보며, 사립초의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더욱 숙고하게 된다.
사교육비는 가능한 한 쓰지 않으려는 내가, 아이들의 학비를 내며 초등학교를 보냈다. 나의 직업적 영향이 많이 반영된 결정이다. 월 교육비만 놓고 보면 영어유치원보다 훨씬 싸지만, 나에게는 나름 큰 투자였다.
현재의 학교에서 우수한 교육과 큰 사랑을 받고 초등 시기를 보낸 아이들이, 앞으로의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잘 나가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다양성 속에서 늘 배려하고 존중하며, 받은 사랑을 베풀며 살았으면 좋겠다. 소외된 사람들, 소수자의 입장을 헤아리고 다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했으면 좋겠다. 과열된 경쟁 사회에서도 맡은 일을 잘 하기 위해서 늘 노력하되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넓은 마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사립초든, 공립초든, 대안 학교든, 홈스쿨이든 가릴 것 없이, 좋은 교육을 받았다면 이렇게 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나부터,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아야겠다.
추신. 사립초는 3군데까지 지원이 가능하다. 혹시 어느 사립초를 지원해야 할지 고민인 학부모님들이 있다면 생각보다 단순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1. 열심히 안 하는 사립초는 없다. 학교마다 좋은 점이 있고, 막상 보내보면 아쉬운 점도 당연히 있다. 2. 6년이나 보내야 하기 때문에 통학이 편하도록 집에서 가까운 사립초나 버스가 있는 학교를 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3. 가까운 사립초를 3군데 지원한 후, 붙고 난 다음에 고민하면 된다. 추첨되기가 상당히 어렵게 때문이다.
(사립초 지원 사이트 https://www.kspesa.com
11월 5일 오전 10시 이후에 오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