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독서 원칙_좋아하는 책을 읽어요(1)
아침독서 원칙_좋아하는 책을 읽어요(1)_학원, 과외 없이 집에서 워킹맘 엄마와 공부하고 있는 초등 삼 남매 이야기입니다. <집에서 자라는 공부 습관> 9화
제가 처음 교직에 들어섰을 때, 제 교실 책장에는 30년도 넘은 너덜너덜한 책들이 가득했습니다. 여러분도 어렸을 적 학급 문고를 떠올려보면 비슷한 모습이었을지 모르겠네요.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외관의 책들이, 그저 그렇게 수십 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겠지요. 기존 책들을 다 버렸습니다. 특히 사회, 과학 관련 지식 정보책은 학문 자체에서 바뀌는 내용들이 계속 있기 때문에 10년이 넘은 책은 과감하게 폐기합니다. '우리 반에서는 어떤 책을 뽑아 들더라도 다 재밌는 책이어야 한다.'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반에서는 어떤 책을 뽑아 들더라도 다 재밌는 책이어야 한다.
저는 다른 학교에서 1년 기간제를 하고, 교직경력 2년 차에 저희 학교에 왔는데요, 지난 학교에서 퇴직금을 안 받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퇴직금이란 게 있는 줄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받을 돈이 있고, 그 돈을 받은 게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요. 갑자기 한 달 치 월급 정도의 공돈이 생긴 거니까요.
그땐 자녀도 없었고, 오로지 학교 생활이 저의 전부였습니다. 특히 독서교육에 대해 몰입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이들이 책 읽기를 좋아하려면, 가까이에 좋은 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학교는 도서관이 학교 건물 밖에 있어서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학급 문고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폐기된 책들로 비어 있던 교실 책장에 새 책을 꽂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가지고 오라고 하면 오래된 책, 안 읽는 책 아니면 만화책을 가져올까 봐, 받은 퇴직금의 거의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150만 원 정도를 학급문고용 어린이책 '신상' 구입에 썼습니다. 저희 반 만을 위한 책일 테니 학교 예산으로 구입할 수 없었고, 대단한 독서교육을 하겠다는 포부를 가득 담아서 투자했지요. (지금은 그때의 경험을 '독서 교육에 내가 이만큼 진심이었고, 지금도 그렇다'라고 학급교육 설명회 때 이야기하며, 아주 우려먹고 있습니다. 퇴직할 때까지 우려먹는다 생각하면 투자할 만했네요. ㅎㅎ)
그때나 지금이나 추천 도서 목록은 행복한 아침독서의 목록을 우선적으로 참고합니다. 아침독서운동은 해마다 많은 그 해의 추천 도서 목록을 발표합니다. 추천 도서의 선정 과정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추천 도서목록 게시글에 있는 내용을 정리하여 옮깁니다.)
1. 출판사의 신청도서를 대상으로 진행한다.
제가 아침독서운동에 관심을 가졌던 2009년, 약 15년 전과 비교하면, 아침독서운동에 책을 신청하는 출판사가 많아진 것 같습니다. 행복한 아침독서에서 추천한 책이라는 것을 광고하는 것도 더 많이 발견되고요.
2. 발간된 지 1년 내외의 책 중에서 선정한다.
즉, 신간 도서 중 추천을 합니다. '다양한 신간도서들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때 좋은 책들이 더 많이 출간되고 독서문화와 책 생태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침독서 추천 도서를 구입하여 반 아이들에게 읽어주면, 이 책을 모르는 아이들이 꽤 많습니다. 선생님이 책 읽어주려고 하는데, "저 그 책 읽었는데요!?" 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습니다. (물론 읽었어도 선생님이 읽어주면 잘 듣기만 하지만요.ㅎㅎ) 신상 목록이라는 것도 특별한 점 중 하나입니다.
3. 선정원칙
'선정 원칙은 책의 완성도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였고, 독서력이 높지 않은 학생들도 책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책들을 선정하였습니다.'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들어줄 책 보다 책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책들을 선정했다는 점이요. 그리고 작품성이 비슷할 경우 이왕이면 외국 책보다는 우리 책을 우선적으로 선정한다고 합니다.
선생님과 신간 언박싱
다시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봅니다. 학교로 책이 몇 박스 왔습니다. 150만 원어치 책이라 해봤자 학급 문고 2~3칸 정도를 채우는 정도더라고요.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새 걸 좋아하죠. 책을 한 권, 한 권 보여주며 소개하는 데 아이들이 "우와~~"하며 반기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교실로 배달된 책 박스에서 새 책을 꺼내는 선생님, 그 책의 제목과 표지를 보는 아이들. 요즘 유튜브에서 흔히 보는 '언박싱 영상'의 아날로그 버전이랄까요. 그 언박싱을 본 아이들이 그 책을 읽고 싶어 했던 건 당연하겠죠. 150만 원어치의 책이 대부분 안 읽어 본 책(신간이니까요), 새 책, 선생님이 산 책, 재밌는 책이었고, 새 학년 올라가기 전까지 이 책들 꼭 다 읽고 가라고 했습니다. 우리 교실이 책 읽는 반이 되는 출발점이었죠. 그 이후로는 그만큼 사비를 들여 책을 사지 않지만, 여러 방법으로 책이 모이고 모여, 한 때 전국에서 가장 책이 많은 반으로 자부할 정도로 교실이 온통 책이었던 적도 있습니다. 책의 양을 떠나서 실제로 책을 읽는 반, 적어도 저와 함께 하는 일 년 동안은 책의 즐거움을 흠뻑 빠지는 반이라는 것은 우리 반의 자부심이자 앞으로도 제가 지켜나갈 원칙이기도 합니다.
좋은 책을 읽게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물론 여러 방법 중 하나이지만요)
바로, '좋은 책이 손 닿는 곳에 있는 것'입니다.
좋은 책이 손 닿는 곳에 있다는 것은 물리적인 거리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물리적으로 너무 먼 곳에 있어도 안 됩니다. 학교라면 교실 안에, 집이라면 집 안 곳곳에 좋은 책들이 있으면 충분합니다. 아이 방에만 좋은 책들을 가득 꽂아둘 필요가 없습니다. 또 아이들이 거실, 식탁 근처, 침대 옆 등 어디든 읽던 책을 둘 수 있게 해 주세요. 저는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편이라, 집안 여기저기에 읽던 책들이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늘 너저분한 느낌이 나긴 합니다.) 참고로 전집류를 왕창 사서 비치하는 일은 지양합니다. 구입하기는 편하지만 (더 싸게 살 수 있기도 하지만) 전집류가 주는 압박감이 있습니다. 비싸게 주고 샀기 때문에 아이가 더 읽기를 바라게 되고 그런 건 독서에서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낱권으로 사서 읽으며, 모으는 과정이 더 좋은 것 같아요.
(두 번째 광고사진에 있는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책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추천합니다. ㅎㅎ)
하지만 아침독서 추천 목록에 있는 책을 모두 집에 사다두면, 아이들이 저절로 잘 읽을까요?
또, 좋은 책이 많은 도서관에 가도, 아이들은 모두 만화를 읽고 싶어합니다. (도서관에서도 아이들을 많이 오게하려고 만화책을 꼭 비치한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좋은 책이 있어도 아이가 만화책을 고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어려움에 대해 제가 고민하며 시도했던 것들을 이어서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사회적 기업인 아침독서 운동에서는 추천 도서 목록을 만드는 일 외에 독서 신문을 발간하는 것도 중요한 사업 중 하나입니다. 이번에 월간 아침독서 신문이 200호를 맞이했더라고요. 약 20년간 독서와 관련된 신문 발행을 지속해 왔다는 것이 놀랍고 고맙습니다. 저는 아침독서 후원회원이라 신문을 무료로 받는데, 유료로도 구독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인터넷으로도 볼 수 있고, 지역 도서관에서도 신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행복한 아침독서 웹사이트 http://www.morningreadi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