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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산 물건

이층 철제 침대

by 박동현

대학교를 졸업하고 공군 학사장교로 입대했다. 군대에 큰 뜻이 있었던 건 아니다. 병사 복무보다 기간은 길었지만 월급이 더 많았고, 부대 안팎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 직장인처럼 생활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장교 숙소는 3평 남짓한 1인실이었다. 혼자 지내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휴가와 외출이 모두 통제되자 숙소는 하루아침에 답답한 감옥이 되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팬데믹 속에서 나는 결심했다. 부대 밖에서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지금 생각하면 조금만 더 참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당시엔 달랐다. 뉴스는 끊임없이 변이 바이러스 소식을 전했고, 전문가들은 이 상황이 평생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군대 안에 갇혀 사는 답답함을 더는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부대 인근에 4~5평 남짓한 작은 원룸을 구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첫 번째 독립이었다.


텅 빈 방을 채워야 했다. 필요한 물건을 하나하나 마련하며 그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2층 벙커 침대였다. 가구 중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침대. 슈퍼싱글 하나만으로도 방의 3분의 1이 꽉 차는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싶었다. 나는 침대를 위로 올리고, 아래 공간을 활용하기로 했다.


새 침대 프레임은 생각보다 비쌌다. 원목은 50만 원, 철제도 30만 원을 훌쩍 넘었다. 돈을 아끼려 중고 거래 앱을 뒤지던 중, 며칠 쓰지 않았다는 벙커 침대를 10만 원에 발견했다. 판매자가 직접 해체까지 해준다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내 첫 번째 큰 가구를 샀다.


문제는 방에 들여놓은 뒤에 생겼다. 침대 프레임의 넓이만 생각했지, 방의 높이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힘들게 조립하고 침대에 올라가 앉자, 머리가 천장에 닿아 허리를 펼 수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우선 누워 보았다. 눈앞에 천장이 바싹 붙어 있었고, 문득 웃음이 났다. "아, 관(棺)에 들어가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그 좁고 어두운 공간은 마치 나만의 관처럼 느껴졌다.


그날 밤, 나는 ‘관 같은 침대’에서 잠을 청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푹 잠을 잤다. 좁지만 아늑했고, 온몸을 감싸는 듯한 안정감이 느껴졌다. '그래, 잠만 잘 수 있으면 되지.' 그렇게 2층 침대는 내 자취방의 중심이 되었다. 아래 공간에는 낮은 소파와 TV를 두어 나만의 거실을 만들었고 소파와 TV 사이에는 리프트업 테이블을 놓아 밥을 먹거나 책을 읽었다. 4평 남짓한 작은 공간은 점차 나만의 안식처로 변해갔다.


이곳에 대한 애착은 직접 고르고 꾸민 물건들에서 시작되었다. 퇴근 후에는 빨리 집에 들어가고 싶었고, 주말이면 어떤 물건으로 더 채울지 궁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물건 하나하나에 담긴 나의 고민과 노력이 이 공간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한 가지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나는 잠버릇으로 갑자기 벌떡 일어나는 습관이 있었는데, 천장이 낮은 침대에서 자다 보니 몇 번이나 머리를 세게 부딪쳤다. 쿵! 하는 소리가 날 정도였으니, 위층 집에서도 놀랐을지 모른다. 그렇게 머리를 반복적으로 박고 나서야 벌떡 일어나는 습관이 고쳐졌다.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에 반응하듯, 나는 침대 천장에 반응했다. 불편함이 오히려 나를 길들인 셈이었다.

2층 침대를 고르는 과정은 서툴렀다. 그러나 그 서투름 속에서 나는 독립을 배웠고, 불편함 속에서 오히려 특별한 경험을 얻었다. 그리고 그 경험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나는 성장해갔다.


지금은 그 작은 원룸에서 나왔다. 결혼을 하며 오피스텔에 이사를 갔고, 한 번, 두 번의 이사를 거쳐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여러 번의 이사를 거치며 높이를 계산하지 않고 산 철제 2층 침대와 같은 서툰 부분은 점점 사라졌다. 크기와 색상, 인테리어를 고려해 물건을 고르는 일에 능숙해졌다.


되돌아보면 ‘처음’이라는 단어는 늘 오래 남는다. ‘처음 쓴 일기’, ‘첫사랑’, ‘첫 직장’처럼 말이다. 그 이유는 언제나 서툴렀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완전한 것은 없다. 완벽한 첫사랑은 완벽한 비문에 가깝다.

일본에는 와비사비(侘寂, Wabi-Sabi)라는 전통 미학 개념이 있다. ‘소박하고 불완전하며, 덧없고 불균형한 것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금이 간 찻잔을 버리지 않고 금으로 메우는 킨츠기(金継ぎ)다. 결함은 흠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아름다움의 시작이 된다.


첫 자취를 위해 샀던 2층 침대를 떠올리며, 어설프고 불편했던 기억들을 다시 생각한다. 그 속에는 웃음도, 좌절도, 작은 기쁨도 함께 담겨 있었다.


시작은 이렇게 어설프기에 소중하다. 그러니 지금 당신이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거나, 혹은 누군가의 시작을 곁에서 바라본다면, 그 어설픔을 비웃지 않았으면 한다. 금이 간 찻잔이 금으로 메워질 때 더 깊은 아름다움을 지니듯, 서툰 시작 역시 언젠가는 가장 빛나는 기억으로 남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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