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자
요즘 당신이 친구들과 주고받은 선물 중 가장 많은 것 1등은 무엇인가? 아마 카카오톡으로 주고받은 ‘스타벅스 기프티콘’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사실, 내가 그렇다. 2등은 프랜차이즈 상품권 기프티콘이다. 생일이나 기념일에 받는 기프티콘으로 거의 6개월은 스타벅스에서 돈을 주고 음료를 사 먹을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참 고맙다. 그런데, 그런 선물이 고맙기도 하고 편하기도 한데 ‘선물로 받은 물건들’이라는 주제를 생각했을 때, 생각이 났던 물건은 따로 있었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한 학기 동안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머물다가 온 적이 있다. 켄터키주의 작은 기독교 계열 학교인 Campbellsville University에서 공부했었다.
그곳에서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을 만났고, 특히 일본 친구들과 가까이 지냈다. 키와, 유미, 세야. 세 명의 여자 친구들과 한국에서 함께 온 두 명의 형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추석 방학 때는 자동차를 빌려 네슈빌로 여행을 가기도 하고,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함께 모여 과제를 하기도 했다. 한 학기는 길지 않았지만, 타지에서 의지하며 보낸 시간은 금세 정을 쌓게 만들었다.
학기가 끝나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때, 일본 친구들이 마지막 종강 파티에 초대했다. 라멘을 함께 끓여 나눠 먹고, 시끌벅적 웃으며 시간을 보내던 중 갑자기 방으로 들어오라며 우리를 불렀다. 그 방은 빨강, 파랑 풍선으로 꾸며져 있었고 벽에는 한글로 ‘가지마~’라는 글씨가 붙어 있었다. 이어서 친구들은 차례로 직접 쓴 편지를 읽어주었다.
울먹이던 목소리, 눈시울이 붉어진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내밀었던 선물은 갈색 골판지 박스를 오려 만든 배경에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을 붙여 만든 액자였다. 꾸밈도 화려하지 않고, 돈이 많이 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시간과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선물은 지금도 내 방에 남아 있다. 이미 빛바래고 낡았지만, 버릴 수가 없다. ‘선물로 받은 물건들’이라는 주제를 떠올리자마자 그 액자가 가장 먼저 생각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스타벅스 기프티콘’에서는 ‘기능’은 보이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반면 ‘수제 사진 액자’에서는 분명히 사람이 보인다. 고민한 흔적, 시간을 들여 손으로 붙이고 꾸민 정성이 보인다. 가격으로는 환산되지 않는 무게가 그 안에 있었다.
그렇다고 기프티콘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선물을 고르기가 늘 어렵다. 그러니 손쉽게 커피, 케이크, 치킨 같은 ‘실패 없는 선물’을 고를 수 있는 카카오톡 선물하기 서비스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단 몇 초 만에 고를 수 있다는 점에서 사용자들에게 큰 편의를 준다.
하지만 동시에 그 편리함 속에서 ‘고민하는 과정’이 사라진다. 선물은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 ‘나의 시간’을 건네는 행위일 텐데, 현대 사회는 너무 빠르고, 우리는 너무 바쁘다. 타인을 떠올리고 정성을 담을 여유가 사라진 것이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 사회를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라 불렀다. 고체처럼 단단하고 오래 지속되던 관계와 제도가 무너지고, 모든 것이 액체처럼 빠르게 흐르고 쉽게 사라지는 시대라는 뜻이다. 기프티콘은 이런 차원에서 해석했을 때 액체 근대적 선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각적이고 가볍고, 누구에게나 쉽게 줄 수 있으며, 관계의 무게도 가볍다. 반면 낡은 사진 액자는 고체 근대적 선물처럼 여전히 형태를 지니고, 시간이 흘러도 관계를 붙잡아주는 힘을 갖는다.
결국 오래 남는 선물은 가격이 아니라 ‘사람의 흔적’이 담긴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 오래된 사진 액자를 볼 때마다 다시금 깨닫는다. 편리함이 주는 선물도 좋지만, 시간이 담긴 선물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더 깊게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