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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떠난 뒤 남겨진 물건

돼지 저금통

by 박동현

사람이 떠난 뒤에도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물건이다. 그리고 그 물건은 그 사람과 그 사람이 살아갔던 시대에 관해 이야기해 준다.


중학교 3학년 때,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는 엄마가 어렸을 때 이미 세상을 떠나셨기에, 사실상 나에게 할아버지는 단 한 분뿐이었다. 그래서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순간, 이제 내게는 더 이상 ‘할아버지’라는 존재가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할아버지가 떠나시며 특별히 나에게 남기신 물건은 없었다. 이후 할머니는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셨고, 원래 있던 살림살이들은 정리되거나 큰아빠의 집에 보관되었다.


그런데도, 할아버지가 남기신 물건이 무엇일까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그때 문득, 노란 돼지 저금통이 생각났다.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 있는 물건도 ‘남겨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나에게 남은 할아버지의 물건이었다.


유치원생 무렵, 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기 시작할 때였다. 주말이나 명절에 할아버지 댁에 가면, 할아버지는 손자인 나와 사촌 동생을 따로 불러 노란 돼지 저금통을 내주곤 하셨다. 그 안에는 그동안 모아 두신 백 원, 오백 원, 십 원, 가끔은 천 원짜리 지폐도 들어 있었다.


사촌 동생과 나는 저금통을 들고 작은 방으로 들어가, 돼지 배의 마개를 열었다. 동전들이 바닥으로 쏟아져 나오며 ‘짤랑’하고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차갑게 반짝이는 동전을 손으로 주워 담다 보면, 손끝에는 금속 특유의 냄새가 배어났다. 우리는 그것들을 10원, 100원, 500원씩 가지런히 나열하고는 똑같이 반으로 나누어 가졌다. 그렇게 얻은 돈으로 때로는 과자를 사 먹고, 때로는 작은 장난감을 샀다.

돌이켜보면, 그 노란 돼지 저금통은 단순히 동전만 담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손자들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으셨던 할아버지의 마음 그 자체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 마음속에는 시대가 만든 한계도 들어있었다. 손주가 일곱이었지만, 그 중 저금통을 받은 건 세 명의 손자뿐이었다. 나를 포함한 사촌 남자아이들만 방으로 불려 들어갔고, 문밖에는 사촌 누나와 여동생들이 남겨졌다.


어린 나는 그것을 당연히 특권이라 여겼다. 할아버지가 나를 더 예뻐하신다고 믿으며, 들뜬 마음으로 동전을 세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그 저금통 속에는 사랑만이 아니라 물질을 중시하던 가치와 성차별적인 관습까지 함께 들어 있었다. 저금통을 받아 들던 내 두 손의 설렘 뒤편에는, 보이지 않게 배제된 누군가의 시선이 있었다는 사실을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할아버지는 박정희 정부 시절, 경부 고속도로 건설에 필요한 굴삭기와 같은 중장비를 조달하는 사업을 하며 자수성가한 분이셨다. 남아 선호 사상이 여전히 짙게 남아 있던 시대에, 할아버지의 사랑은 그렇게 표현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남자는 가문을 잇는 집안의 대들보이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돕는 보조적 존재라는 인식이 분명히 있으셨을 것이다.


이제 나는 노란 돼지 저금통을 떠올리며 묻는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내 자녀와, 더 나아가 그들의 손자·손녀에게 물건을 남긴다면 무엇을 남겨야 할까.


할아버지에게 저금통은 사랑의 표현이자 동시에 시대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어떤 물건이 내 삶의 철학을 담아낼 수 있을까. 단순히 물질을 나누는 도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삶의 태도와 기억을 전할 수 있는 무언가여야 하지 않을까. 언젠가 내 아이들이 나를 떠올릴 때, 그 손에 쥐여줄 저금통 같은 물건이 무엇일지, 나는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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