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 정 Jul 15. 2024

양말에 애착하는 삶

뉘른베르크에서 온 통영 여자의 50대 청춘 드로잉 에세이 ep.95

양말에 애착하는 삶


어디서든 새 양말을 보면

안 사고는 못 배긴다.

서랍을 다 뒤지면 백 켤레는 되고

아직 안 신은 양말도 많은데 또 사잰다.


속옷은 낡은 것을 입더라도

양말은  차려 신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지도 않고

보여줄 것도 아니지만

양말은 특별히 신중하게 골라 신는다.


기분이 산뜻해지고 싶은 날에

핑크나 노랑 같은 밝은 색을 신고 나간다.

일 때문에 회의를 갈 때는

일이 잘 풀릴 것을 염원하며

전날 저녁에 내일 입을 속옷 위에 미리 

검은색 새 양말을 경건하게 모셔둔다.

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경우도

미리 신발을 벗을 것을 상상해

너무 튀지 않고 옷과 잘 어울리는 색을 정한다.


핑크에 브라운, 블루에 초록 같은

좀 어긋하는 배색을 선호하고

줄무늬보다 체크, 땡땡이가 더 좋다.

여름철에는 너무 짧은 것보다

복숭아뼈 위로 살짝 올라오는 길이가 딱 좋고

겨울에는 장딴지까지 올라오는 길이가 좋다.


소재가 부들부들해도 걷는데 미끌거려 불편하다.

발가락을 너무 조이지 않게 품이 넉넉하고

특히 발바닥이 두터우면 신었을 때 푹신하다.

발목밴드가 너무 조이면 피가 안 통할까 걱정된다.

발이 행복해야 그날 만사가 편안하다.


빨고 나면 확 줄어들어 아기양말이 돼버리거나

발목이 늘어나 걸을 때 자꾸 벗겨지면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확 던져 버린다.

자주 빨래를 하면 헌 양말이 될까 봐

한번 신으면 4~5일은 더 신고나야 세탁한다.

혼자 착각인지 몰라도 냄새는 안 난다.

옷도 양말도 안 빨고 오래 입는 걸 좋아한다.


내가 아무리 넉넉하지 못해도

양말만은 돈 안 아끼고 사치를 다 부리고 싶다.

가는 날까지 실컷 양말 낭비하고

평생 양말 걱정 없이 양말 부자로 살리라.


친구랑 둘이 다음생에는 자기 아버지 회사에

다니는 사람으로 태어나자고 다짐했는데

나는 양말회사 사장딸로 태어나면 되겠다.




#50대청춘드로잉에세이 #하루한편 #독일통영댁

#그밖에애착하는것

#파우치 #보온병 #노트와펜 #도시락통 #스티커 #인형

작은 것에 애착하는 삶 By 문 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