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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정 Jul 16. 2024

파를 다듬다가

뉘른베르크에서 온 통영 여자의 50대 청춘 드로잉 에세이 ep.96

파를 다듬다가  

   

흙대파를 다듬으니

눈가가 촉촉해진다.

눈물이 난 김에 잠시 감상적이 되어 본다.

애들한테도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보듯이

늙어서 뭐가 되고 싶냐고 누가 물었다 치면

나는 넉넉히 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하고 싶다.


원래는 손이 커서 마박이와 둘이 먹을 음식도

5인분을 만들어 다 먹지도 못하고 남기고

어딜 가도 신발끈 오래 안 묶고 웬만해선

내가 계산하고 주는 즐거움을 알고 살아왔다.


마음은 마박이 친구들도 초대해서

음식을 자주 해먹이고 싶은데

독일 젊은이들은 이유 없이 주지도 받지도 않고

친구, 친척, 동료라는 관계로 잘만 살아간다.

물질만능의 세상을 등지고 사는 건지

그냥 더 삭막한 세상을 사는 건진 잘 모르겠다.


동생이라고 뭘 좀 챙겨주려고 해도

이유 없이 선물 같은 것은 안 받는단다.

결혼초에 안 받겠다는 대답을 여러 번 들었다.

그럴 때는 살짝 기분이 상한다.

주는 것을 안 받으면 왠지 정이 안 간다.

꼭 내 마음을 거절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 뒤론 뭔가를 주는 것은 삼가게 됐다.


생일에 남의 집을 방문할 때도

손이 부끄럽게 대부분은  손으로 간다.

우리는 이웃집을 가더라도

귤 한 상자라도 사들고 가라고 배웠지만

마박이의 의사를 존중하고

한국식 문화를 강요하진 않는다.

마박이도 한국 있을 때는 우리 식을 따른다.


이제 와 뉘우치건대 

내가 많이 인색해진 것 같다.

딱 받은 만큼 주고 더 주거나 하지 않는다.

주는 쪽보다는 받는 쪽이 되었다.

마음을 물건이 아닌

마음으로만 표현하고 있었을까?

이것도 나이가 들어서 그러나?

가만 보니 흉보면서 닮는다고

나도 모르게 독일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르신은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했다.

아끼지 말고 많이 퍼주고 

넉넉하게 나누며 나이 들어야겠다.


눈물이 주르르 나는 김에, 

이 참에 잘못 쓰던 마음을 고쳐먹고

어떻게 더 괜찮게 늙는 사람이 되어 볼까

알뜰히 참회의 시간을 보냈다.

파를 다듬다가 갑자기.


 


#50대청춘드로잉에세이 #하루한편 #독일통영댁

#마음이부자인사람이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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