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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정 Jul 18. 2024

아무 때나 전화해

뉘른베르크에서 온 통영 여자의 50대 청춘 드로잉 에세이 ep.98

항상 들고 다니는 그림도구 파우치, 일본 일러스트레이터 나오미 토자키 창작 제품  By 문 정


아무 때나 전화해


아무 때나 전화 와서

뭐 하냐고 묻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나는 정말 사소한 일을 하던 중이라고 답하리라.

어제는 뭘 했는지,

내일은 뭘 할 건지도 물어 봐주는,

그게 아침이든 밤이든

아무 상관없는 그런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과

늘 대화를 하면 마음의 병이 안 생긴다. 

있던 병도 괜찮아질 것 같다.

그런 친구는 단 한 사람이면 된다.


이제는 친구에게 더 배울 지혜도 없고

어떻게 살아갈지 해답을 들을 일도 없다.

그저 무슨 반찬과 밥을 먹었는지 알고 싶다.

오늘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잠은 잘 잤는지

굳이 중요한 사항이라면

새로 생긴 맛집에 같이 가는 약속을 받아내는 것.


더 젊은 날은 까칠하고 예민한 여자였다.

아마 나는 가까이 와서 허물없이 지내기에

너무 어려운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걸 나만 모르고 살았지 않나 싶다.

친구야, 내 안에 아무리 다 퍼주어도

바닥나지 않을 우정이 말도 못 하게 많이

쌓여 있다는 것을 알기를 바란다.


혼자 있어야 공부도 하고 일도 하니까

혼자 다 보낸 젊은 시간들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친구를 만나서 같이 밥을 먹고

자잘한 일상의 수다를 떠는 일이

늘 많이 하고 싶었던 대단한 일이었다고.


지금은 친구 같은 남편 마박이가 있다.

거짓말은 되도록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얘기한다.

어제 뭐 했고 오늘 뭐 하고 내일 뭐 할 건지

깜빡하고 잊지 않은 이상 다 얘기한다.

그래서 마음이 많이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

사는데 속걱정이 없다 보니 

배가 자꾸 나오기는 해도.


생존을 위해서도 친구가 필요하다.

먹을 것이 없어 죽는 사람은 없어도

친구가 없으면 외로워 죽는다.

모든 것을 다 가져도 혼자 행복한 사람은 없다.

내게 오는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아직 많은 사람들을 친구로 만나고 싶다.


이제 다시 독일로 가면

여느 날 뉘른베르크의 페그니츠 강이

흐르는 작은 카페에 또 홀로 앉아

친구얼굴을 살뜰히 그리워하게 되겠지.


친구야, 아무 때나 전화해.




#50대청춘드로잉에세이 #하루한편 #독일통영댁

#요즘에국제전화무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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